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만 삼국시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도 여러번 삼국시대가 존재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이후 후고구려 후백제 후신라로 불려지는 후삼국시대가 있다. 우리는 중국의 삼국시대에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정작 한반도의 삼국시대 그리고 후삼국시대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세의 도움을 빌어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그렇다고 해도 자체의 힘으로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의 통일과정을 무관심속에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일신라가 내부 분열등으로 인해 통치력이 약화되자 각 지역에서 호족 세력이 할거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견훤과 궁예를 들 수 있다. 궁예는 고구려의 부흥을 , 견훤은 백제의 부흥을 내세우며 한시대를 풍미했다.
후삼국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만만치 않다. 한때 모 방송국에서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을 제작해 방송한 적도 있다. 후삼국의 리더들은 책사와 장군들을 거느리며 각자 통일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에서부터 이간술 그리고 내부 갈등 봉합 그리고 내부의 분열상을 고쳐잡는 과정들이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히 중국의 삼국지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 삼국지의 저자인 나관중이 살았던 시절을 아는가. 바로 원말 명초 다시말해 서기 1330년부터 1400년에 살았던 사람이다. 한반도의 시대를 보면 고려말 조선초라고 보면 된다. 그가 중국의 삼국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결코 아니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는 대략 서기 180년대로 보면 된다. 유비가 200년에 관우와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를 맺었다. 제량공명을 삼고초려라는 과정을 거처 군사로 옹립한 것이 208년이다. 그리고 조조와 주유의 그 유명한 적벽대전은 208년에 일어났다.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이 왕으로 등극한 해가 221년이다. 결코 나관중은 그 삼국시대를 몸으로 겪은 것이 아니다. 삼국시대로부터 무려 천년 이상이 흐른 뒤 나관중은 그의 상상력과 어느정도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불멸의 소설책 삼국지을 지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삼국시대 특히 후삼국 시대는 언제인가. 고려의 태조 왕건이 통일을 이룬 것이 936년이다. 그 통일을 이루기 50년전인 886년이후 50년동안이 바로 한반도의 후삼국시대인 것이다. 궁예가 898년에 송악을 도읍으로 정하여 후고구려왕이라고 칭했다.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901년이었다. 왕건이 후백제군을 격파한 것이 930년 그리고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 바로 935년이다. 중국의 삼국시대보다 700년후란 말이다. 그만큼 현재의 시점에서 중국의 삼국시대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시절인 셈이다. 역사적 고증의 관점에서 볼 때 더 확실한 역사적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의 나관중이 중국 삼국시대로 부터 천백년이후에 삼국지를 집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반도의 후삼국시대 이야기는 고려 통일 이후 천백년이 지난 시점, 그 시점으로 따지면 바로 지금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한번 우리의 후삼국시대를 멋지게 소설화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비록 중국보다는 땅이 작고 등장인물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궁예 견훤 그리고 왕건 같은 리더들이 결코 유비 조조 손권에 밀리지 않는다. 능력면에서나 지략면에서 그렇다. 그리고 제갈공명과 주유 그리고 사마의 등 책사들과 겨뤄도 부족함이 없는 책사들도 한반도 후삼국시대에 등장한다. 궁예의 책사 종간과 아지태, 견훤의 책사 최승우, 왕건의 군사 태평이 있다. 장수들도 궁예에게 은부라는 걸출한 장수가 있었으며 견훤에게는 수달과 추허조라는 맹장이 그리고 왕건에게는 유금필과 능산 박술희라는 의형제가 있었다. 그리고 왕건이 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에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같은 장수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궁예는 살아있는 미륵이요 관심법이라는 독특한 성향을 가진 캐릭터라는 점에서 흥미를 배가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궁예는 후삼국 통일뿐아니라 통일후 북진정책을 펴 발해 더 나아가 중국까지 지배해 보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또한 왕건의 여성들도 후삼국지의 흥미를 더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왕건은 토호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확실하게 삼기위해 부인을 많이 두었다. 유장자의 딸부터 시작해 나주의 호족 오다련의 딸 그리고 충주 유긍달의 딸 등이 있다. 궁예의 부인이자 왕건과의 염문이 있었던 연화도 소설의 흥미도를 높일 수 있는 큰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태조 왕건이라는 방송사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만들어졌던 각본도 당연히 있다. 그리고 태조 왕건과 관련한 소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후삼국 그리고 그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통일 국가 고려를 이끌어낸 태조 왕건 시대의 역사성을 비쳐 볼 때 이제 제대로 된 후삼국지가 탄생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더욱 폭넓은 역사적 사실에다 소설로서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시킨다면 틀림없이 멋지고 역사에 남을 후삼국지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소설가로서 소양과 능력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지만 소설은 아무나 집필하는 것이 아니다.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 그리고 필력을 소지한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리라.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그렇다고 이시점에서 통일을 이뤄야할 것인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한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추진해 나가야 할 사안임에는 틀림없지만. 하지만 한반도의 통일 국가를 제대로 이뤄낸 것이 바로 고려 아니던가. 그런 고려의 통일 과정을 멋진 소설로 남겨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그리고 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중의 의무인 것이다. 중국의 나관중보다 훨씬 훌륭한 소설가가 한국에 많다. 그리고 지금은 관심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한반도의 통일을 이룬 고려에서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패망하고 난 뒤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살아갈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킨 것이 바로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아니던가. 일본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통일 일본을 만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소설이다. 일본인들은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새로운 희망과 도전의 마음을 얻었다. 한국도 지금 코로나뿐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진보 보수의 갈등은 이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이럴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운 도전의식을 일으킬 것은 바로 새로운 시각의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중국 삼국지에 의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도 멋진 후삼국지를 만들어 세계에 내놓을 수 있어야만 한다. 세계인들이 중국을 접하는 첫번째가 바로 삼국지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한반도 역사를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소설 후삼국지일 것이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후삼국지를 널리 읽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는 저녁이다.
2020년 12월 2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