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론 다시읽기 자료입니다.
제25장 신용과 가공자본
신용제도와 이것이 만들어 내는 수단들(신용화폐 등)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우리 플랜의 범위를 넘어선다. 여기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일반을 특징지우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점만을 강조할 것이다. 상업신용과 은행신용만을 취급하려고 하며, 이 신용의 발달과 공공신용의 발달 사이의 관련은 고찰하지 않을 것이다.(자본3,510)
지불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과, 이에 따라 상품생산자와 상품거래업자 사이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어떻게 단순상품유통에서 발달하는가는 내가 이미 제1권 제3장 제3절 b에서 밝혔다. 상업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것은 유통만을 염두에 두고 생산한다−의 발달에 따라 신용제도의 이 자연발생적 기초는 확대되고 일반화되며 완성되어 간다. 대체로 화폐는 지금 지불수단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즉 상품은 화폐와 교환됨으로써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일에 지불한다는 지불약속서와 교환됨으로써 판매되고 있다.(자본3,510)
단순화를 위해, 이런 모든 지불약속서를 환어음이라고 부를 것이다. 환어음은 지불만기일까지는 그 자체가 지불수단으로 유통하며, 이리하여 현실적인 상업화폐를 이룬다. 이 환어음들은 채권과 채무의 차액결제에 의해 마침내 상쇄되는 범위까지는, 비^록 그것들이 진정한 화폐로 전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화폐로서 기능한다. 생산자들과 상인들에 의한 이런 상호대부가 신용의 실질적인 기초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상호대부의 유통수단인 환어음은 진정한 신용화폐−즉 은행권 따위−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진정한 신용화폐는 화폐유통−금속화폐든 정부지폐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환어음 유통에 근거를 둔다.(자본3,510-511)
요크셔의 은행업자인 리삼은 통화에 관한 편지(18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보는 바에 따르면, 1839년 전체에 걸친 환어음총액은 …£5억2,829만3,842이었고”(그는 외국환어음은 총액의 약 1/5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같은 해에 동시에 발행된 환어음금액은 £1억3,212만3,460이었다.”(56) 환어음은 “유통수단 중 기타의 모든 구성부분의 합계보다 더욱 큰 금액을” 차지하고 있다.(3) “이 환어음이라는 거대한 상부구조는 은행권과 금의 총액으로 구성되는 토대 위에 서 있으며(!), 사태의 진전에 의해 이 토대가 지나치게 축소된다면 환어음의 확실성과 존재 그것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8) “통화의 총액”{엥겔스: 그는 은행권의 총액을 가리키고 있다.}“과 잉글랜드은행⋅지방은행들의 요구불 부채 총액을 합계하면 £1억5,300만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법률에 의해 금으로 태환될 수 있는데, 이 태환청구에 대비한 금은 £1천4백만에 불과하다.”(11) “환어음은…화폐과잉을 방지하거나 너무 낮은 이자율과 할인율−이것은 환어음의 일부를 창조하며 환어음의 거대하고 위험한 팽창을 조장한다−을 방지하는 조치 이외에는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다. 환어음 중 어느 만큼이 진정한 사실상의 거래−예컨대 현실적인 매매−에서 발생한 것인지, 어느 만큼이 가공적이고 단순한 융통어음인지−즉 유통 중인 환어음을 인수하기 위해 새로운 환어음을 발행하며, 이리하여 통화의 창조에 의해 가공자본을 창출하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후자는 화폐가 너무^ 많고 저렴한 시기에는 방대한 규모에 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43~44)(자본3,511-512)
보상케트는 [금속통화⋅지폐⋅신용통화](184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각 영업일에 어음교환소”{엥겔스: 여기에서 런던의 은행업자들은 만기어음과 받은 수표를 교환한다}“를 통해 결제되는 평균지불액은 £3백만을 넘는다. 그런데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하루의 화폐준비액은 £2십만을 크게 넘지 않는다.”(86) {엥겔스: 1889년 어음교환소의 총교환액은 £76억1,875만이었고, 영업일이 약 300일이었으므로 하루 평균교환액은 £2,550만이었다.} “환어음은” 이서에 의해 소유권을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전시키는 한에서는 “화폐로부터 독립한 유통수단(currency)임에 틀림없다”(92) “유통 중의 각각의 환어음은 평균 두 번의 이서를 받으므로…각각의 환어음은 만기가 되기 전에 두 번의 지불을 수행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가정에 따르면 1839년 중에 환어음은 이서만에 의해 £5억2,800만의 두 배−즉 £10억5,600만, 하루 평균 £3백만 이상−의 가치의 소유권을 이전시킨 셈이다. 그러므로 예금과 환어음은 화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소유권을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전시킴으로써 매일 적어도 £1천8백만에 달하는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93)(자본3,512)
투크(1844)는 신용 일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용이란 가장 간단히 말해 신뢰인데, 이 신뢰−확실한 근거가 있든 없든−에 의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의 자본[화폐이든 일정한 화폐가치로 평가된 상품이든]을 맡기게 되며, 이 자본액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에는 상환되어야 한다. 자본이 화폐[은행권이든 당좌대월이든 거래은행 앞 지불명령서이든]로 대부되는 경우 자본 사용에 대한 대가로 상환액에 몇 %가 추가된다. 자본이 상품으로 대부되는 경우^−상품의 화폐가치는 당사자 사이에서 확정되며 판매에 의해 대부가 행해진다−지불만기까지 자본 사용과 위험에 대한 대가가 상환액에 포함된다. 이런 신용에는 대체로 만기일이 정해진 지불약속서가 교부되며, 이 양도가능한 지불약속서는 대부자가 그것의 만기 이전에 자기의 자본을 사용할 [화폐로 사용하든 상품으로 사용하든]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경우 대체로 더 싸게 차입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대부자 자신의 신용이 지불약속서의 다른 서명자의 신용에 의해 강화되기 때문이다.”(87)(자본3,512-513)
코클랭(1842)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신용거래의 대부분은 산업영역 안에서 행해진다…원료생산자는 원료를 가공하는 제조업자에게 원료를 대부하고 후자로부터 특정만기일의 지불약속서를 받는다. 이 제조업자는 자기의 작업부분을 수행한 다음에는 자기의 생산물을 더욱 가공해야 하는 다른 제조업자에게 비슷한 조건으로 대부한다. 이리하여 신용은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점점 더 확대된다. 도매상은 소매상에게 상품을 대부하는데, 그 자신은 제조업자나 중개인으로부터 상품을 대부받는다. 어느 사람이나 한편으로 차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하는데, 때로는 화폐를 그렇게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잦게는 생산물을 그렇게 한다. 이리하여 산업에서는 대부들−온갖 방향으로 서로 결합되고 교차되고 있다−의 교환이 끊임없이 행해진다. 신용의 발달은 이런 상호대부의 확대와 성장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여기에 신용의 힘이 진정한 근거가 있다.”(797)(자본3,513)
신용제도의 다른 측면은 화폐거래업의 발달과 결부되어 있는데, 화폐거래업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상품거래업의 발달과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제4편 제19장에서 본 바와 같이 사업가의 준비금의 보관, 화폐의 수납과 지불, 국제적 지불의 기술적 업무, 그리고 또한 금덩이거래는 화^폐거래업자의 수중에 집중된다. 이런 화폐거래업과 나란히, 신용제도의 다른 측면−이자낳는 자본 또는 화폐자본의 관리−이 화폐거래업자의 특수한 기능으로서 발달한다. 화폐의 차입과 대부가 화폐거래업자의 특수한 업무가 된다. 그는 화폐자본의 진정한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의 매개자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 측면에서 본 은행업자의 업무는 대부가능한 화폐자본을 대량으로 자기 수중에 집중시키는 것이며, 이리하여 개별적인 화폐대부자를 대신해 은행업자가 모든 화폐대부자의 대표로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를 상대하는 것이다. 은행업자는 화폐자본의 일반적 관리자로 된다. 다른 한편에서 그는 산업세계 전체를 위해 차입하는 한에서 모든 대부자에 대해 차입자를 집중시킨다. 은행은 한편에서는 화폐자본의 집중, 대부자의 집중을 상징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차입자의 집중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은행의 이윤은 자기가 대부할 때의 이자율보다 낮게 차입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자본3,513-514)
은행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대부자본은 몇 가지 방식으로 은행에 유입된다. 첫째로, 은행은 산업자본가들의 출납인이기 때문에, 각각의 생산자나 상인이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화폐자본이나 그에게 지불금으로 들어오는 화폐자본이 은행의 수중에 집중된다. 이런 자금들이 대부가능한 화폐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리하여 사업계의 준비금은 공동의 준비금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한정되며, 그렇지 않다면 준비금으로 잠자고 있을 화폐자본의 일부가 이제는 대부되어 이자낳는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둘째로, 은행의 대부자본은 화폐자본가들의 예금에 의해 형성되는데, 화페자본가들은 이 예금의 대출을 은행에 맡기는 셈이다. 은행제도의 발달에 따라 그리고 특히 은행이 예금에 대해 이자를 지불하게 되자, 모든 계급들의 화폐저축과 일시적인 유휴화폐가 은행에 예치된다. 단독으로는 화폐자본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소액들이 결합해 거액으로 되며, 이리하여 하나의 화폐 힘을 형성한다. 소액들을 이렇게 집합시키^는 것은 은행제도의 특수한 기능이지만, 이것은 진정한 화폐자본가와 차입자 사이의 매개인으로서 은행의 기능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끝으로, 점차적으로만 소비되는 수입도 은행에 예금된다.(자본3,514-515)
대부(여기에서는 진정한 상업신용만을 문제로 삼는다)는 어음의 할인−어음을 만기일 이전에 화폐로 전환시키는 것−에 의해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각종 대부에 의해 행해진다. 즉 개인신용에 의한 직접대부, 담보(예: 이자낳는 증권⋅국채⋅주식)에 대한 대부, 특히 선하증권, 창조증권⋅기타의 상품소유증서에 대한 대부, 그리고 당좌대월 따위가 그것이다.(자본3,515)
그런데 은행업자가 제공하는 신용은 각종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예컨대 타은행 앞 어음과 수표, 신용거래한도의 설정, 그리고 발권은행인 경우 은행 자신의 은행권, 은행권은 은행업자가 개인어음을 대신해 발행하는 일람불어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신용형태인 은행권은 일반인에게는 특히 놀랍고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종류의 신용화폐는 상업적 유통으로부터 나와 일반적 유통으로 들어가 여기에서 화폐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며,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은행권을 발행하는 주요은행들은 국립은행과 민간은행의 기묘한 혼합물로서 사실상 국가 신용을 그 배후에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은행권은 대체로 법화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은행권은 유통하는 신용상징에 불과하므로 은행업자가 취급하는 것은 신용 그것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업자는 비록 자기에게 현금으로 예금된 화폐를 대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타의 각종 형태의 신용도 취급한다. 사실상 은행권은 도매업을 위한 잔돈에 불과하며, 예금이 언제나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스코틀랜드의 은행들은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를 제공한다.(자본3,515)
특수한 형태의 은행과 같은 특수한 신용기관들은 우리의 당면한 목적을 위해서는 더 이상 상세히 고찰할 필요가 없다.(자본3,515)
“은행업자의 업무는…다음과 같은 두 부문으로 구분될 수 있다…한 부문은 자본을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수집하여, 그것을 지금 당장 차용하려는 사람들에게로 분배하거나 이전시키는 것이다. 다른 부문은 고객들의 수입에서 나오는 예금을 받아 그들이 소비대상에 지출하려는 만큼의 금액을 그들에게 지불하는 것이다…전자는 자본의 유통이고 후자는 통화의 유통이다.”…전자는 “한편에서는 자본의 집중,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분배와 관련되어 있고, 후자는 그 지방의 지역적 목적을 위한 통화관리와 관련되어 있다.”(투크, 1844:36,37) {엥겔스: 우리는 제28장에서 위의 구절을 다시 취급할 것이다.}(자본3,516)
[상업불황에 관한 비밀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48. (이하에서는 [상업불황, 1847~1848]로 약칭.) 증언기록. 1840년대에는 런던의 환어음 할인에서는 은행권 대신에 한 은행이 다른 은행 앞으로 발행한 21일짜리 어음이 때때로 할인되었다.(지방은행업자 피즈의 증언, 제4636호와 제4645호)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업자들은 화폐가 부족할 때에는 거의 언제나 이런 종류의 어음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다. 고객들이 은행권을 희망한다면 그들은 이 어음을 다시 할인받아야 하였다. 이것은 은행들에게는 화폐를 만드는 특권과 같았다. 존스 로이드은행은 화폐가 부족하고 이자율이 5%를 넘을 때에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훨씬 이전부터’ 지불해왔다. 고객들은 이런 은행업자의 어음을 기꺼이 받았다. 왜냐하면 고객들은 자기 자신의 어음보다 존스 로이드은행의 어음을 훨씬 쉽게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은행업자의 어음들은 때때로 20~30명의 손을 경유하기도 하였다.(같은 책: 제901~905호, 제992호) 이런 형태들은 모두 지불청구권을 이전할 수 있게 한다.(자본3,516)
“신용이 제공되는 형태는 어느 것이나 때때로 화폐기능을 수행하도록 요구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형태가 은행권이든 환어음이든 은행^수표이든, 과정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결과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풀라턴, 1845: 38) “은행권은 소액 잔돈의 신용이다.”(51)(자본3,516-517)
다음은 길바트(1834)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은행의 운용자본은 두 개의 부분, 즉 투하자본과 차입은행자본으로 분할될 수 있다.”(117) “은행자본 또는 차입자본을 조달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예금을 받는 것, 둘째 은행권의 발행, 셋째 어음의 발행.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상으로 100원을 대부하고 내가 이 100원을 다른 사람에게 4%의 이자로 대부한다면, 나는 한 해 동안 이 거래에 의해 4원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의 ‘지불약속’(“나는 지불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것이 영국은행권의 보통의 형식이다)을 받고 연말에 그것을 나에게 반환하면서 4%를−마치 내가 그에게 100원을 대부한 것과 마찬가지로−지불한다면, 나는 이 거래에서 4원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지방의 어떤 사람이 나에게 100원을, 내가 21일 뒤에 그 금액을 런던의 제3자에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가져온다면, 내가 이 21일 동안 그 화폐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자는 나의 이윤이 될 것이다. 이상의 것은 은행업무를 공정하게 표현한 것이며, 예금⋅은행권⋅어음에 의해 은행자본이 창조되는 방식을 공정하게 표현한 것이다.”(117)(자본3,517)
“은행업자의 이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은행자본 또는 차입자본의 금액에 비례한다…은행의 진정한 이윤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투하자본에 대한 이자는 총이윤에서 공제되어야 하며, 그 잔액이 은행의 이윤이다.”(118) “은행업자가 자기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대부는 타인의 화폐로 행해진다.”(146) “은행권을 발행하지 않는 은행업자들은 바로 어음할인에 의해 은행자본을 조성한다. 그들은 할인업무를 예금증대에 봉사하게 만든다. 런던의 은행업자들은 자기들에게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는 상사들에 대해서만 할인을 해준다.”(119) “거래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고, 그 어음금액 전체에 대해 이자를 지불한 상사들은 이 금액의 일부를 무^이자로 거래은행에 남겨 두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은행업자는 현실적으로 대부한 화폐에 대해 현행이자율보다 높은 이자율을 받으며, 자기의 수중에 남은 잔액만큼 은행자본을 조달하게 되는 것이다.”(119~120)(자본3,517-518)
준비금의 절약이나 예금이나 수표에 관해. “예금은행은 유통수단의 사용을 절약하는 데 기여한다. 이것은 예금계좌 사이의 이체원리에 의해 행해진다. …이리하여 예금은행은…소액의 현금화폐로 거액의 거래를 결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풀려난 화폐는 고객에 대한 은행의 대부−할인 또는 기타의 방법−에 사용된다. 그러므로 예금계좌 사이의 이체 원리는 예금제도에 대해 추가적인 효율성을 제공한다.”(123) “서로 거래하는 당사자들이 동일한 은행에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든 다른 은행에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행들은 어음교환소에서 수표들을 상호 교환하기 때문이다…이리하여 예금제도는 계좌 사이의 이체에 의해 금속화폐의 사용을 완전히 몰아낼 정도로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은행에 예금계좌를 가지며 수표로 모든 지불을 행한다면 수표가 유일한 유통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화폐가 은행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수표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124)(자본3,518)
지방의 거래가 은행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것은 다음과 같이 행해진다. (1) 은행지점에 의해. 지방은행은 자기 지방의 소도시들에, 런던의 은행들은 런던의 각 지역에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2) 대리점에 의해.(자본3,518)
“각 지방은행은 런던에 대리점을 가져 자기의 은행권이나 어음에 대해 지불하게 하며…그리고 런던의 거주자가 지방거주자의 계좌에 불입하는 화폐를 받아들인다.”(127) “각 은행업자는 다른 은행업자들의 은행권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재발행하지는 않는다. 모든 대도시에서 은행업자들은 한 주에 한두 번 만나서 자기들의 은행권을 교환한다. 그 차액은^ 런던 앞 어음에 의해 지불된다.”(134) “은행업의 목적은 거래를 쉽게 하도록 하는 것이며, 거래를 쉽게 하는 것은 온갖 투기도 쉽게 만든다. 거래와 투기는 어떤 경우에는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거래가 끝나고 투기가 시작되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은행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더 손쉽게 그리고 더 낮은 이자율로 자본을 얻을 수 있다. 자본이 싼 것은 투기를 조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쇠고기와 맥주가 싼 것이 폭식과 술주정을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137,138)(자본3,518-519)
“자기 은행권을 발행하는 은행들은 항상 이 은행권으로 지급하므로, 그들의 할인업무는 전적으로 은행권의 발행에 의해 얻은 자본으로 수행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은행업자는 자기가 할인하는 모든 어음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지만, 자기 수중에 있는 어음의 9/10는 현실의 자본을 대표할 수 있다. 이 어음에 대해 먼저 자기 자신의 은행권이 지급된다 하더라도, 이 은행권들은 어음의 만기일까지 유통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음은 만기일까지 3개월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은행권은 3일이 지나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172)(자본3,519)
“당좌대월은 일상적인 일이며 이 대월은 사실상 당좌예금계좌가 제공되는 목적이기도 하다…당좌대월은 개인보증에 의거해 제공될 뿐 아니라 유가증권의 예탁에 의해서도 제공된다.”(174,175) “상품을 담보로 대부되는 자본은 어음할인에 의해 대부되는 자본과 마찬가지 결과를 낳는다. 어떤 사람이 자기 상품을 담보로 100원을 차입한다면, 이것은 그가 자기 상품을 100원의 어음을 받고 판매하며 그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받는 것과 같다. 물론 그는 상품담보대부를 받음으로써 시장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그 상품을 보유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긴급하게 필요한 화폐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입었을 희생을 회피하게 된다.”(180~181)(자본3,519)
[통화이론 검토](익명의 저자, 1845: 62, 63)에서 인용. “당신이 오늘 A에게 예금하는 1,000원이 내일 재발행되어 B에게 예금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모레는 그것이 B에서 다시 발행되어 C에게 예금되며…이리하여 무한히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1,000원의 화폐는 일련의 이전에 의해 절대로 확정될 수 없는 예금액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국 총예금의 9/10는 은행업자들−각각 총예금에 대해 책임을 진다−의 장부상의 기록 이외에는 어떤 실체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이리하여 예컨대 스코틀랜드에서는 통화”(이것도 거의 대부분 지폐다)“는 £3백만을 초과한 적이 없는데 은행예금은 £2천7백만으로 추산되고 있다…전반적인 예금인출소동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말한 동일한 1,000원은 반대의 경로를 거쳐 확정될 수 없는 거액을 마찬가지로 쉽게 결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오늘 어느 사업가에 대한 채무를 결제하며 모레에는 은행에 대한 그 상인의 채무를 결제한다는 것으로 끝없이 진행될 수 있으므로, 그 1,000원이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은행에서 은행으로 돌아다니면서 거대한 예금액을 결제할 수 있는 것이다.”(자본3,520)
{엥겔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길바트는 1834년에 이미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있었다. 즉 “거래를 쉽게 하는 것은 모두 투기도 쉽게 한다. 거래와 투기는 어떤 경우에는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거래가 끝나고 투기가 시작되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담보로 대부를 받는 것이 쉬우면 쉬울수록 이런 대부를 그만큼 더욱 많이 받게 되며, 그리고 단순히 화폐대부를 받기 위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이미 제조된 상품을 먼 시장에 투매하려는 시도가 그만큼 더욱 성행하게 된다. 어떻게 한 나라의 사업계 전체가 이런 투기에 사로잡힐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투기는 무엇을 초래하는가에 대해서는 1845~1847년의 영국 상업사가 적절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신용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음의 실례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의 예비적인 언급이 필요하다.(자본3,520-521)
1837년 이래 거의 계속된 영국산업의 불황은 1842년 말에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2년 동안 영국 공산품에 대한 수출수요는 한층 증대하였으며, 1845~1846년은 최고의 번영기였다. 1843년에 아편전쟁은 영국 무역을 위해 중국을 개방하였다. 이 새로운 시장은 공업, 특히 면공업의 더욱 큰 확장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어떻게 생산이 과잉으로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3억 인구를 입혀야만 한다.”고 맨체스터의 한 공장주는 그 당시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공장건물⋅증기기관⋅방적기⋅직기 따위를 아무리 신설하더라도, 대량으로 유입되는 랭커셔의 잉여가치를 흡수하기에는 불충분하였다. 생산을 증대시킨 바로 그 열정이 철도건설로 향하였다. 여기에서 공장주들과 상인들의 투기욕은 1844년 여름 비로소 만족되었다. 주식은 완전히−즉 제1회의 불입을 감당할 화폐가 있는 한껏−인수되었다. 그 나머지의 불입에는 또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서! 그러나 그 다음의 불입시기가 닥쳐 왔을 때에는−[상업불황, 1848~1857] 질문 제1059호에 따르면 1846~1847년에 철도에 투하된 자본은 £7천5백만에 달하였다−신용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본업은 대체로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다.(자본3,521)
그런데 이 본업도 대부분의 경우 이미 과중한 부담을 걸머지고 있었다. 높은 이윤에 유혹되어 영업이 이용가능한 유동성자산의 허용범위를 넘어서 확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용은 손쉽게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쌌다. 잉글랜드은행 할인율은 낮았다. 1844년에는 1 3/4 ~ 2 3/4%이었고, 1845년 10월까지는 3% 이하이었다가 짧은 기간에 5%까지 상승한 뒤(1846년 2월), 다시 1846년 12월에는 3 1/4%로 저하하였다. 잉글랜드은행은 자기 금고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거액의 금준비를 가지고 있었다. 국내의 모든 주식시세는 미증유의 높은 수준에 있었다. 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인가? 왜 재빨리 사업에 착수하지 않을 것인가? 왜 영국제품을 갈망하고 있는 해외시장에 제조할 수 있는 한도까지 모든 상품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왜 공장주는 극동에서 자기의 면사와 면포를 판매하는 것과 그 대신에 얻은 상품을 영국에서 판매하는 것에서 생기는 이중의 이윤을 취득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자본3,521-522)
이리하여 대부를 받아 인도와 중국에 대량으로 위탁판매하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이 제도는 다음에서 자세히 묘사하는 것처럼 단순히 대부를 받기 위한 위탁판매제도로 발전하였으며, 또 필연적으로 시장의 대규모 범람과 파국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자본3,522)
파국은 1846년의 흉작에 의해 폭발하였다. 잉글랜드 그리고 특히 아일랜드는 식량, 그 중에서도 밀과 감자의 대규모 수입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데 이것들을 공급할 나라들에게 영국의 공산품으로 지불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였다. 귀금속으로 지불해야만 하였다. 적어도 £9백만의 금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 중 £7백5십만이 잉글랜드은행의 금준비에서 나왔으므로 화폐시장에서 잉글랜드은행의 행동의 자유는 크게 손상되었다. 기타의 은행들−이들의 금준비는 잉글랜드은행에 예치되어 있으며 사실상 잉글랜드은행의 금준비와 동일한 것이었다−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화폐의 융통을 제한해야 하였다.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되던 지불들의 흐름이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나중에는 전반적으로 정체에 빠졌다. 1847년에는 아직도 3 ~ 3 1/2%이었던 잉글랜드은행 할인율은 제1차 공황이 발발한 4월에는 7%로 상승하였다. 여름에는 일시적이고 미약한 완화(6 1/2%, 6%)가 있었으나, 새로운 작물이 또한 흉작이었기에 공황은 새롭게 그리고 더 격렬하게 발발하였다. 잉글랜드은행의 공정최저할인율은 10월에 7%로, 11월에는 10%로 상승하였으므로, 대부분의 어음은 만약 할인될 수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높은 이자율로 할인될 수밖에 없었다. 지불들의 일반적 정체는 몇몇의 주요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체를 파산시켰으며, 잉글랜드은행 자신도 교활한 1844년의 은행법과 이것이 부과한 제한들 때문에 붕괴의 위험에 빠졌다.(자본3,522-523)
정부는 일반적인 요구에 굴복해 10월 25일 은행법을 정지시키고, 그리하여 잉글랜드은행에 부과된 불합리한 법적 규제를 풀었다. 잉글랜드은행은 이제 아무런 장애 없이 자기의 은행권을 유통에 방출할 수 있게 되었다. 잉글랜드은행권의 신용은 사실상 국민의 신뢰에 의해 보증되어 있고 따라서 손상받지 않았으므로, 화폐부족은 결정적으로 완화되었다. 물론 절망상태에 빠져 있던 다수의 기업들[크든 작든]은 여전히 파산하였지만, 공황의 정점은 극복되었고, 잉글랜드은행 할인율은 12월에 다시 5%로 하락하였다. 1848년 중에는 사업활동의 부활이 전개되기 시작하였고, 이 사업활동은 1849년에는 유럽대륙의 혁명운동을 좌절시키면서 1850년대에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산업번영을 초래하였는데, 이것은 또 다시 1857년의 파국에서 종결되었다.}(자본3,523)
(1) 1847년의 공황 중에 국채나 주식이 크게 감가한 것에 대해서는 1848년 상원이 발행한 하나의 문서가 해명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1847년 2월의 가치에 비교한 1847년 10월 23일의 수준은 다음의 금액만큼 하락하였다.
영국국채 £ 93,824,217
부두⋅운하주식 £ 1,358,288
철도주식 £ 19,579,820
--------------------------------------------
합계 £114,762,325
(2) 동인도와의 거래에서 사기[상품이 판매되었기 때문에 어음이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할인가능하고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어음을 발행하기 위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관해서는 [매체스터 가디언]이 1847년 11월 24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자본3,523-524)
런던의 A는 B를 통해 맨체스터의 제조업자 C로부터 동인도의 D에게 보낼 상품을 구매하게 한다. B는 C가 B 앞으로 발행한 6개월짜리 어음으로 C에게 지불한다. B는 이미 A 앞으로 발행한 6개월짜리 어음으로 지불을 받았다. 상품이 선적되자마자 A는 선하증권을 근거로 D 앞으로 6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한다.(자본3,524)
“이리하여 상품의 판매자와 하주는 모두 상품의 대금을 실제로 받기 몇 개월 전에 자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어음은 만기가 되면 이와 같은 ‘장기거래’에서는 회수에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는 구실로 갱신되는 일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거래에서 손실이 생기면 이런 거래가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된다. 당사자들이 가난하게 되면 될수록, 그들은 이전의 투기에서 잃은 자본을 새로운 대부에 의해 보충하기 위해 그만큼 더욱 많이 구매해야 하였던 것이다. 이제 구매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기업의 금융조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태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상품의 수출과 관련해 생긴 것이 해외에서도 생산물과 구입과 선적에서 생기고 있다. 자기의 어음을 할인받을 만큼의 신용을 가진 인도상사들은 설탕⋅인디고⋅비단⋅면화를 구매하였다. 그런데 이 구매의 이유는, 런던의 가격(이것도 지난번의 육상우편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에 비해 인도 현지의 가격이 이윤을 약속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런던상사 앞으로 발행한 이전의 어음이 곧 만기가 되어 지불해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한 뱃짐의 설탕을 구매하고 그 대가를 런던상사 앞 10개월짜리 어음으로 지불하며, 그 선하증권을 육상우편으로 런던에 보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2개월이 채 못 되어, 공해상에 있는 그 상품, 또는 아마도 후그리만^도 통과하지 못하였을 그 상품이 롬바드가에서 담보로 되었으며, 이리하여 런던상사는 이들 상품에 대해 발행된 어음이 만기가 되기 8개월 전에 화폐를 얻을 수 있었다. 할인상사(bill-broker)들이 콜자금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 선하증권과 창고증권에 대해 대부하며, 그리고 인도의 상사들이 민싱 레인에 있는 이름난 기업 앞으로 발행한 어음을 무제한으로 할인할 수 있었던 동안은, 만사가 중단이나 곤란 없이 진행되었다.”(자본3,525)
{엥겔스: 이런 사기적인 방법은 상품들이 희망봉을 거쳐 인도를 가거나 인도로부터 오는 동안에만 성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품들이 수에즈운하를, 더욱이 기선으로 통과하기 때문에 가공자본을 조성하는 이런 방법은 그 바탕−상품의 긴 여행기간−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전신에 의해 영국사업가는 인도의 시장상황을, 그리고 인도상인은 영국의 시장상황을 그날 중에 알게 되었으므로 이런 방법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자본3,525)
(3) 다음의 것은 이미 인용된 [상업불황, 1847~1848]에서 뽑은 것이다. “1847년 4월의 마지막 주에 잉글랜드은행은 로얄 뱅크 오브 리버풀에게 앞으로는 할인업무를 절반의 금액으로 감축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이 통보는 매우 큰 곤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리버풀에 대한 지불은 최근에는 현금보다 훨씬 많이 어음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리고 평소에는 자기의 인수어음을 지불하기 위해 다액의 현금을 그 은행에 가져왔던 상인들이 최근에는 어음−자기들의 면화나 기타의 생산물의 대가로 받은 어음−만을 가져올 수 있었으며, 그리고 시장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이런 현상이 더욱 급속하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그 은행이 상인들을 위해 지불해야 했던 인수어음은 주로 외국에서 그들 앞으로 발행된 것들이었는데, 상인들은 종래에는 그들의 생산물의 대가로 받은 것에 의해 그것들을 결제했던 것이다…상인들이 종전의 현금 대신에 가져온 어음들은^ 유효기간이나 종류가 각양각색이었다. 3개월짜리 은행어음이 상당수 있었고 대다수는 면화어음이었다. 이 환어음들은 은행어음인 경우에는 런던의 은행업자들이나 상인들−브라질⋅미국⋅캐나다⋅서인도 등과 거래하는 상인들−에 의해 인수되었다…리버풀의 상인들은 상호간에 어음을 발행하지는 않았으며, 그들로부터 생산물을 구입한 국내 고객들이 그 지불을 런던은행 앞 어음 또는 런던상사 앞 어음 또는 어떤 누구 앞의 어음으로 행한 것이었다. 잉글랜드은행의 위와 같은 통보는 외국생산물의 판매에 바탕을 둔 어음의 만기−종전에는 3개월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를 단축시키게 되었다.”(26,27)(자본3,525-526)
영국의 1844~1847년의 번영기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최초의 대규모 철도투기와 결부되어 있었다. 이 투기가 사업 일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상업불황, 1847~1848]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47년 4월에 “거의 대부분의 상사들은 자기들의 상업자본의 일부를 철도에 투하함으로써 자기들의 사업을 다소간 굶주리게 하기 시작하였다.”(42) “철도주를 담보로 개인⋅은행업자⋅보험회사는 예컨대 8%라는 높은 이자율로 대부하였다.”(66) “상사들이 이렇게 큰 금액을 철도에 투자하였으므로, 그들은 자기의 상업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음할인을 통해 은행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67) “질문: 철도주식에 대한 불입이 1847년 4월과 10월의 화폐시장 핍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인가? 답: 4월의 핍박을 일으키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4월까지는, 아마도 여름까지도 철도주식 불입은 어떤 면에서는 은행업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철도에서 현실적인 지출은 그 불입만큼 빨리 행해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은행들은 연초에는 거액의 철도자금을 수중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은 [상업불황, 1848~1857]에 있는 은행업자들의 수많은 증인에 의해 확인된다.) “이 철도자금은 여름에 점차로^ 줄어들기 시작해 12월 31일에 뚜렷하게 감소하였다. 10월 핍박의 하나의 원인은 은행업자의 수중에 있던 철도자금의 점진적인 감소였는데, 4월 22일~12월 31일에 우리 수중에 있던 철도자금 잔액은 1/3만큼 감소하였다. 철도주식 불입도 영국 전체에 걸쳐 이런 영향을 미쳤는데, 그 불입은 은행예금을 점차로 고갈시키고 있었다.”(43,44)(자본3,526-527)
사뮤엘 거니(악명높은 오브랜드 거니상사의 사장)도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1846년 중에는 철도건설을 위한 자본의 수요가 상당히 컸다…그러나 화폐의 가치를 상승시키지는 않았다…소액의 자금들이 모여 거액이 되었고, 이 거액의 자금들이 우리의 시장에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전체로 볼 때 시티의 화폐시장에 투입된 화폐가 인출된 화폐보다 더욱 컸다.”(159)(자본3,527)
리버풀 조인트스톡 뱅크의 이사인 호지슨은 어느 정도까지 은행의 준비금이 환어음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받은 예금 전체의 적어도 9/10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은 화폐 전부를 매일 매일 차례로 만기가 되는 어음으로 보유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었다…그리하여 예금인출 소동의 기간에는 매일 만기가 되는 어음금액이 매일의 예금지불 청구금액과 거의 동등할 정도였다.”(53)(자본3,527)
투기어음: “제5092호. 이런 어음(판매된 면화에 대해 발행된 것)은 일반적으로 누구에 의해 인수되었는가?”{엥겔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된 면공장주 가드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상품브로커에 의해서다. 상인은 면화를 구매해 브로커의 손에 넘겨주고 브로커 앞으로 어음을 발행해 그 어음을 할인받는다.” “제5094호. 그 어음을 리버풀의 은행에 가지고 가서 할인받는가? −그렇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할인받는다…이와 같은 할인혜택 그리고 주로 리버풀의 은행들에 의한 할인이 없었다면, 면화가^ 적은 지난해에 파운드lb. 당 1 1/2 ~ 2펜스나 상승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제600호. 당신은 투기업자들이 리버풀의 면화브로커 앞으로 발행한 거액의 어음이 유통되었다고 말하였다. 면화 이외의 식민지 생산물에 대한 어음을 담보로 한 당신의 대부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리버풀의 은행업자인 호지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모든 종류의 식민지 생산물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특히 면화가 그렇다.” “제601호. 당신은 은행업자로서 그런 종류의 어음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하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런 어음이 적당한 분량이라면 매우 정당한 어음으로 여긴다. 그런 어음은 자주 갱신된다.”(자본3,527-528)
1847년 동인도시장과 중국시장의 사기: 찰스 터너(리버풀에 있는 일류 동인도상사의 사장)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리셔스섬과의 무역과, 이와 비슷한 종류의 무역과 관련해 발생한 사건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브로커들은 상품이 도착한 뒤에 그 상품에 대해 발행한 어음을 지불하기 위해 그 상품을 담보로 대부를 받거나−이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선하증권을 담보로 대부를 받는다…그러나 그것뿐 아니라 그들은 상품이 선적도 되기 전에, 몇몇의 경우에는 상품이 제조되기도 전에 그 상품을 담보로 대부를 받았다. 나 자신도 어느 특수한 경우에 캘커타에서 £6,000~7,000어치의 어음을 구매한 적이 있다. 이 어음의 대금은 모리셔스로 가서 설탕재배에 사용되었다. 그 어음이 영국에 왔을 때 그 절반 이상은 인수를 거절당했다. 왜냐하면 이 어음의 지불에 충당해야 할 설탕이 실려왔을 때 그 설탕은…선적되기 전부터, 아니 사실상은 거의 제조되기도 전부터 제3자에게 담보로 잡혀있었기 때문이다.”(78)(자본3,528)
“지금 제조업자들은 현금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구매자가 런던에서 약간의 신용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런던 앞으로 어음을 발행해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자는 지금 할인율이 낮은 런던에 가서 어음을 할인받아 그 현금으로 제조업자에^게 지불한다…상품의 선적자가 인도로부터 대금을 회수하는 데는 적어도 12개월이 걸린다…£10,000~15,000을 가진 사람은 인도와의 무역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는 런던의 상사와 상당한 금액에 달하는 신용거래를−1%를 주고−개설할 수 있다. 그가 이 런던의 상사 앞으로 어음을 발행할 때에는 인도로 수출되는 상품의 대금은 그 상사로 들어간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러나 런던의 상사가 현금대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다시 말해 그 어음은 상품의 대금이 회수될 때까지 갱신된다는 것−을 당사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 어음들은 리버풀이나 맨체스터나…런던에서 할인되며…그 다수는 스코틀랜드의 은행의 수중에 있다.”(79)(자본3,528-529)
“제786호. 최근 런던에서 파산한 한 회사가 있는데, 그의 업무감사에서 다음과 같은 종류의 거래가 행해졌음이 밝혀졌다. 이 회사는 맨체스터와 캘커타에 각각 하나의 지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런던상사와 £2십만의 신용계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맨체스터 지사는 글래스고와 맨체스터로부터 캘커타 지사에 위탁판매상품을 보내고 런던상사 앞으로 £2십만에 달하는 금액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었으며, 캘커타 지사도 런던상사 앞으로 £2십만에 달하는 금액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캘커타에서 팔린 상품의 대금으로 캘커타 지사는 다른 어음들을 구매해 런던상사에 보내어 글래스고에서 발행된 처음의 어음을 지불하게 하였다…결국 이 하나의 거래에 의해 £6십만어치의 어음이 창출될 수 있었다.”(자본3,529)
“제971호. 현재에는 캘커타 지사가 영국으로 가는 뱃짐을 구매하고 런던의 거래은행 앞 자기자신의 어음으로 지불하며 그리고 그 선하증권을 영국본사로 보낸다면, 본사는 이 선하증권을 가지고 곧 롬바드가에서 대부받을 수 있으며, 이리하여 캘커타 지사가 지불하기 전 8개월 동안 그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자본3,529)
(4) 1848년에 상원의 한 비밀위원회는 1847년 불황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위원회에서의 증언은 1857년까지 공표되지 않았^다.([상업불황에 관한 상원비밀위원회 보고서], 1848. 이하에서는 [상업불황, 1848~1857]로 약칭.) 여기에서 유니언 뱅크 오브 리버풀의 이사인 리스터는 다음과 같이 증언을 하고 있다.(자본3,529-530)
“제2444호. 1847년 봄에는 신용의 이상한 팽창이 있었다…왜냐하면 사업가들이 자본을 자기의 사업에서 철도로 이전시켰으며, 그러면서도 사업을 종전의 규모로 속행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도 처음에는 철도주식을 팔아 이윤을 얻고 그리하여 사업자금을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은 종전에 현금을 납입하던 곳에서 신용을 얻은 것이다. 이리하여 신용의 팽창이 일어났다.”(자본3,530)
“제2500호. 인수한 은행들에게 손실을 준 이 어음들은 주로 곡물이나 면화에 대한 것들이었는가?−그것들은 각종의 생산물, 즉 곡물⋅면화⋅설탕⋅기타의 각종 외국생산물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석유를 제외하고는 가격이 하락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제2506호. 어음인수업자는 가격하락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고서는 어음을 인수하지 않는다.”(자본3,530)
“제2512호. 생산물에 대해 발행되는 어음은 두 종류다. 첫째 종류는 해외에서 수입상인 앞으로 발행되는 최초의 어음이다…생산물에 대해 발행되는 어음들은 그 생산물이 도착하기 이전에 만기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므로 수입상인은−상품이 도착하더라도 자기가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그 생산물을 팔 수 있을 때까지 그 생산물을 담보로 브로커 앞으로 새로운 종류의 어음을 발행하게 되는 것이다…브로커가 그 생산물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가 그것에 대해 얼마만큼 대부하였는가를 브로커로부터 확인하는 것은 은행업자의 일로 된다. 은행업자는 손실을 보게 될 때 보상받을 수 있을 만큼의 담보를^ 브로커가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만 한다.”(자본3,530-531)
“제2516호. 우리는 또한 외국으로부터 어음을 받는다…어떤 사람이 영국 앞으로 발행된 어음을 해외에서 매입해 그것을 영국의 한 상사에 보낼 수 있다. 우리는 그 어음이 사리에 맞게 발행된 것인지 아닌지, 그 어음이 생산물에 대해 발행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자본3,531)
“제2533호. 당신은 거의 모든 외국생산물이 큰 손실을 보면서 판매되었다고 말했다. − 그 이유는 대규모의 수입 때문이었으며, 그리고 그 수입을 처분할 만한 소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비가 크게 감소한 것 같다.” “제2534호. 10월에는 생산물은 거의 판매될 수 없었다.”(자본3,531)
파국의 정점에서는 “각자 가지 몸을 돌보라”가 어떻게 일반적으로 전개되는가에 대해서는, 같은 보고서에서 최고의 권위자이며 위신있고 노련한 퀘이커교도 사뮤엘 거니(오브랜드 거니상사의 사장)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자본3,531)
“제1262호. 공황상태에 빠지면 사업가는 자기의 은행권을 어느만큼 유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가, 또는 자기의 국고증권이나 3% 국채*를 팔면 1%의 손실을 볼 것인가 2%의 손실을 볼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일단 공포에 사로잡히면 이윤이나 손실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는 자기의 안전만을 도모하게 된다.”(자본3,531)
* 1751년에 영국정부는 이미 발행한 국채 9종류를 통합정리하여, 이자를 무기한 연금형태로 지불할 수 있는 3% 통합연금국채(consolidated 3% annuities or stock)(약칭 콘솔consol)를 발행했다.(자본3,531)
(5) 두 시장이 서로 상대방 시장을 포화상태로 만드는 것에 대해, 동인도와 무역하고 있는 상인 알렉산더는 은행법특별위원회 보고서, 1857(은행법, 1857로 약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4330호. 현재에는 내가 맨체스터에서 6실링을 투자하면 인도에서 5실링을 회수하며, 인도에서 6실링을 투자하면 런던에서 5실링을 회수하는 상황이다.”(자본3,531-532)
결국 인도시장은 영국에 의해, 그리고 영국시장은 인도에 의해 과잉으로 공급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1847년의 혹독한 경험을 겪은 뒤 10년도 채 되지 못한 1857년 여름의 일이었다!(자본3,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