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사람 축복 합시다. 당신은 이 시대의 삭게오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말씀인데, 강도 만난 이웃이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우리는 가끔 가다 뉴스를 접하면 누가 강도를 만났다? 아이구, 하면서도 나의 일이 아니면 잠깐 충격일 뿐이지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 인생 속에 그러한 일들이 만나지게 될때는 충격 정도가 아니겠죠. 참 제가 볼때는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속에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나와 있는 인생들은 다 강도 만난 자들이 아니겠냐? 여러분 뭐 강도한테 돈을 빼꼈다? 조금 뺐긴 겁니다. 강도가 돈 만 아니라 생명도 뺐어 갈수도 있는 거든요. 생명을 뺐어 가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거겠죠. 강도 만난 인생 그런데 우린 이 내용을 들어가기 전에 왜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우리가 이해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율법 교사가 나오죠.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당시에 예수님을 율법사가 시험하기 위한 말입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분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가장 힘든게 뭐겠어요? 사람을 통해서 내가 시험을 당한다고 느낄 때 참 사람 관계는 힘듭니다. 이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시험하기 위해서 한 말이에요. 시험을 하기 위해서 한 말이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상대가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어떤 말을 던진다? 무슨 말이든 상관없이 무시 해 버릴 거예요. 왜? 시험을 당하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말로 이걸 받아줘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세요. 이게 바로 하나님과 우리가 다른 겁니다. 몰라도 시험을 당하는 일이고, 예수님은 아시기 때문에 알고 시험을 당하는 건데 우리는 모르면 몰라서 시험을 같이 당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시는데 시험을 받아주고 있거든요.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산다는 것을 아직도 아는 지식일 뿐이고, 실재는 이런 일을 접한다면 모르면 차라리 더 나은데, 시험 당함을 안다고 하면 우리는 절대로 시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저도 인생을 보면 순진해서 잘 몰라서 시험을 받을 때가 참 많은것 같더라고요. 모르긴 몰라도 안다면은 나도 거의 무시하고 피해 버립니다. 여러분도 사람 관계 속에서 어떤 사람 자주 만나요? 여러분 좋아 하는 사람, 괜찮다고 생각 하는 사람, 그런데 만약에 관계는 해야 할 사람인데 그 사람이 까칠해 힘들어 아는 만큼은 그 사람 어때요?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것 때문에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만나야 될 일이 아니라면 안만나는게 좋죠? 이게 우리에요. 그래서 여러분, 한번 이런 부분도 보세요. 우리는 시험을 안 받아야해. 이것이 나로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최선책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나타 날수 밖에 없는 거야. 그런데 저도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경험 한것이지만, 아는 것은 일부분이고, 일 부분 속에 모르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아는 만큼 대 부분 피합니다. 그런데 모르지만 시험을 받는 것이 참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아요. 그렇죠?
이제는 이러한 부분들 속에서 모르면 자꾸만 그래서 알려고 노력해요. 이 사람이 나에게 좋은 뜻으로 한것이냐? 이런 것을 굉장히 밝혀서 사람에 대해서, 자꾸만 분석하려고해요. 그럼 알면? 결국 선악 속에서 피하는것 밖에 없거든요. 내 방법 속에서 무시 하던가. 내 나름대로의 문제를 시험 안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것 밖에 뭐가 있겠습니까? 맞는데 선악 속에서 나로 살아가는 인생은 시험 받으면 안 되는 거고, 시험 받기 위해서 노력 하는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똑똑해 졌어요.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왜? 알아야 되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다 아시지. 그러니까 암만 알아도 남보다 조금 더 알 수 있겠지만 거기도 답이 없어요. 또 모른다? 대부분 몰라요. 모르면서 당해요. 당하면 어떻게? 고통당하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는 고통 속에서 빨리 고통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이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그러니 시험을 안 당하면 어쩔 거고, 시험을 몰라서 당하면 또 그건 어쩔 거냐고요. 인생은 우리 이틀 동안들을 말씀처럼 지나가는 건데, 좋은것도 지나가요. 좋은것 붙잡고 평생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사는 인생이 아니거든요. 다 지나가요. 나쁜것도 다 지나가요. 그런데 나는 안 지나 가요. 정도 차이에요. 정도 차이, 결국 다 지나가요. 정도 차이 속에 나만, 그렇게 피해의식을 갖고 살지 마세요. 다 지나 간다. 뭐만 중요하냐? 아는 것도 무시 할 순 없겠지만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른다? 몰라서 당하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것도 문제는 아니에요. 그러한 모든 일 속에 뭐만 중요해?
여기 율법 선생도 아주 아는 것이 많으니까, 예수님이 시험을 받아주시면서 알고 있는 지식 속에 답을 주니까, 또 아는것 갖고 말을 해요. 이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을 보면 속이 보여서, 제일 싫어. 그죠? 여러분 우리 찬우가 제일 인기가 있어요. 다들 보면 찬우, 그냥 예뻐서. 왜 그런 줄 아세요? 쟤는 아직 까지 알고 모르고 그런거 몰라요. 알고 어떻게 대하고 상관없어요. 어릴 때 어린 아이는 그냥,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려서 좋은 줄 알고 좋아하는데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어린아이들 속에 뭔가 끌리는 거야. 조금만 커보라고, 커갈수록 뭘 안다고 하는 것이 뭘 알아? 선악 속에 사는 거지. 미워 죽겠는 거야. 그렇게 자라서 성인이 된 우리. 형식과 격식만 갖췄을 뿐이지, 오히려 깊어 졌을 뿐이지. 인간의 그런 모습을 보면 모르고 사는게 나아. 알면 알수록, 인간 냄새나서, 관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로 살아가는 선악 속에 자기중심이거든요. 자기 기준이에요. 그것이 자기를 살면 살수록 가둬 버려요. 그런 만큼 좋고 나쁨이 분명하고, 맞고 틀림이 분명해 지는 만큼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어요. 그런 만큼 어떤 사람을 취하고 싶어요? 바보 아닌 다음에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그런 분별력이 없으면 어떨까? 그 사람은 다 받아들이는 거야. 어떤게 좋을까요? 물어봅시다. 여러분이 살아와놓고 다른 소리 하려고 그래? 여러분이 항상 좋다는 사람을 택하고 살았어. 살다 보니 나쁜 놈 됐어. 그럼 또 바꿔야해. 손절 하는 거야. 또 어떤 놈 찾겠어. 좋은 놈 찾겠지 좋은 놈 하고 한참 좋다 보니 또 나쁜 놈 됐네. 그 인생은 평생 바꿔야해. 그래서 이혼하는 거야. 어떤 사람은 한번만 이혼하는 게 아니라 네 번까지 이혼한 사람을 봤어요.
여러분 결혼이라는 것은 장난이 아니잖아요. 타인은 좋은 사람이면 좋은데도 살고 나쁘다 싶으면 바로 바꾸면 되요. 이게 부분 관계니까 한번 두 번이지 타인과 관계는 여러 번이에요. 그런데 살아보니 좋은 놈이 어디 있어요? 그놈이 그놈이지. 인생처럼 똑똑 한척 하면서 미련한 것이 인간이에요. 그런 것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시라고요. 우리는 모르면 받아들이지만, 알면 절대로 안 받아들이거든요. 말로 콱 하잖아. 그런데 예수님이 이걸 받아 주세요. 우리 이걸 받아 줍시다. 나는 못 받아!? 그런데 저도 다르지 않았거든요. 그것이 나로 살아가는 당연한 것이죠. 은혜로 구원 만 받았을 뿐이지, 믿는 다고 하면서도 믿고 살다 보니 나도 다르지 않더라고, 믿음 안에 형제자매, 일뿐이고, 그 안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러면서 이제는 믿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의 믿지 않으니까 불신자의 관계 속에 있던 것이 옮겨진 것뿐이지 다르지 않더라고요. 계속 똑똑하게 사세요.
동경 집회 7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