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십자가에서 / 이남옥
24일 차 순례길은 메세타 고원의 광활했던 평지 길을 끝내고 레온의 이라고산 오르막을 걷기 시작하는 코스였다. 아스트로가 시내를 벗어나 어느 만큼 더 걸으니 산이 나타나고 어느새 열흘가량 이어지던 광활한 평원이 저 아래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개미처럼 작은 걸음으로 그 긴 길을 지나왔다니 하찮게 여겼던 발걸음 하나하나가 위대해 보였다. 대부분 지겨워하며 지나오지만 끝에 서면 온갖 감회와 추억이 엉켜 금세 그리워하게 된다고들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밀밭 사이를 사박사박 일정한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모든 잡다한 생각은 사라지고 명상할 때의 뇌파 상태가 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인가 보다. 아마 대부분 그 길에서 자신이 순례자라는 것을 자각했을 터였다.
작지만 소박하고 포근한 정취를 품은 마라가떼리아의 마을 몇 개를 지나 1,150m 지점에 다다르니 라바날 데 까미노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체크인하고 숙소가 있는 마을 위쪽으로 더 걸어갔다. 한눈에 보아도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과 돌을 다듬어 포장한 골목길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정갈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하지만 걸어온 길보다 남은 길이 훨씬 줄어든 지점에서 보니 첫 순례길에서 가졌던 의욕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잘 곳을 미리 정해버린 뒤로 안도감에 젖어 숙소에 도착하면 마냥 쉬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평점에 상관없이 빈방을 찾아 예약하다 보니 아무도 없는-주인조차도-곳에 자리를 잡게 되어 맥아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신경을 쓰거나 긴장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던 빨래도 하지 않고 먼저 잠 한숨을 잤다. 깨어보니 벌써 해거름이 지기 시작했다. 햇살이 길게 마을 건너편을 비추고 있었다. 산 그림자로 빨리 저녁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이 마을에는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라는 책을 쓴 한국 신부가 머물렀다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독일에서 2001년에 ‘멈추고 쉬어가라’라는 의미로 순례길의 길목인 라바날에 세운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신부로는 인영훈 클레멘스가 최초로 파견되어 코로나19 대유행이 있기 전까지 소임을 다했다고 한다. 달콤한 잠에 빠져 하마터면 기회를 놓칠 뻔했다. 곧 순례자를 위한 축복 미사가 있었던 것이다. 클레멘스 신부는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순례자 집을 관리하고 수많은 순례자를 돌보며 그곳에서 5년 간 선교사로 지냈다. 그동안 프랑스 길을 두 번 걸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적 사실이나 본질적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직접 읽지는 못했으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궁금했다. 또 하나의 역사가 된 그의 발자취를 보려고 찾아갔는데 뜻밖에 또 다른 한국 신부를 만났다. 머나먼 스페인 땅에서 그분의 그레고리안 성가로 축복을 받는 일은 특별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레퓨지오 가우셀모 알베르게에서 쉬어가지 못한 게 아쉽긴 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삶과 연결되어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한 발 한 발 충실히 온몸으로 걸어야 한다고 했던 신부님의 말을 떠올리며 다음날 마지막 오르막길을 걸었다. 1,500m 고지에 이르니 폰세바돈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일찍 라바날을 나섰기 때문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떠나지 못했거나 그곳까지 걸어와 아침을 먹고 있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 마을을 벗어나면 당분간 마을은 구경도 못 하고 노새 다리가 부러진다는 거친 내리막길 연속이라 들어서 내심 단단히 채비했다. 특히 텔레비전이나 여행기 책자 속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었던 철의 십자가를 어디쯤에선가 만나게 되리란 기대도 컸다. 오르막이 끝난 곳에는 거의 평지인 꽃길이 한참 이어졌다. 신선한 아침 공기도 좋았거니와 엄청난 꽃길에 취해 수없이 사진을 찍어대며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보라와 노란색 꽃이 핀 관목이 양쪽 길에 늘어선 사이사이에 온갖 들꽃이 빼곡하게 핀 그곳은 천상의 화원이었다. 백만 장은 찍었다 싶을 정도로 셔터를 눌러댔는데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철 십자가와 맞닥뜨렸다. 집을 떠나오기 전에도 늘 상상했었고 언제 이곳을 지나게 될까 염두에 두었던, 순례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구조물을 만난 순간 당황했다. 긴가민가 하느라 마음에 품어왔던 생각들이 잠시 흩어지는 듯했다.
철의 십자가는 전봇대 같은 나무 기둥에 허술한 듯 세워진 커다란 십자가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에 오면 대부분 집에서부터 가져온 돌을 놓는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돌무덤이 되었다. 힘든 여정을 견디며 여기에 와서 내려놓았을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이 속죄일 수도 있고 소망이거나 기도일 것이다. 또 마음의 짐을 버린 것이기도 하리라. 어떤 사연이든 돌 하나하나마다 누군가의 마음이 애틋하게 담겨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주운 돌과 고흥 바닷가에서 주운 돌을 올려 두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작은 소망들이었다. 그곳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사람들이 두고 간 돌을 구경했다. 한눈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편이 멀리 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랴부랴 뒤따라가느라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사진을 제대로 못 찍고 말았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보았듯이 느낌 있게 찍을 재간도 없었지만 너무나 아쉬웠다.
누군가는 철의 십자가 아래에는 미련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미련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인지 우뚝 솟아 있던 십자가와 돌무덤에서 보았던 여러 흔적, 그리고 푸른 하늘을 가로지른 비행기 지나 간 구름이 가슴에 박혀 눈에 선하다.
첫댓글 카톡릭 신자인 언니에게는 더 특별했던 여행이었겠어요.
말 그대로 성지 순례였군요.
철의 십자가가 마치 지팡이처럼 너무 단순해서 놀랐어요.
또 다짐해요.
언젠가는 그 길 위에 나도 서리라.
나도 그 길 위에 함께하는 느낌이네요.
잘 읽었어요. 대리만족이 큽니다.
정말 빠져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읽으면서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아! 정말 가고 싶네요. 걷는 것 진짜 자신 없는데, 선생님 글을 보면 꼭 한번 그 길을 걷고 싶네요.
와! 순례길 다녀오시고 나서 글이 엄청 좋아진 것 같아요. 책 내셔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