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쿠티아 공화국 또는 사하공화국
야쿠티아는 러시아어고 사하는 사하어로 같은 뜻이다.
오래전 바이칼 호수근처에는 전쟁이 끈임없이 일어났다.
야쿠티아인들은 지긋한 전쟁을 피해서 레나강을 타고 추운 북쪽으로 이주했다.
겨울평균 기온이 영하42도인 추운 야쿠티아지만 전쟁의 불안없이 사는 것을 선택했다.
야쿠티아에는 100만개 이상의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물고기와 풍부한 먹이가 있으며 특히 새들이 좋아하는 모기 등 해충 등이 많다.
그래서 여름이면 세계각지의 새들이 야쿠티아로 날아온다.
야쿠티아를 상징하는 새는 백학이다. 백학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보면 복이 온다고 믿는다.
야쿠티아인들은 가족단위로 호수가에서 모여살았다.
그래서 야쿠티아 언어에는 인사와 고맙다는 말이 없으며 또 욕이 없다.
물론 인사가 있지만 후에 러시아어에서 차용된 것이다.
지금도 야쿠티아 오지로 가면 전기와 수도가 없으며 인터넷 또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야쿠티아는 땅을 1m만 파면 얼음이 나오는 동토의 땅이다.
그래서 집을 지을때도 지상에 공간을 두고 짓는다.
지상에 바로 집을 지을경우 하부의 얼음이 녹으면서 집이 내려앉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야쿠티아에는 몇십층의 고층건물이 없다.
야쿠티아공화국 수도 야쿠츠크는
1632년 부터 시작되니 올해가 388주년이 되는 해이다.
388년전 황제의 군사들이 동쪽을 차지하기 위하여 레나강을 타고 들어왔을 것이고
당시 변변한 무기도 없던 야쿠티아인들은 반항해 보았지만 무참히 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침략하기 전부터 이곳에는 야쿠티아인외에도 수많은 인종들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지배 했지만
이들은 레아강 유역이나 호수근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사냥을 하면서
서로 싸우지 않고 평온하게 살고있었다.
야쿠트족과 예벤족 또 에벤키족은 순록을 키우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갔다.
20세기 초 야쿠티아에서 금과 다이야몬드 등 자원을 발굴되면서 인력이 필요했는데
당시 일제의 압박으로 먹고살기가 힘들게된 많은 한인들이 금을 찾아서 야쿠티아까지 찾아왔다.
러시아 다이야몬드의 90% 가량이 야쿠티아에서 생산되며 그외에도 엄청난 자원이 묻혀있다.
야쿠티아 공화국에는 많은 강이 있는데 동토위에 다리를 놓는 기술이 부족하고 설령
놓는다고 해도 경비가 많이 들기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내생각에 이것은 다 변명이고 한국 같았으면 벌써 다리 100개는 만들었을 것이다.
도로가 없으니 오지 사람들은 비행기 외에는 이동수단이 없다.
그러니 야쿠티아에는 인구 2천명의 시골에도 공항이 있고 더 심한곳은 헬기가 다닌다.
다행히도 겨울에는 얼음위로 도로가 생기고 여름에는 배를타고 이동하지만
얼음이 얼고 녹는 봄 가을에는 이동수단은 비행기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탈린은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무자비하게 죄수들을 몰아 붙였기에
동서로 2.000km 를 관통하는(야쿠티아 ~ 마가단) 도로가 만들어졌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었던 북쪽 베르흐얀스크 지역 바타가이에 갔더니
예쁜 기차역이 있었다.
아니 기차도 없는데 무슨 기차역이 ???
1950년대에 스탈린은 야쿠츠크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또 기찻길을 만들 생각을 한 후에 선전 차원에서 먼저 기차역을 만든 것이었다.
만일 그때 철도가 완성 되었다면 자원을 운송할 길이 만들어 졌으니
지금 러시아 최고의 자원을 보유한 야쿠티아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북쪽에는 그냥 강가에 석탄띠가 만들어져 있을 만큼 석탄과 광석등이 풍부하다.
야쿠티아는
동.서양이 공존하는 시베리아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추운지역이다.
야쿠티아인 35프로 러시아인 37프로 외에 120여개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특별한 지역이다.
땅은 넓으나 인구가 적은데 어떤 군은 남한보다 큰 영토에 고작 4.000명이 살고있다.
추운 북쪽지역은 11월부터 3월까지는 태양을 볼수 없지만 예쁜 오로라가 보인다.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는 여름에는 백야가 지속된다.
땅속에는 맘모스가 묻혀있고 러시아 다이야몬드 90%가 야쿠티아에서 생산된다
북쪽 야쿠티아 지역은 길이 없으니
1.000km 를 가도 사람사는 흔적을 볼수없는 지역도 있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이것을 운송하는 경비가 많이 드니까 그냥 묻어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북극이 녹고있는데 이것이 야쿠티아 인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럽과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등 많은 자원을 북쪽바다를 통하여 운송할 경우 몇천km 가 단축되니
시간과 돈이 엄청 절약되고 특히 한국에게는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야쿠티아 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
인구가 100만명도 안되는 야쿠티아 공화국은
남한의 30배이상의 영토를 가진 러시아에서 최고로 넓은 공화국이다.
동서로 3.500km 의 도로가 열려있지만 자방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많지않다.
야쿠티아 공화국의 겨울 평균기온은 영하 42도다.
날씨가 춥기에 자동차를 주차한 후에 시동을 꺼면 자동차가 얼어버려서 주행을 할 수가없다.
그래서 주차된 차들은 모두 시동이 켜져있거나 위의 사진처럼 따스한 커버로 덮어져야한다.
온열기가 장치된 따스한 주차장이 없거나
매번 커버를 설치하기가 귀찮은 사람들은
온도가 영하30도 대로 떨어지는 11월부터 아에 이렇게 방치해둔다.
그리고 온도가 영하 20도 대로 올라가는 3월 ~ 4월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집에 주차장이 없는 사람들은 칸막이로 된 주차장을 빌려야하는데 엄청비싸다.
야쿠티아 공화국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땅을 1m만 파면 얼음이 나오기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길에는 곳곳에 이처럼 겨울내내 방치되는 차들을 볼수가 있다.
미신을 많이 믿는 야쿠티아인들은 신성한 산이나 강 또 지방의 경계지점을 통과할때는
밀가루 떡을 바친다
신기하게도 이것을 알고있는 배고픈 개들은 옆에서 기다렸다가 챙겨 먹는다.
야쿠티아 공화국의 모든 배수관들은 지상으로 이어진다.
지하는 얼어있기때문에 배수관을 묻을경우 얼어버려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도시를 벗어나면 시골은 거의 많은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
영하50도의 추위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적응된 야쿠티아 인들은 자연스럽게 살아가고있다.
국도를 가다보면 가끔 이런 식당들이 보인다.
이것을 놓치고 나면 다음식당은 100km 이상을 달려야 나온다.
야쿠티아 국도에는 식당이나 상점은 물론이고 마을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보게되는 것이 눈을 치우는 제설차다.
야쿠티아인들에게 물은 귀하다.
도시를 벗어나면 수도는 없고 물차가 강에서 물을 길러서 집집마다 배달하면 집에서는
전기 모터를 돌려서 수도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헤택은 그래도 인구가 몇천명 이상 되는 읍단위에서나 가능하다.
시골사람들은 호수나 강으로 가서 이렇게 얼음을 가지고와서 녹여서 식수를 해결한다.
조그만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그날 먹은 모든 그릇을 싰은 후에 그냥 수건으로 닦으면 끝이다.
물이 귀하니까 한국처럼 수돗물을 틀어놓고 행구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야쿠티아 시골에서 흔히보게되는 것이 얼음덩어리를 쌓아놓은 것이다.
야쿠티아인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표현에 인색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잘 한 것을 자랑할 때는 침을 뱉고 자랑한다.
남을 도와주거나 도움을 받았더라도 크게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후에 받은 것을 되갚아준다.
산을 오를때도 큰소리를 내지않으며 자연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
자신의 건강을 자랑할 경우 신이 건강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여 항상 겸손하다.
시골에 가보면 골목길에 형제들이 연 이어서 살지만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
러시아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야쿠티아 사람들은 집에 꽃을 키우는 것을 즐겨한다.
3월8일 여성의 날에는 거리마다 꽃파는 사람들이 늘어서있다.
심지어는 버스들이 손님 태우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를 몰고 꽃을 팔러다닌다.
추운 야쿠티아에서는 바깥에 꽃을 두면 금방 얼기에 이렇게 버스안에 꽃을 두고 판매한다.
어떤 지역에는 마을이 있는데 어떤 지역은 몇백 km 를 가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꼭 호수나 강물이 흐르는 주변에 모여있다.
야쿠티아인들은 호수주변에서 물을 얻고, 낚시를 하고 호수에 살고있는 오리를 사냥하고
주변의 곰이나 짐승을 사냥하여서 가죽을 얻어서 옷을 해입고 따스할때 각종 야생열매를 따서
저장해놓고 겨울을 나는 것이다.
야쿠티아 강에는 잡는 사람들이 없으니 물고기가 풍부하다.
특히 러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차갑고 깨끗한 물에서 자란 야쿠티아 생선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스크바나 외국으로 나가 살다가도 고향의 생선맛을 그리워한단다.
시골로 갈때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계란을 몇판씩 들고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이 도시로 돌아올때는 얼어있는 생선을 한자루씩 들고 돌아온다.
열악한 북쪽에는 계란을 구하기가 쉽지않다.
겨울이 시작할때 한번 만들어 놓으면 4월까지는 녹지 않고 잘 보존된다.
자주 지나다니는 오페라극장 옆 길인데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으로 겨울에는 눈꽃으로 장식된다.
서쪽 1.000km 떨어진 순타르에서 음악콩쿨을 할때 찍은 야쿠티아 아이인데 한국과 비슷하다.
콩쿨 심사를 가면
낮에는 100팀 이상을 심사하고 밤에는 음악학교 교장과 얼음낚시를 했다.
밖은 영하 30도로 춥지만 텐트안은 따뜻하다.
제법 큰 물로기를 열마리나 잡았다.
야쿠티아 아이들의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꼭 한국 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서양이나 러시아 아이들은 이렇게 앉지 않는다.
야쿠티아 마을에는 곰이나 짐승들을 볼수있고 말이나 순록과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춤은 새소리나 짐승들의 동작을 모방한 춤들이 많다.
베르흐네 빌류이스크 음악학교에서 콩쿨을 진행했는데
걸려있는 선생님의 사진이 한국인 인줄 알고 신기해서 다가갔다.
그런데 이름을 보니 야쿠티아 인이었다.
야쿠티아에서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있는
우술단스크 음악콩쿨에서 1등한 야쿠티아 학생을 보는 순간 한국인으로 착각했다.
아래의 학생도 ...
5개의 도시에서 음악콩쿨을 심사했는데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가 장자 3.000km였다.
영도가 넓으니까 심사위원으로 초대하면 겁이난다.
그래도 안가본 도시는 여행삼아 간다.
가면 숙식은 물론이고 시골의 신심을 느끼수 있게 해주고 성심껏 여행을 잘 시켜준다.
아이들은 외출전에 완전 무장을 한다.
누가 안녕하세요 인사하기에 한국아이인가 싶어 돌아보았더니 야쿠티아 아이였다.
혼자서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하였다.
콩쿨 심사를 가보면 내가 한국인 인것을 알고 "아리랑'을 한국말로 준비한 합창단도 있었다.
다른 심사위원을 설득하여서 1등 상을 주었다.
콩쿨을 진행한 문화원의 음향감독이 고려인이었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일부러 나를 만나러 왔다.
뒷쪽 상단에 손을 든 사람(최선생)
청도군 매전면에 가면
정승이 지나갈때 가지를 아래로 숙여서 예를 갖춘 천연기념물 정승 소나무가 있다.
가지를 숙인나무가 정승 소나무라면
눈에 눌려서 가지가 아래로 쳐진 야쿠티아 소나무는 거의가 정승 소나무다.
야쿠티아 인들은 남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기가 힘든데 서로 도우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원수가 찾아와도 3일은 재워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땅을 파면 이처럼 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