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라고 하면 / 박선애
석이는 엄지발가락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가, 그 자리가 곪아서 수술했다. 이틀 동안 결석했다가 왔는데, 그 큰 몸으로 아픈 발가락에 힘이 안 가게 걷느라고 아주 어렵게 발을 옮긴다. 수술이 힘들었다고 하더니 얼굴도 부은 것 같아서 더 안돼 보인다. 수술 후 치료 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살을 다 헤집어 놔서 많이 아플 거라고 했다고 엄마가 전해 줬다. 며칠 지나고 나서, 발톱을 빼 버린 사진 밑에 ”아파요 ㅠ.“라고 써 보내 왔다. 나는 원래도 상처를 잘 못 보는데 그것을 보니 온몸이 저릿해지면서 고개가 절로 돌려진다. 얼마나 아팠을까 싶으면서, 제대로 어리광 부릴 데도 없어서 나에게 이러는 그 아이의 처지가 짠하다. 이 마음을 이모티콘과 함께 답글로 써서 보냈다, 몇 번 주고받고 나서는 ”수술했으니 이제 나을 거예요.“라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석이는 체육 중학교에 진학하여 역도를 하다가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 운동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동작이 굼뜨고 말을 해도 반응이 늦어 답답했다. 수업 시간에도 아는지 모르는지 표정도 없고, 활동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전학생이어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라 금방 어울렸지만 힘있는 아이들 축에는 끼지 못했다. 어느 학교나 대체로 잘나가는 남학생들은 체육관으로 간다. 석이는 그만그만한 친구 두 명과 함께 도서관에 오곤 했다. 책보다는 10분 이상 읽으면 주는 사탕이 좋아서 오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과는 달리 가끔은 묻지 않아도 수다스러울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1학년이 끝나 갈 무렵에는 운동을 그만두었더니 몸무게가 85킬로그램에서 97킬로그램으로 늘었다고도 말했다.
2학년이 되어 개학했지만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했다. 석이는 수업에 나오지도, 과제를 내지도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연락해서 방법을 알려 주고 당부해도 소용이 없었다. 부담임이던 나는 담임과 함께 찾아갔다. 학교에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나마 전화도 받고 마을 입구까지 나와 줘서 다행이었다. 그동안에 몸은 더 불어 있었다. 학습 자료는 받아 갔지만 그 후로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등교하고 나서는 꼬박꼬박 학교에 잘 나오는 것이 고마웠다.
3학년이 되어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 아빠는 다른 곳에서 일하시다가 주말에만 집에 오시고 엄마, 동생과 함께 이제는 자기 집에서 산다고 했다. 전학 올 때 데리고 와서 자신이 새엄마라고 말한 것이 기억나, 아빠도 집에 안 계신다니 조금 걸렸다. 가정 방문 기간에 집으로 찾아가 어머니를 만났다. 지나치게 솔직한 데다 말을 참 잘하셨다. 40여 분 동안 나를 붙들고 씻지 않는다느니,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느니, 말을 안 듣는다느니, 느리다느니 등 석이 흉거리를 늘어놓았다. 보통 엄마들은 자식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자신의 아이는 착한데, 친구 잘못 만나서 그랬다고 한다. 성적이 낮으면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석이 엄마는 아들을 냉정하다 싶게 아주 객관적으로 보았다. 학교에서 하는 걸로 보아 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어 끄덕이며 들어 주었다. 자기는 한 번 말해서 안 들으면 더이상 할 필요 없이 아빠에게 전화해 버리면 끝이라고 해서 너무 정이 없어 보였다. 말해도 안 들으면 달래기도 하고, 야단도 치면서 가르치는 게 엄마 아닌가. 성격이 깔끔해서 잘 챙기는 것 같기는 한데 거리가 좀 느껴졌다.
또 석이 할머니가 애들 양육에 자꾸 간섭을 하길래 그럼 알아서 잘 키워 보라고 작년 일 년은 할머니 집에 보내 버렸다는 얘기도 숨기지 않았다. 석이가 고도 비만이 된 것도 할머니가 입으로는 살 빼라고 하면서도 음식을 많이 먹여서라고 했다. 석이에게 몸무게를 줄이고 싶으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아침과 저녁을 굶으면 그 대신 점심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해서 겨울 방학부터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내 주변에도 1일 1식이니 하며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엄마의 의도는 알겠는데, 그와 상관없이 ‘그럼 밥은 한 끼도 안 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와서 살진 둥근 등을 웅크리고 앉아 몰래 과자를 먹고 있거나 친구들이 군것질하면 손 내미는 것을 볼 때면 내 마음이 서운해졌다. 급식실에서 매번 두 번씩 받아다 먹는데 그 양이 엄청나더라고 놀라는 선생님들께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내 말투가 까칠해진다.
발톱만 해도 그랬다. 석이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온 건 한참 전이었다. 보건 선생님이 곪은 곳을 소독해 주고 빨리 병원 가서 치료 받으라고 권했다. 절뚝거리면서 하교 후에 할아버지와 병원 갈 거라고 했다. 엄마가 일하니까 같이 못 가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 의심이 올라온다. 체육대회 날 보건실에 다시 왔을 때는 그동안 제대로 치료를 안 해 심해져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그 부모는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놔둘 수 있냐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아이의 상태를 알려 주고 꼭 병원에 데려가라고 부탁하려고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그랬다고 석이 탓을 했다. 그런 엄마에게 석이는 병원 안 가겠다고 했다느니, 그러면 자기는 모르겠으니 아빠한테 알아서 하라고 했다느니 하는 말들을 엄마가 나에게 다 전했다. 이런 곡절을 겪고 나서, 그래도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 수술하고 왔다니 다행스러웠다.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면 장화, 콩쥐, 신데렐라의 엄마를 떠올리며 아이를 혹시 미워하거나 구박하지는 않는지, 사랑으로 제대로 보살펴 주는지 의심하게 된다. 석이 엄마도 그렇게 바라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석이가 교복 갖춰 입고 제때 학교 올 수 있는 것도 엄마가 있어서 가능하다. 어찌 됐든 발톱을 수술하고 치료하도록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닌 것도 엄마다. 석이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데 큰 역할도 했다. 특별 전형으로 원서를 내려니 필요한 자기 계발서도 쓰도록 도와주었다. 지원한 학교에 낼 신체 검사를 하도록 데려가고, 며칠 후에 찾아서 학교에 가져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다이어트를 하게 해서 15킬로그램을 줄였다고 한다. 엄마는 석이에게 꼭 필요한 분이었다. 그래, 누가 봐도 석이가 속 터지게 하는 면이 있지, 그걸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만 생각하면서 새엄마라 다르다고 여겼으니 그 엄마 처지에서는 참 억울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