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4(화)
요한복음 5장
(요한 5,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요한 5,42)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묵상-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낮춰 말씀하신다.
신약의 시대가 열리면서 엄청난
일들을 하시고 기적을 베푸셨는데,
당신 스스로 하신 게 아니란다.
그 다음엔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라고 말을 잇는다.
혼자 뭔가를 하기 전에 꼭
누군가에게 듣고 실행한 거다.
‘관계’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그 관계는 바로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
즉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일을 다
마치신 다음엔 꼭 배를 타고
산으로 가시어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만나 뵈었다.
만나 뵙는다는 뜻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드리며,
다음 일을 상의하셨다는 것,
대화이자 기도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으셨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고 말씀하시며, 듣는 대로 심판하고
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하신다.
나도 모르게 납작 엎드렸다.
몸과 마음이 절로 말이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그 신원의식을 잊지 않으시고,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한다.‘며 당신만
보지 말고, 하느님을 먼저 보고
기억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이러신데 하물며,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는(요한5,37) 우리에겐,
얼마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겠는가.
그랬기에 당신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시며, 추상적인 관계로 남을 수
있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재해
주시는 거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이 구절이면 끝인 거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만나 뵙고 기도하시며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듣고
행하셨다는 것,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듣는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냐는 거다.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어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우리에겐 기도라는 매개체가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 묵주기도,
성체조배 등 우리는 그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며 통찰과
깨달음, 울림 같은 암묵적 소리를
듣게 된다.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성령의 교감은 더욱
민감해질 터. 기도의 스승이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제시한
묵상기도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묵상기도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지금 내 앞에 계시다는 걸 믿고, 그분과
단둘이 자주 만나 대화하며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천주자비의 글 8,5)
일단 관계가 맺어지면 이렇듯 주님과
대화하고, 신뢰하고 친밀해지는 등
기도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그 대화의
끝을 타고 들어오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관계 안에서
‘듣는 기도’를 하셨으니, 우리도
멈추고 머물러서 기도할 줄 아는
영혼으로 거듭나야겠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
(시편 46,11)
구송기도는 물론, 하느님 앞에
앉아 세상 분심 거두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잘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단 거다.
예수님은 묵상기도의 대가였다.
기도 좀 했다고 내가 마치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이 말씀 한마디가 나를 확 깨운거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마주하고 교감하는 훈련을 한다면,
분명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될 거라고 믿는다.
아울러 하느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시며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대화하는 묵상기도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간다면 그분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아래의
말씀이 절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요한 5,42)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닮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지향으로 기도하는 것,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고
자라나서 꽃을 활짝 피울테니 말이다.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요한 5,30)
첫댓글 박지현 요헵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