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실에는 잡동사니들이 많다. 뭘 잘 버리지 못해서이다. 버리는 것을 도와주는 ‘물품 정리사’란 요상한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최근 들어 집안 사물을 정리 · 정돈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에도 곧잘 방영된다. 나처럼 뭘 버리지 못해 처박아 두는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교수 연구실이라는 게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적막강산 연구실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두 명 정도 찾는 방문객이 있다. 연구실에 오는 사람들의 경우 방안을 한번 휙 돌아보고는 책보다는 주로 온갖 자질구레한 소품에 관심을 보인다. 대부분 제자리에 두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이는 탐을 낸다. 그럴 경우 나는 가져가시라고 한다. 망설임 없이 너무도 쉽게 가져가라는 말에 놀라는 쪽은 외려 방문객들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수집해 온 것들 같은데 그리도 무심히 가져가라고 하니 놀랍다”고. 하기야 나라고 아깝지 않겠는가?
나 또한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물건에 집착이 있다. 그래서 정을 붙인 물건은 비록 무생물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수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워터맨 만년필이 그렇고 골프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골동품에 가까운 오래된 골프클럽이 그렇다. 그런 낡은 골프클럽에 나는 첫사랑이라고 이름 붙이고 애지중지한다. 이처럼 집착이 심한 내가 그나마 주변의 재미난 물건들을 방문객들에게 쉽게 건네주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지금 기성세대의 이십 대 시절은 어려웠다.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메케하고, 캠퍼스에는 짭새(사복 경찰)들이 북적거리던 시절이었다. 툭하면 휴강. 낭만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는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돌파구는 산을 찾는 것이었다. 산은 내 영혼의 안식처쯤 되었다. 내 마음의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산 얘기가 나오면 지리산 종주를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칼로 두부 자르듯 양분해 버리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대피소가 잘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 산을 헤매다 곤경에 처하게 되면 이름 없는 작은 암자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곤 했다. 내가 아는 비구니 스님 한 분도 그렇게 만났다. 월출산 기슭에서다. 월출산은 내가 지리산 다음으로 좋아하는 산이다. 그래서 KBS 다큐멘터리 〈영상앨범 산〉 프로그램 출연을 요청받자 주저 없이 월출산을 택했다. 출연한 방송은 지난 2월 설날 연휴 마지막 아침에 방송되었다.
월출산을 찾았던 이십 대 중반의 일이다. 하산길을 헤매다가 하룻밤 머물게 된 어떤 비구니 스님 암자에서 할로겐 스탠드를 보게 되었다. 독일 여행을 다녀온 부자 신도가 선물했다고 한다. 요즈음에야 할로겐보다 더 밝은 LED등까지 흔하지만, 백열전구 스탠드만 보던 나에게 할로겐의 밝음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반농담으로 내 방에 가져가 책을 보면 딱이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암자를 떠나는 나에게 스님이 시커먼 비닐봉지를 건넸다. 문제의 램프가 접혀 있었다. 돌려드리겠다고 거듭 말씀드렸지만 스님은 완강했다. 자신은 밤에 책 볼 일이 많지 않다. 그러니 내가 이 램프의 주인임이 부처님의 뜻이라며 잘랐다. 부처님의 뜻이라는 말씀을 핑계 삼아 그대로 들고 왔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유라는 것, 무소유라는 것, 나아가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가 있다. 비록 동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고귀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뭉클한 이야기다. 사과나무 한 그루는 매일같이 소년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소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진다. 그래도 나무는 가끔씩 찾아오는 소년에게, 소년이 필요로 하는 줄기, 가지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도회지로 나간 소년은 연이은 실패를 겪어 늙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그루터기만 달랑 남겨두고 몸통까지 통째로 잘라간다는 것이 줄거리다.
그런데 영어로 된 원작은 계속되는 몸 잘라 가기에도 불구하고 ‘but the tree was happy’가 아니라 ‘and the tree was happy’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니, 열매에 이어 가지 줄기, 심지어 몸통마저 잘라가는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은 당연히 ‘but the tree was happy’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작가는 끝까지 ‘and the tree was happy’라고 고집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같은 등위접속사인 ‘and’와 ‘but’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본다. 굳이 번역하자면 ‘and’의 경우는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로, ‘but’ 의 경우는 ‘그러나 나무는 행복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온몸을 다 주고도 행복했다는 문맥으로 본다면 ‘but the tree was happy’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작가는 ‘and the tree was happy,’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로 끝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매 학기 종강 날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얘기로 작별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리하여 ‘but’보다는 ‘and’ ‘그러나’보다는 ‘그래도’가 주는 숭고한 의미를 나의 제자들이 깨닫고 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나의 메시지를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바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