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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장 12-16절. 교회의 신앙 회복을 통한 목회자의 위로. 요약설교
이번 시간에는, 고린도 교회가 율법주의자들을 제압하고, 원래의 전통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바울 사도가 큰 위로를 얻은 것과 더욱 헌신을 다짐하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2절.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기 전에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눈물의 편지(letter of many tears: 고후 1:4), 혹은 혹독한 편지( severe letter)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써 보낸 편지라고 해서 일명 ‘중간편지’(intermediate letter)라고도 합니다.
이 중간편지를 현지 존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2.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여기서 논점이 되는 것은 바울 사도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가해자의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1) 불의를 행한 자와 그가 저지른 불의는 고린도전서 5장 1절 이하에 기록된 고린도 교회 내의 음행 사건, 즉 아버지의 계모를 취한 패륜아 사건이었다고 보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불의를 당한 자는 아들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비가 될 것입니다.
엘리콧(Ellicott)은 말하기를, ‘불의를 행한 자’는 바울을 공격한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고, ‘불의 당한 자’를 바울로 보는 견해를 헛된 공상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불의 행한 자’를 고린도전서 5장 1-5절에 기록된 사람 즉 계모와 결혼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불의 행한 자’를 아직 살아있는 아버지로 보고 있습니다. (Meyer, Alford, Ellicott, Benson, Barnes, Jamieson-Fausset-Brown, Matthew Poole, Gill, etc)
즉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이 불량한 아들은 계모와 불륜을 저질렀는데, 이때 계모가 의붓 아들과 불륜을 행한 후 남편과 이혼을 하고, 정식으로 아들과 혼인 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the wife, seduced by her step-son or seducing him, had divorced herself)
이처럼 로마 사회에서는 여자가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데 법적인 큰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여자는 5년 안에 8명의 남편을 갈아치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Ellicott's Commentary.
(2) 둘째 해석은 불의를 행한 자는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 거짓 교사이며, 불의를 당한 자는 바울이고, 불의를 행한 것은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도전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시킨 불의한 행위라는 해석입니다. (Bleek, Plummer etc).
문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밖에서 들어온 거짓 교사들(유대적 율법주의자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며(3:1)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는 언동을 하고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를 했을 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때 고린도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바울 사도의 편을 들지도 않고, 또 그 적대자들을 제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회개해야 하고 해명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9-11절).
(2) 또한, 바울 사도가 적대자들로부터 무시당한 것은,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수수방관했던 그 행동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11절).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릇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좋은 말만 하지 않고, 강한 책망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역자가 좋은 말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이니, 축복이니 하는 말만 하거나, 병이 낫고, 복을 받는다는 말만 한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책망도 하시고, 격려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들어와도, 말씀을 바로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 여기에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혹독한 편지”를 보낸 목적이 드러나 있습니다.
즉, 편지를 보낸 목적은 거짓 교사들의 유혹을 받아 바울에게서 떠나갔던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다시 바울 사도에게로 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혹독한 편지”를 보냈던 것인데,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 때문에 심한 오해나 근심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8절).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3) 이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가 “혹독한 편지”를 쓴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죄를 회개하고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로 향했던 마음을 돌이켜 바울 사도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의 마음을 늘 간직하십시오!
이것이 은혜받는 비결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주의 종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간직하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주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종들을 기쁘게 하여,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의 종들을 통해서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주의 종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주의 종을 잘 대접했다가, 가정이 잘되고, 왕국도 번창하고, 병도 고침 받고, 경제적 부요도 얻고,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게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지나칠 정도로 저에게 잘하시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경 원리를 가르쳐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13절.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고린도 교인들이 11절(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진실하게 회개했으므로(their repentance was genuine), 이로 인해서 바울과 디모데가 위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 중간에 혹독하게 써 보낸 편지를 디도가 가지고 갔으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시험에 들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근심했으나,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슬퍼하고 회개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디모데와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러한 위로는 앞으로 다시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거두어야 할 형편이므로(고후 8:6), 이 위로는 더욱 감격적이었던 것입니다.
2.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 디도는 바울 사도가 건네준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향할 때, 자신도 디모데나 바울 사도처럼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도는 전혀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역자인 디도의 이런 모습은 바울 사도의 기쁨을 더욱 크게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소생함을 얻었다’에서 동사(ἀναπέπαυται)가 완료수동태인(has been refreshed) 것은 디도의 마음이 소생하게 된(시원하게 된(고전 16:18, 빌레몬 1:7) 감정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2) 디도의 마음에 “바울 선생님도 쉽게 해결하시지 못한 문제를 내가 간다고 과연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해결하리” 마음속에 부담을 안고, 기도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린도 교회에 가보니, 성도들이 바울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는 회개하고, 오히려 바울 사도를 사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디도는 큰 기쁨을 안고 바울 사도에게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3)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도, 결과가 바르게 나타나지 않을 때는, 사역자의 마음이 대단히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교회 지도자들의 말씀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주의 종들이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4절.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에서 적나라하게 지적한 대로 고린도 교인들의 여러 가지 신앙적 큰 문제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신뢰를 굳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신뢰는 장차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까지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 그리고, 바울 사도는 비통한 심정으로 편지를 써 보내면서도(2:4),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은 믿을 만하고 사랑이 풍부하다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로서 바울 사도의 넓은 마음과 신실함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3. 디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환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 사도는 자신의 확신을 배반하지 않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즉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이 반드시 회개하고 올바른 신앙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울이 말한 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11절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회개했기 때문에, 바울은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4. 이처럼, 성도들이 회개하고 믿음이 성장하는 열매를 맺는 것이 지도자들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보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악한 자들이 돌아오고, 약한 자들이 강하여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야말로 가슴 벅찬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지도자들을 대접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점점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도가 되어가시므로, 지도자들이 참으로 보람을 가지고 사역하도록 도우시기 바랍니다!
15절.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1) 바울 사도는 그 “혹독한 편지”를 보낸 후, 상당한 조바심을 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디도도 고린도 교인들이 그 “혹독한 편지”를 읽고, 그 편지를 전달한 디도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2)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나타낸 반응은 바울 사도와 디도의 염려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디도를 영접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고 보내신 사자를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3) ‘두려움과 떨림’(φόβου καὶ τρόμου: fear and trembling)이란 성도들이 주님을 대할 때 가지는 태도이고, 종들이 주인을 대할 때 갖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6:2.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그러나 이 두려움과 떨림은 노예와 같은 두려움(inward slavish fear)이나 눈앞에서만 떠는 체하는 가식적인 두려움(trembling of body at the sight of him)이 아니라, 커다란 겸손과 많은 존경심(great humility and much deference)을 가지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두렵고 떨림’이나, ‘순종’ 같은 단어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바울 사도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으며, 바울의 대리인인 디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로 존경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젊은 디도가 갔으나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의 부탁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는 바울 선생님을 대하듯 했다는 것입니다.
(4) 디도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디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므로 디도를 존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가 인간적으로 대단해서 성도님들이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기를 물주는 자나 뿌리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들을 지도해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여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목회자가 오더라도 계속 하나님의 사자로 존경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6) 그들이 디도를 떪으로 영접하고는 잘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떪으로 영접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순종해야 떪으로 영접한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7) 그래서, 고린도 교회 형제들에 대해서, 디도의 심정이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나 교사들이나 예배 인도자들이나 지도자들도 더 조심해서 전하게 되고, 더 철저하게 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이들에게 저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고, 알게 되므로, 설교하고 가르칠 때, 최선을 다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참으로 모범적임을 감사드립니다.
2.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 “심정”에 해당하는 헬라어(σπλάγχνα: 스플랑크나)는 원래 ‘몸속의 장기들’(bowels)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부터 '애정', '사랑', '긍휼'( heart, affections, compassion)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디도의 심정이 깊었다는 말은 그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겸손하게 대접하고, 디도의 말에 대해 순종했을 때, 디도는 대단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디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선하고 훌륭한 신앙인들이라고 한 바울의 말(14절)이 사실이었음도 확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디도의 마음속에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충동을 받고 바울 사도를 대적했을 때,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오해가 사라지고, 그 대신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깊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지도자들과 성도들 간에 사랑과 신뢰가 깊고, 언제나 아무런 편견과 오해가 없기를 축원합니다!
16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1.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본 절은 11절 이하에서 말해온 내용들의 결론이고, 기쁨의 결론입니다.
본문에 표현되는 바울의 신뢰와 기쁨은 자신이 애써 수고한 모든 사역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데서 느끼는 사역자로서의 신뢰와 기쁨이었습니다.
이러한 신뢰와 기쁨은 현재 상태의 평안뿐만 아니라, 미래에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구제 헌금(고후 8:6, 9:5)에 대한 소망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즉 다음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Barnes' Notes
2. 바울 사도는 이 모든 위로와 기쁨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천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이 바울로 하여금 실패하지 않는 사역자가 되게 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 간에 한마음과 한뜻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에 대한 기대감을 항상 가지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성도님들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가지고 따름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을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금년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교육복지관 건축을 해나갈 때도, 한마음과 한뜻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으로써, 큰 은혜들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체육대회도 한마음과 한뜻을 일구어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