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해서 불면
나는 매트리스 끝에 매달려 있어요 거기에 있는데 거기 없는 것처럼 누워 있지요 천정이 높아 구름 같은 창문을 그려요 그곳으로 파도를 몰고 오죠 바닥에 그림자가 흔들리면 아득한 저녁이 뛰어다녀요 벽에는 긁힌 낙서가 울부짖고 있어요 지느러미 같은 소음들이 흘러내리면 나는 의심을 쏟아내요 벽에서 의심이 기어 나와요 고요를 생각하다 이불을 끌어안고 눈을 감아요 기억은 너덜해진 책들과 닮아 있어요 허공에 손등을 뻗치면 글자들이 튀어나와요 이를테면, 당신이 나에게 손짓하면 먼 곳을 향하는 내 몸의 방향에 대해 그것은 아주 오래된 곰팡이 냄새 같은, 매트리스 틈에 스며 있어요 창문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려요 오래된 바람이 지나가요 나는 고개를 들고 모퉁이에서 웅크리며 뒤꿈치를 들어요 발 밑에서 저녁을 꺼내며 무릎위에 올려놓았어요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무당벌레가 날아와 손등에 앉았어요 파도소리에 선잠에서 깨어 중얼거리는 내 입술 이마에 닿은 기도는 낡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어깨는 그늘이 자라나고 겨드랑이 사이로 창을 내고 싶었어요
협곡
그러니까 느슨하게 풀린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욕조 안에서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여느 여름날 무릎까지 차오르는 그 곳에서 글썽이는 파도 소리 그때 모래가 발 밑에서 미끄러지고 물에 달라붙은 휘어진 문장들이 물 위에 떠올라 그 문장들을 생각하다가 물속에 잠긴다 입김을 세 번 분다 푸른 수초들이 나른하다 물 속에 웅크리고 있는 문장이 파랑이 될 때까지 물방울은 기다린다
빛에 물든 머리칼을 쓸어 내리고 튕겨진 빛 조각이 사방으로 물드는 밤에 탁자 위에서 소근대는 흰 빛, 터뜨린 울음이 그림자처럼 흘러내린다
사각 사각거리는 소리 컵 속 얼음이 한쪽 방향에서 녹는다 한 입 깨어 물면 얼음은 명랑한 맛입니까 그 소란들이 하얗다
욕조 안은 밤이다 나는 가라 앉는다 푸른 수초가 작은 바람에 흔들린다 이를 테면, 물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출렁거리는 소리 당신이 나에게 보낸 문장 같아서 손가락 마디마디로 흐르는 물방울들
꽉 쥐었던 손 사이 문장이 흘러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