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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등산무돌길협의회(상임공동의장 김인주)가 주관하여 지난 15일(일) 08:00에 광주역 뒤편(무돌길 시작과 완주표지판)에 30여명이 모여 무등산무돌 길 동구구간(무돌15길 ~ 무돌13길)을 탐방했다.
참여자는 출석과 안전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교재와 명찰을 받고 가져온 소지품은 공간에 내려놓고 모여 간단한 국민체조를 했다.
염재준 시민탐방교실 분교장은 “학술, 교육과 연대 사업으로 시민탐방교실을 개설하여 일반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무돌 길 탐방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무더위에 안전을 조심하고 해설안내자의 지도를 받아 무사하게 탐방을 마치고 귀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협의회는 무돌 길 보호와 관리, 탐방해설 사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무돌 길 홍보를 위해 기관, 단체와 연대하여 4개 지자체와 협력해서 세계적인 브랜드 무돌 길 명품 화를 만들려는 단체입니다. 오늘 탐방을 계기로 우리 단체를 많이 홍보해주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고 인사했다.
염재준 분교장은 “오늘 진행할 탐방 해설 시연 자와 운영진”을 소개했다.
김인주 상임공동의장은 “무등산무돌 길 개척과정에서 무등산 정신과 호남의 정신인 5.18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로 총거리를 약 51.8km로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무돌길 개척은 무등산 운동가인 전남대 박승필 교수와 무등산보호단체협회를 창립한 김인주(현 사단법인 무등산무돌길협의회 상임공동의장) 등에 의해 헌신적인 노력으로 2010년 3월부터 옛길 그대로 개척을 시작하여 15길이 모두 완공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탐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날씨가 무더워 힘이 들겠습니다. 아무쪼록 무더위를 이기고 안전을 주의해 동구구간(15길 ~13길)탐방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를 바랍니다.” 고 인사했다.
이승준 무등산무돌 길 탐방해설 사는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걷기가 힘이 들면 바로 안내자에게 말을 전해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도록 협조바랍니다. 오늘 탐방하는 구간은 동구구간으로 15길에서 13길까지입니다.
특히 더운 날씨에 교통, 해충, 길에서 바른 행동으로 안전하게 걷기를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하기 위하여 걷는 것인데 안전해야 좋지 않겠습니까? 즐거운 도보 운동이기를 바랍니다.”고 안내했다.
1. 무돌15길(폐선 푸른 길): 광주역 – 폐선 푸른 길(중흥동 - 계림동 - 풍향동 - 산수동 - 동명동 - 서석동 - 학동) – 남 광주역, 약3.8km, 약1시간 30분소요 - 광주역과 남광주 역 간에 철길을 폐쇄하고 시민의 힘으로 도시 푸른 길을 만들어 광주의 상징적인 길을 만들었다.
광주역, 남광주역, 남광주 시장, 동네 유래 등 지역 사를 많이 듣는 시간이었다.
남광주역은 1937년 광주에서 여수까지 개설된 철도의 역 터이다. 당시에는 역 명칭을 신 광주역으로 하였으나 1938년에 남광주역으로 변경, 2000년 도시철도 이설로 역은 폐지, 남광주 역사는 문을 닫고 남광주지하철역이 새로 생겨났다. 남광주시장은 남광주역이 개통되면서 여수, 순천에서 해산물을 가져오는 보따리장수와 벌교, 보성, 화순 등에서 장을 보려고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시장을 보았던 곳이다.
폐선 푸른길 공원은 1970년대 이후 도시화로 인해 철도는 도심 내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각종 소음피해와 교통 혼잡, 열차사고가 빈번해지자 광주시는 도심내의 철도를 외곽으로 이설하게 된다. 광주도심철도 이설은 2000년 12월, 푸른 공원길 조성이 광주역 – 남광주역 – 동성중 7.9km(폐선 된 10.8km 중)확정되어 2002 ~ 2008년부터 7년간 도심공원으로 조성하여 추진했다.
학동은 무등산 줄기가 학처럼 내려와 앉은 구릉지라고 해서 학 마을로 부르다가 1947년 학동으로 고쳤다. 학동은 남동방면의 관문이자 증심사로 향하는 길목이다. 1915년 자혜병원(전남대학교병원)들어서고 1936년 신광주역(남광주역)이 개설되면서 마을 형성되었다.
서석동은 서석산(무등산)아래 있는 마을이라 서남리라 했다가 1930년 서석동으로 칭했다. 서석동은 도청, 노동청, 구청 등 행정기관이 소재하고 있는 호남행정의 중심지였다. 주변에는 전남대학교병원, 조선대학교, 서석초교, 대성학원, 양영학원 등 학원 밀집 지역이다.
지산동은 무등산 서쪽 장원봉에서 향로봉과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오백여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동명동은 광주읍성의 동문 밖에 있다하여 동 밖이라 했고 동계천가에 있어 동계로도 불리다가 1946년 동명동이라 칭했다. 동명동 농장다리는 1908년 광주감옥이 있을 때 교도소에서 모범수를 데리고 나와 지금의 동명로 길을 따라 농장으로 이동하여 각종 농작물을 재배했던 다리로 광주역과 남광주를 잇는 철길 위에 얹어져있다. 해방 뒤 소년형무소자리에 동명여중이 설립되고 1971년 광주교도소가 문화동으로 옮겨가면서 주택지구로 변했다. 교도소가 옮겨 간 뒤로 농장부지는 주택단지로, 농장은 지금의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 있다. 산수동은 이 지역에 갈마촌이 있었고 잣고개, 꼬두메, 깃대봉 등 옛날 동네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계림동은 옛 경양방죽 제방에 숲이 우거져 있고, 제방 가까이 마을에서 닭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닭울음소리가 자주 들려서 계림 동이라했다. 그 때 이 지역에는 마을이 없었고 경양방죽과 경양 역에 딸린 역둔전만 있던 들판이었다. 경양 역은 전주와 장흥을 연결하는 전라좌도의 관로를 담당하다가 1895년 역도제가 폐지되면서 없어졌다.
중흥동은 중가리와 신흥리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1979년에 이 지역이 더욱 발전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中興(쇠하던 것이 다시 일어나는)’이름을 지어 불렀을 것으로 추정, 조선후기에는 광주군 경양면에 속했으며 1955년부터 중흥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광주역은 광주의 철도는 근대문물의 유입과 일제수탈의 통로로 활용되기 위해 1922년 송정리에 첫 도입 이후 송정리역에서 광주역까지 철도가 완성되고 광주역을 중심으로 담양, 여수 등으로 나가는 사통팔달의 철도가 완성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었다. 원래는 경전선상의 역이었으나 경전선 도심구간 이설사업으로 광주 ~남광주 ~ 효천간 선로가 철거되어 지선인 광주선의 종착역이 되었다. KTX 광주송정역과 통합되어 도심공동화우려 및 주변 상권문제가 되고 있다.
1922. 7.1 : 동구 대인동에서 영업개시(현재의 광주 동부소방서)
1969. 7. 25 : 현재의 위치로 역사 이전
2000. 8. 10 : 경전선 효천 – 송정리 구간 이설로 광주선의 종착역이 됨
2004. 4. 1 : KTX 영업개시
2015. : KTX 광주송정역과 통합
2. 무돌14길(광주천길): 남 광주역(남광주시장) – 광주천 길학동 - 소태동 - 지원동 -용 산 - 주남) - 선교다리 - 선교동마을(정자), 약6km, 약 1시간 30분소요
무등산 용추계곡 샘 골에서 발원한 광주천의 상류로 광주의 상징적 하천길이라 하여 광주천 길이라 하였다. 생태하천 길로 광주의 허파 기능을 한다.
예전에는 백일홍나무가 많은 개울이라 하여 자미탄(紫薇灘)이라고 불렀다고 전했으나, 이번 걷기에는 버드나무 꽃가루가 많이 날렸다. 광주천 상류와 극락천 중류는 상수도 수원지(水源池)와 관개에 이용한다. 선교동은 선동마을과 교동마을의 앞 자를 따서 만들어진 지명이며, 선교동 마을 오른편 산이 신선모양의 선인 봉인데 신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라는 뜻에서 선교동이라는 설명이다.
지원동은 광주의 4대 관문의 하나인 남문로를 중심으로 제2순환도로와 도시철도 1호선 소태역사의 개통으로 화순방향 교통의 요충지이다. 소태동, 용산동의 일부와 월남동, 내남동, 선교동, 용연동 6개의 동을 관활하고 있다. 소태동은 무등산 자락이 있고 광주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도심 속의 아름다운 무돌 길과 소태역, 남초등학교, 무등중학교, 지원정수장이 있고 남문로와 지하철, 제2순환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옛 마을 소태 골은 왕실의 태를 봉안하던 곳이라 하여 소태 실이라 했다.
광주천은 무등산 장불재 샘 골 계곡에서 발원하여 학동, 금동, 임동, 유덕동에 이르는 총연장 24.2km를 흘러 극락강과 합류한다. 광주천은 광주 도심에서 유일한 수변녹지축이자 양호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광주시민의 자연자산으로 친수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증심(원지교)계곡과 용추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광주천 차수벽이 설치되어 오염 및 유량부족으로 자정능력이 크게 모자라 하수종말처리장에서 BOD 3ppm 이하로 처리하여 맑은 물을 우회 역류시켜 광주천에 흘려보내고 있다.
3. 무돌13길(용추계곡 길): 선교동마을(정자) – 용연정수장 - 용연당산나무 - 제2수원지 - 용추계곡 길 – 용연마을(정자), 약3km, 약 1시간 소요
용추계곡 길이란 광주천과 영산강의 발원지 계곡으로 용추폭포와 제2수원지가 있으며 용이 승천한다는 계곡으로 가장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다운 계곡 길을 용추계곡 길이라 하였다. 이곳에 있는 용연정수장은 동복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곳이다. 광주의 정수장은 6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주암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덕남 정수장, 동복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용연정수장과 지원정수장, 산장 입구에 있는 제4수원지 물을 정수처리 하는 각화정수장, 장성의 황룡강의 물을 복류수(하천의 바닥에서 한번 걸러진 깨끗한 물을 취수)하는 남면정수장(하루 4만㎥)과 송정정수장이 있다.
제2수원지 아랫마을로 500년 넘은 귀목나무<한자어로 괴목(槐木)·규목(槻木)·궤목(樻木)·거(欅)>, 지난날 우리나라의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정자나무로서 가장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 것이 느티나무였다. 그것은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으로 원 몸통에서 나온 줄기)이 크고, 고루 사방으로 퍼지고 짙은 녹음을 만들며, 병충해가 없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자나무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전달하는 광장으로, 때로는 서당의 선생이 강학(講學)을 하는 민족의 애환이 집결된 곳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의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밥상·가구재 등으로 쓰였고, 불상을 조각하는 데에도 쓰였다. <느티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산목이 서있다.
"무등산무돌 길 안내해설목적은 무등산무돌 길은 우리의 자랑이며 상징물인 무등산의 아름다운 자연생태계와 역사유적문화가 담긴 무등산자락 한바퀴 51.8km 무돌 길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운동입니다. 가장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마을을 자연사박물관으로 만들고 천년문화의 역사 사적지의 길로 지정하는 것을 함께하는 운동입니다. 따라서 무등산 무돌 길을 세계적인 브랜드 명품 화를 위해서 많은 홍보와 회원으로 가입을 바랍니다. 오늘 탐방을 모두 마치겠습니다.”고 염재준 분교장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탐방을 마치고 평가회를 가졌다.
노력은 했으나 준비가 소홀했다. 신청자가 많이 빠진 것은 날씨 탓도 있지만 사무국에서 챙김이 소홀했던 것을 인지하고 앞으로 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다. 출석부와 명찰에 오자가 많은데 조금 더 정확하게 정리하겠다. 날씨가 무더워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인데도 열심히 해설하는 동료가 자랑스럽다. 홍보를 다양하고 새롭게 해야겠다. 완주를 마쳤으니 저도 탐방해설 사로 활동하겠다. 시민탐방(북, 동)구간 신청자를 관리해서 많이 참석하도록 관리하자. 집행부가 힘이 들더라도 지형 설명과 무등산 무돌 길 정신을 삽입해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 해설시연 자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해설사의 동료나 단체를 모셔오면 쉽지 않겠나 생각했던 것이 잘 못인 것 같다. 운영 팀에게 미안 하고 사무국 직원이 보강되어 사무처리가 잘 이뤄진 것은 진일보이다. 팀을 나눠서 해설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기본 교안(시안)에 무등산 무돌 길운영의 목적과 홍보를 보완해서 작성하겠다.
”오늘의 평가를 거울삼아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더 발전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겠다.”고 분교장은 답했다.
첫댓글 염재준 분교장님!
날씨도 더운데 수고많으셨습니다.
평가회를 통하여 피드백을 받는것이 우리 모두에게 엄청 도움이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의견을 듣고 보완하여 운영이 잘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