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랄라 랄라 즐거웁게 춤추자~’(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앞으로 앞으로).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
하얀 눈처럼 희고도 깨끗한 솜사탕. 엄마 손잡고 나들이 할 때 먹어본 솜사탕. 후 후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커다란 솜사탕~’(솜사탕).
한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반갑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국민동요’를 작곡한 이수인(70) 선생. 1968년 KBS 어린이합창단의 지휘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동요를 작곡하기 시작한 그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오고 있다.
일흔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소년’ 으로 불리고 있는 이수인선생은 “일평생 동요와 함께 한 탓인지 성격이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서 이런 별명이 싫지 않다”며 웃는다. 마음만은 언제나 소년으로 남아있는 이수인선생을 만나 동요와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요지킴이 ‘파랑새 창작동요회’
요즘은 동요보다 가요를 부르는 아이들이 더 많다. 그래서 혹여나 동요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수인 선생은 “동요는 좋은 노래니까 앞으로도 절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내비쳤다.
그러한 자신감 뒤에는 ‘파랑새 창작동요회’(이하 파랑새)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국내 대표 동요작곡가 30여 명이 속한 ‘파랑새’ 모임은 각종 방송사가 주최하는 창작동요제에서 입상하거나 좋은 작품을 낸 작곡가들이 모여 지난 1990년에 결성한 단체다. 이 모임을 처음 계획한 이수인 선생은 줄곧 회장을 맡아 후배 작곡가들을 이끌고 있다.
파랑새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모임을 가지고 새로운 동요를 직접 부르며 평가를 한다. 또 해마다 새로 만든 동요 30여 곡을 CD에 담아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하고 있으며 ‘파랑새 창작동요제’ 등을 통해 동요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이 동요제는 오는 10월 26일 서울서초구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수인 선생이 동요제를 해마다 주최하는 데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담겨있다. 바로 동요대회를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자 한 것이다. 이 대회의 심사위원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다. 이들 앞에서 노래하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참가자에게는 접수비조차 받지 않고 있다.
이수인 선생이 특히 존경받는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후배양성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기존 원로 작곡가들이 대체로 본인 혼자만의 활동에 치중했다면 이수인 선생은 후배작곡가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동요계를 이끌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파랑새 창작동요회는 후배양성소와 같은 곳이다. 현재 동요계를 이끌어가는 4~50대의 창작동요 작곡가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 동요가 지금처럼 급성장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어린이합창단과 인연으로 시작된 동요작곡
고교 졸업 후 1957년 서라벌 예술대학 음악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수업을 받은 이수인 선생은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와 음악선생님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마산 KBS의 요청으로 어린이합창단과 어머니합창단을 창단해 지도를 맡았다. 특히 국내 최초로 결성된 어머니합창단은 청와대에 초청돼 공연을 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러다가 1968년 KBS 어린이합창단 지휘를 맡게 되면서 고향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하지만 상경 초기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서울생활 적응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때 절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김재호 선생이 고향을 떠난 것에 대한 아쉬움의 글을 엽서에 적어 보냈는데 거기에 곡을 붙여 발표한 곡이 유명한 가곡 ‘고향의 노래’다. 작곡자로서의 이수인 선생을 새롭게 각인시킨 곡이다. 당시에도 동요를 꾸준히 작곡했지만 그보다는 ‘가곡 작곡가’로 더 명성이 높았다.
동요를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합창단 활동의 영향이 크다. 기존에 만들어진 몇 곡 안 되는 노래를 매일 가르치다 보니 나중에는 더 이상 가르칠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동요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 그의 대표곡인 ‘둥글게 둥글게’는 레크리에이션에 알맞게 만들어진 노래로 당시에는 이러한 스타일의 동요가 없었던 터라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 20~30대 이상 세대라면 어렸을 적 소풍가서 ‘둥글게 둥글게’에 맞춰 ‘수건돌리기’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또 운동회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행진곡 ‘앞으로 앞으로’ 역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최초의 달 탐사 우주선인 ‘아폴로’ 발사를 기념해 만들어진 곡이다. 당시 작사를 한 윤석중 선생은 “아폴로가 발사되면서 앞으로는 전 세계가 한 덩어리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가사를 썼고 이수인 선생에게 작곡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행진곡 느낌의 끊어지는 박자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래서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선배 작곡가들은 ‘무슨 이런 노래가 다 있느냐’고 타박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이수인 선생의 음악적 재능은 작사, 작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편곡가기도 하다.
현재 파랑새 창작동요회에서 발표하는 모든 동요는 이수인 선생이 직접 편곡과 녹음지휘를 하고 있다. 이수인 선생의 아내인 김복임 여사는 “평소에 파랑새 창작동요회 회원들이 집에 찾아오면 늘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선생님 살아 계실 때 편곡에 대해 배워 놓으라는 것’이다”면서 “몇 명이 시도는 해봤지만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며 포기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파랑새 회원인 정연택 교감은 “물론 일부 선생님들이 편곡을 하고는 있지만 이수인 선생님의 편곡 감각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고 인정했다.
“집에 동요음반 있으세요?”
인터뷰 내내 이수인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동요를 많이 들려주고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단순한 멜로디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동요는 아이들에게 맞는 정서와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타락한’ 사랑 노래가 전부인 가요만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 아이들의 감수성이 메말라 간다는 것.
이수인 선생은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조류’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환경에 아이들을 방치한 어른들의 잘못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못 박는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어른들이 아이들의 감수성에는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요즘 아이들 키우는 집에 가 보면 동요음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집에서라도 동요를 듣고 부르게 하면 좋은데 음반 자체가 없으니 도리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요 프로그램 제작을 외면하는 방송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학교 수업 외에는 일부러 관심 갖고 찾아서 듣지 않는 한 동요를 접할 창구가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수인 선생은 “방송에서 금전적인 계산 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동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골목마다 아이들의 동요 소리가 퍼질 날이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나는 행복한 ‘마음의 부자’ 지금까지 그가 작곡한 동요만 500여 곡에 이르고 가곡 100여 곡과 어린이뮤지컬, 드라마 음악 등까지 더하면 그가 만든 곡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좋은 곡’ 만들기에 목마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작곡 철학인만큼 단지 ‘좋은 곡’을 만들자고 억지로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어떤 곡을 만들어야지’라고 미리 생각하기보다 좋은 악상이 떠오르면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서 오선지를 채워나가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작곡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불려 질 때”라며 그 이상 좋은 게 없다는 이수인 선생은 “아무리 작곡을 잘 해도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알고 불러줘서 기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배부른 부자”라고 말한다.
본인은 음악과 함께 한 삶이 늘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집중 수행원이자 비서’인 부인 김복임 여사는 “선생님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증언을 한다. “지금도 새로운 동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복임 여사에게는 현재 큰 고민이 하나 있다. “우리 동요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오래 사셔야 할 텐데 그게 늘 걱정”이라는 것. 물론 아직까지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연세가 있는 만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러한 고민은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파랑새 모임의 한 회원은 “연세가 많으시니까 만나면 혹시 몸이 불편하지는 않으신지 늘 신경 쓰게 된다”며 “후배들을 이끌어주실 수 있는 분이 현재로서는 이수인 선생님밖에 안 계셔서 돌아가시면 어쩌나 늘 걱정스럽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이와 같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신곡 2곡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그 분야의 원로가 되면 대부분의 업적은 ‘과거 완료형’이기 마련인데 이수인 선생은 고희가 된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인 것은 바로 이러한 열정 때문이 아닐까.
(펌: 뉴스한국)
이수인선생님 프로필
1939년 1월 8일 경남 의령에서 출생
(5남 4녀 중 4남)
마산동중-마산고-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마산 성지여고, 제일여고에서 교편생활
1968~2008년 2월까지 KBS 어린이
합창단 단장으로 30년간 재직
現 ‘파랑새창작동요회’ 회장
대표작>>
동요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앞으로’ ‘방울꽃’ ‘솜사탕’ 등 500여 곡 작곡
가곡 ‘고향의 노래’ ‘석굴암’ 등 100여 곡
작곡
기타 어린이뮤지컬 등 다수 작곡
수상경력>>
한국아동음악상(1978)
대한민국방송음악상(1985)
대한민국동요대상(1988)
가장 문학적인 작곡가상(1996)
MBC가곡제 공로상(1998)
반달동요대상(2000)
저서>>
이수인 가곡집(1965)
새 합창곡집(1973)
학생합창곡집(1985)
한국서정가곡선(1997)
합창곡집 ‘내 맘의 강물’(2000)
동요곡집 ‘어린이 나라’(2000)
첫댓글 친구에게 배운 노래 ㄱ래서 친구도 ㄱ립죠
성록샘의 노래 들으면서,, 이수인 샘 에 대한 글을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여섯살 배기 손녀에게 , 이수인샘의 동요 한곡 꼭 배워 주려고요,, 앞으로 앞으로 이 노래부터 ㅎ
어제 잠깐 다녀 갔는데, 올때마다 한곡씩 갈 쳐 볼래요,ㅎㅎ
영리하고 아주 맹랑한 아이라, 잘 배울 꺼라 생각되요, 얼마전부터, 아파트단지내에 있는 피아노 교습소에
재밋게 잘 다닌데요( 지애미 말에 의하면,,ㅎ)
오 이제 숙제 꺼리 생겻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