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싸움에서 돌아온 군대장관들에게 노하여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이 여자들을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이니라..”고 일렀다.(민31;14-18).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되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취하여 여호와의 거제(擧祭:제물을 들어 올려 신에게 바치는 이스라엘식 제사)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라.”는(민31;28이하)신의 지시대로 모세는 유대인들이 싸움에서 노획한 소 7만2천, 나귀 6만1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 3만2천 중에서 동물을 제외하고 거제의 세(稅)로 엘르아살에게 준 처녀는 32명이다.(민31;31이하). 그 32명의 처녀는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아주 바친 그 사람은...반드시 죽일찌니라.”는 레27;28이하의 율법에 따라 살해되어 번제로 바쳐졌겠지. 살아남은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 때 징용된 위안부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상상에 맡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그리스와 로마 영웅의 포로 다루는 법을 몇 개 살핀다. B.C. 494년에 볼스키의 수도 코리올리의 공격에 혁혁한 전과를 올려 포로, 말, 약탈품 등의 10%를 가질 권리를 부여받아 큰 부자가 될 처지의 로마 장군 마르키우스는 이를 거절하고 포로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반대하여 그 도시의 이름을 딴 <코리올라누스>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적군의 공격에 많은 병사를 잃은 뒤 가까스로 시라쿠스 성을 함락하게 된 마르켈루스는 곧 닥칠 전쟁의 참화에 눈물을 흘리면서 모든 약탈을 허용하고 그 성을 불질러 황무지로 만들라는 장교들의 요청을 반대하고 돈과 노예의 약탈만을 허용하고 자유민에게는 손대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스의 필로피다스는 포로와 적국 사람들을 노예로 삼지 않았다.
이 밖에도 많은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이 적을 관대하게 대하였고, 심지어 반란을 일으킨 왕도 사로잡은 뒤 용서하여 그대로 자신의 나라를 통치하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