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비’를 아시나요?
개암 김동출
계속되는 장맛비에 온 국민이 신음하고 있다. 좁은 땅 위에 한꺼번에 많이 내려 온 국토가 진흙탕으로 변하고 사람과 함께 도로와 탈것이 물속에 갇혀 서고 말았다. 비란 놈은 시절에 맞게 적당히 내리면 좀 좋으련만, 하루빨리 이 장마가 물러나고 피해도 복구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국이 물난리로 신음하는 이 마당에 비 이야기를 꺼내기가 민망하지만, 필자는 이 기회에 우리 조상들이 비에 붙인 근사한 ‘비의 이름’을 불러내어 비를 사랑한 서민들의 정서를 느껴 보고자 한다.
우리말 속에 나타나는 눈, 바람, 비, 안개, 구름 등 날씨에 관한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관조적 정서가 탁월하여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비의 이름 또한 그 표현법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이름만 들으면 비의 속성이 금방 떠 오를 만큼 체감적이다. 예술적 감각과 정서가 뛰어난 우리 조상들은 「계절, 모양이나 양, 때, 느낌, 장소」에 따라 같은 비라도 다르게 이름 지어 불렀던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계절을 붙여 이름 지은 비∥♤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그중 ♤‘떡비’는 가을에 비가 내리면 떡을 해 먹는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 비가 내리는 모양이나 양을 보고 이름 지은 비∥♤가랑비(이슬보다 조금 굵은 비로, 가늘게 내리는 비) ♤가루비( 가늘고 부스러지듯이 내리는 비로, 마치 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구슬비(빗방울이 맺히는 모양이 구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맺히는 모양에서 나온 말고 가늘게 내리는 비를 이르는 말) ♤부슬비(부슬부슬 내리는 비) ♤보슬비(바람이 없는 날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리는 비) ♤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못비( 모를 다 낼 만큼 충분하게 내리는 비) ♤무더기비(짧은 시간 동안 쏟아지는 많은 양의 비) ♤먼지잼(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적게 내리는 비)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작달비(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는 비)♤실비(실처럼 가늘게 오는 비) ♤채찍비(채찍을 내리치듯 굵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 그 외 ♤웃비(아직 우기는 있으나 좍좍 내리다 그친 비)도 있다.
● 비가 내리는 하루 중의 때(時)를 구분하여 이름 지은 비는∥♤새벽비(새벽에 오는 비) ♤저녁비( 저녁 맘에 비) ♤밤비( 밤에 오는 비) ♤그믐치( 음력 그믐 무렵에 내리는 비)
● 사람의 느낌이 들어있는 비는∥♤단비(필요한 때 알맞게 오는 비) ♤궂은비(날이 흐리고 어둠침침하게 오래 내리는 비) ♤꽃비( 꽃잎처럼 가볍게 흩뿌리며 내리는 비) ♤꿀비(곡식이 꿀처럼 달게 받아먹을 비라는 뜻으로, 농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때에 맞추어 내리는 비를 이르는 말. ‘단비’의 북한말) ♤달구비( 땅을 다질 때 쓰는 달구 같이 힘있게 쏟아지는 비) ♤여우비(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가 있다.
● 지루하고 귀찮은 [장맛비]는∥♤봄장마( 봄철에 여러 날 동안 계속 내리는 비) ♤가을장마(가을 추수 전후에 오는 장마) ♤개똥장마( 오뉴월 장마를 이르는 말로, 거름으로 쓰이는 개똥처럼 좋은 장마라는 의미) ♤개부심(장마로 홍수가 난 후, 한동안 비가 멎었다가 다시 내려서 진흙을 씻어내는 비) ♤건들장마( 초가을에 비가 내리다가 말다가 하는 장마) ♤고사리 장마(제주도에서 4-5월 사이에 내리는 장마로, 이 시기에 고사리가 나오기 때문에 나온 낱말) ♤마른장마(장마철에 비가 극히 적게 내리거나 갠 날이 지속되는 현상)를 들 수 있다
● 비를 바라보거나 내리는 장소로 지은 비는 ∥♤산돌림(산기슭에 오는 소나기) ♤스무날비(음력 2월 스무날에 내리는 비. 그해에 풍년이 들 좋은 조짐이라 하여 이른다)가 있다. 그리고 ● 시인들이 지어낸 아름다운 비 이름도 있다.♤하염없이 내리는 비 ♤가슴에 내리는 비 ♤그리움 젖은 비’ ♤찬비 ♤강철비가 그러하다.
이렇듯 ‘순우리말 비 이름’은 누구라도 들으면 금방 비가 내리는 모습이나 정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사람 대부분은 비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 줄을 모르고 산다. 이처럼 아름답고 운치 있는 <순 우리 말 비의 이름>은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어 전래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언어의 생성과 발전의 관점으로 볼 때 <순우리말 비의 이름>도 구전으로 전래 되어 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노래 ‘가요나 동요’는 유독 ‘비’로 시작되는 노래가 많다. 비가 가지는 서정적 속성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순우리말 비의 이름>을 가꾸고 보전하는 일은 문학인 여러분의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나라에는 <장맛비>에 신음하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폭탄비>에 목숨을 잃고 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주룩주룩 내리는 ‘주룩비’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맛비를 막기 위해 폭탄비를 막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비로 시작되는 노래를 찾아 위로하는 마음으로 나직하게 불러봄도 좋을 것 같다.
◎ 작가 김동출(金東出) 약력
*아호∥개암
* 2019년 2월 초등교직에서 정년퇴직
* 2021년 [신문예]에서 등단(詩), 에스프리문학상(隨筆)
* 2021년 [청계문학] 신인문학상(隨筆)
* 2023년 현재 [신문예], [청계문학], [파랑새], [문학의 빛] 동인으로 활동 중
첫댓글 시의 적절한 작품입니다.
모르는 비가 많군요.
잘 배웠습니다.
비의 이름에 치중하여 내용이 산만하고 길어졌습니다. 고쳐서 다시 쓰려고 합니다.
비의 이름이 이렇게 많은줄 몰랐습니다자 저는 세가지정도만 있는줄일고 비의 삼형제라고 시를 지어보았는데 너무몰랐는 것같아 부끄럽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