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용 픽션에세이 _ 떠돌며 사랑하며
땅, 그 욕망의 덫
내가 내 땅을 가진다는 것은 별로 생각한 적이 없는 우공이었다. 그것은 남의 일, 예컨대 갑부들의 돈놀음이나 농투성이의 물려받은 재산이거나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결행으로 그의 관념이 깨어졌다.
그의 아내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동네에 과수원을 하나 샀다. 칡고개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동네 이름이 ‘갈치葛歭’였다. 통도 크지 하면서 저러다가 일내는 것 아닌가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가, 좋다 생각도 않던 과수원을 갖다니 이 무슨 귀신의 조화냐 싶어 아내에게 고맙다면서, 그는 밭일을 하기로 나섰다.
그 과수원을 ‘도화원’이라 이름 붙이기로 하였다. 복숭아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집안의 소망이 거기 담겨 있다는 데에 그런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 고장은 복숭아뿐만 아니라 충주사과의 주산지이다. 일찍 익는 복숭아는 맏물을 7월 방학할 무렵부터 따기 시작한다. 그리고 끝물은 9월 중순까지 간다. 복숭아에 이어서 사과를 따기 시작하니까 소출의 단층이 없다. 이 동네 분들은 과수원 운영을 기막히게 하는 이들이다.
과수원 일하는 것 구경만 하고 있기는 심심해서 그는 어딘가 무어든지 심을 수 있는 데가 없을까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수원의 복숭아나무는 어떤 놈은 나이가 너무 많아 수를 다하고 말라 버리기도 하고, 열매까지 소담하게 달렸는데 그때부터 시나브로 말라 주저앉는 놈도 있어서 예측을 할 수 없는 공간이 비어 나가게 마련이다. 그런 공간은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면서 무엇을 심을까 고심을 하다가, 토마토도 한 줄 심고 과수원 구석에는 제법 훤칠한 공간이 있어서 호박을 서너 포기 심었다.
토마토나 호박이나 가뭄을 잘 이기고 줄기를 뻗기 시작하면서, 매우 사나운 식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 주일 지나서 가면 전에 없던 열매가 잘 달린 게 신통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토마토 때문에 과수 소독을 맘대로 할 수 없고, 호박이 너무 자라 과일나무를 감고 올라갔다. “교수님, 과수원은 과수원다워야 합니다.” 과수원을 관리하는 구이장의 일갈이었다. 농부가 본다면 의당 그렇기도 하겠다 싶었다.
뭔가 작물을 심어서 싹이 트고, 잎이 번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것을 보고 싶은 욕구, 그것은 거의 원초적인 빛깔이었다. 복숭아나무 없애버리는 폐원閉園 신청을 할까 하다가는 금방 그만두기를 거듭하곤 했다. 과수원은 과수원대로 두고 다른 작물 심을 수 있는 땅을 어떻게 마련하나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과수원과 언덕을 격해서 맞붙어 있는 땅 한 뙈기가 두어 해 묵고 있었다. 개죽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올라가고 돌자갈밭 사이에 뽕나무도 우거져 있었다. 그런 나무 사이에 전에 누군가 붙여먹던 공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적실했다. 과수원 옆의 그 밭에 씨를 뿌려 보자는 작정을 했다. 누구 땅인지 알 도리도 없고, 씨 뿌릴 시기를 놓치면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나중에 주인이 나타나서 시비를 가리기로 든다면 적정한 배상을 하기로 하고 봄부터 몇 가지 작물을 심었다. 빈 땅은 심어먹은 사람이 임자라던 정이장의 이야기가 그의 귀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 그 한 해는 도둑질 농사라 할까,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아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두세두세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를 두고 입질들을 하는 것 같고, 낯모르는 사람이 밭 옆을 지나가면 혹시 주인이 아닌가 해서 마음이 쓰이었다. 거기다가 그저 농사하는 밭만으로는 너무 삭막하다고 백일홍이며 라일락이며 그런 화초를 잔뜩 심어 놓은 터라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잘 띌 만한 여건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마음을 조이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욕망을 숨기는, 얼마나 얄팍한 짓거리인가 생각을 하던 끝에, 저걸 사면 안 될까 하는 쪽으로 집착이 그의 안에 똬리를 틀었다. 토질이 척박하고 농사 전력이 신통치 않은 걸로 보아 값이 그리 호되지 않겠다 싶었다. 그 땅을 구입하자는 결행을 하기로 하고 몇 가지 여건을 알아보았다. 동네 정이장을 중개역으로 삼았던 터라,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들은 알아서 처결해 주리라 믿고 추진하기로 했다.
마침 강릉대 교수로 근무하는 석우石宇와 지방에 출장을 함께 갈 일이 있었다. 자기 차로 함께 움직일 기회가 왔다. 이런 기회에 내심의 구상을 공적인 일로 확정하자는 소심한 배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최 교수와 동네 정이장을 같이 만나 점심을 하면서, 언덕 아래 있는 그 땅을 알아봐 달라고 청을 넣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주인을 확인했고 팔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놓치지 말고 잡아 두라는 당부를 거듭했다. 곧장 만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기다리는 며칠은 밤마다 그야말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다 부수고, 그리고는 다시 쌓기를 거듭했다.
대금을 지불할 날이 되었는데, 정이장 이야기가 공무원 신분인 교수님이 이런 데 땅을 사면 자칫, 교육부장관 자리 놓치는 게 아닌가 하면서 사모님 이름으로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다. 생각해 보니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자기가 장관자리 같은 것을 바라는 바는 천만 아니지만, 자금 출처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자체가 말썽이 아닌가 싶었다. 아내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 농사는 자기가 지으면 되지 않겠나 하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사실 그는 씀씀이에서 처와 본인을 갈라놓지 못하는 무감각한 책상물림이었다.
이런저런 서류를 갖추어야 하는 지점에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한마디로 자기와 상의를 하지 않은 것이 불쾌하다는 아내의 타박이었다. “당신이 과수원을 사서 내게 선물했는데 나는 그 땅 사서 당신한테 선물하는 것이다, 그게 무에 잘못이냐, 일단 가 보자.” 하고는 아내와 길을 나섰다.
이놈의 땅이라는 것이, 아내도 잘 아는 바이기는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했다. 과수원 언덕 밑이라 과수원 농약이 날아올 것이고, 밭 꼴이 나도록 손질을 하자면 아름드리 개죽나무며, 찔레덩굴 등을 쳐내는 공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거기다가 그가 꿈꾸던 대로 연못도 파고 과수도 심고, 남은 땅에는 밭을 일궈 보겠다는 그의 청사진에 아내는 고개를 내두를 뿐이었다.
결국,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난 몰라요.” 하는 야박한 허락을 받고 수속을 마쳤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겨울 동한기凍寒期가 지나기를 기다려 작업을 시작했다. 나무를 베고, 돌을 고르고, 연못도 파고해서 정원을 갖춘 경작지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연못에는 물이 언제 필지 모르고, 공사를 하느라고 포클레인이 다져 놓는 땅은 잡풀 한 줄기 솟아오를 가망이 없어 보였다.
보기 싫은 나무 다 벤 속이 시원할 까닭이 없었다. 그는 마음을 졸이다가 회초리 같은 묘목을 심느라고 심었다. 그것도 가지가지 종류를 달리해서 묘목을 갖춰 심었는데 언제 잎이 벌 것인가 아득하기만 했다. 도화원의 꿈은 그야말로 몽유夢遊의 별천지가 아닌가 싶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연못가에 남겨 둔 뽕나무들이었다. 햇살이 벌면 서늘한 그늘을 드려 줄 것이다. 바람이 이는 대로 잎이 반짝이며 뒤집히고 그 사이로 흰 구름도 흐를 것이려니 기대를 하면서, 도화원에 상림원桑林園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달아 두자는 생각을 했다.
동산 원자園를 잘 쓰기가 힘들어서 상림원桑林苑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상림桑林은 중국 상나라 때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자 탕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던 들판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서 이런 고사가 나왔다고 한다. 책유상림지육 도무규벽지영(責逾桑林之六 禱無圭壁之嬴). 상림원에서 하늘에 물은 여섯 가지 조건을 들어 자신을 책하고, 제를 지냄에 제수인 옥 종류의 보물이 혹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이다. 상림의 여섯 가지란 탕왕이 하늘에 물은 견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째 정치가 알맞게 조절되지 않았는가, 둘째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있지 않은가, 셋째 궁실이 너무 화려하지 않은가, 넷째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심하지 않은가, 다섯째 뇌물이 성행하지는 않는가, 여섯째 아첨하는 사람들이 들끓지는 않는가. 스스로를 견책하면서 하늘에 물은 이러한 물음은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의미있는 자성의 제목이 될 만하다.
그 상림원上林苑의 원苑은 임금이 신하들과 사냥할 수 있도록 만든 나라의 정원을 뜻한다. 뭐로 봐도 그는 나라의 정원을 따라잡을 여건은 안 된다. 그러나 내가 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크게 보면 자신이 임금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다만 자기 다스림이 투철한 자세라야 할 것은 물론이다. 해서 상림원上林苑이라 써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림원을 오가며 한 해 연구년을 지낼 생각을 하니 자못 흥취가 돋았다. 내년에는 나무도 자랄 것이고, 밭에 곡물도 풍부하게 심어, 연못에 핀 물에 뽕나무 그늘이 일렁이는 날을 받아 친구들을 불러야겠다고 그는 다짐을 두었다. 그러자면 뽕나무도 더 심어 이름과 실상이 어울리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가 가기를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