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뭔가를 자주 잃어버리는 나에게 비오는 날은 우산이란 존재 때문에 버거운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엔 비가 오면 밖에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비닐우산이 굵은 빗방울에 뚫어지고 심한 바람에 홀딱 뒤집어지는 번거로움이 있는 날이었고 힘들게 빨아 말린 뽀얀 운동화가 흙탕물에 얼룩이지고, 지나가던 자동차가 물웅덩이를 박차고 나가 옷을 버리게 하는 비는 나에게 귀찮은 존재였다.
비 내리는 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라 했던가. 언제부터인지 나는 비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았다. 집에 있기 보다는 비오는 거리가 보이는 카페를 찾아가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 문자 메시지를 넣어 보기도 하고 설익은 글을 쓰면서 괜스레 센티멘털해지기도 한다. 카페 창밖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는 잔잔한 음악에 리듬을 맞추어 가며 더욱더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책도 잘 읽히고 커피의 맛도 향도 더욱 좋다.
비가 오면 나는 습관적으로 비 노래를 들으며 솟아오르는 열정적 우수에 빠져든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라디오에서도 비만 오면 비 노래가 세상을 적셔나간다. 비와 우산은 단짝이다.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은 색소폰과 피아노의 선율 위에 맑고 고운 목소리가 어우러져 지나가는 우산들을 한 동안 바라보게 하는 곡이다.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나는 ‘비와 음악사이’에 앉아 있는 시간을 즐긴다.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라고 시작되는 곡이다. 사랑의 아픔과 이별, 절망과 외로움의 실연의 상처를 토해내는 노래이다. 실제 김현식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맞물려 끊임없이 애청자의 부름을 받는 노래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OST도 마찬가지이다. 빗방울 떨어지는 거리에 서서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고 싶어 한다.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에 쵸코렛색 물감으로 /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래 보라색 물감으로 / 세상사람 모두다 도화지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라고 마음을 전해 준다.
계절과 함께 엮이는 비를 소재로 한 노래들도 많다. 소울 흥취에 젖어들게 하는 가수 박인수가 부른 봄비는 마음을 울리며 달래주는 외로운 인간 존재의 님과 같은 존재이다.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 한없이 흐르네. /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언제까지 내리려나. / 마음마저 울려주네” 라며 그윽하게 절규한다. “배따라기의 그대는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 김종서의 ‘겨울비는 내리고.’ 배따라기의 ‘비와 찻잔사이’ 등이 그런 노래들이다. 모두가 비의 음유가객이다
올해는 최악의 가뭄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가 사는 청주는 22년 만에 내린 물 폭탄을 맞았다.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대가를 올여름에도 여지없이 치르게 했다. 해마다 폭우사태가 나면 인재인지 천재인지 공방을 벌이고 대책을 세우지만 퍼붓는 장대비를 인간의 힘으로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수십 채의 주택이 쑥대밭이 되고 불어난 물살에 맥없이 휩쓸린 자동차들 토사가 쓸려나간 도로는 끊어져 주저앉아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 노래를 즐기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지만 비가 오건 안 오건 비 노래는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 감성의 물꼬를 트게 해 주고,우리 삶의 전반에서 여전히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관계이다. 어떤 계절이건 지구 어느 구석에서건 비는 외로운 마음을 흔들고 적시며 달래준다.
하늘이 흘리는 눈물은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비는 하늘의 눈물이자 곧 우리의 눈물을 끌어내는 마중물이다. 폭우사태만 나면 인재인지 천재인지 공방을 벌이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연을 몸살 나게 하는 개발이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물의 숨통인 바다로 가는 물길을 인간은 경제적 부와 일치시키려 물꼬를 막고 물길을 돌리며 자연을 몸살 나게 했다. 자연과 상생하는 삶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는 우리에게 침묵하며 견디던 자연도 정도를 넘어선 인간에게 무서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 세상에 물의 덕을 입지 않고 사는 생물이 무엇이 있겠는가. 무심하게 내린 비로 모든 생명들이 윤택한 삶을 살지 않던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다른 것에 혜택을 무한정 내어주는 고마운 물이다. 물은 바다로 흘러 들기 위해 고요한 그대로 고이고 흐르는 유유무언의 낙관적인 성품을 품었다. 지상에서도 지하에서도 산과 산이 가로막혀도 결코 덤비는 일도 없고 불만도 없는 삶이다.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는 물의 덕성을 보며 안분지족의 삶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유추해 보며 나의 삶도 역시 물의 덕성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여겨 보았다.
비는 지상의 더러움을 씻어 내면서도 다른 이를 더럽히지 않는 어진 덕을 가진 하늘이 내리는 물이다. 그러니 비야말로 농경시대가 아니어도 우리를 먹이고 울려주고 위로하는 생명의 기원이자 ‘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감싸고 포용하는 물의 덕성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물 폭탄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슬픔으로 느껴지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우리는 자연의 순환 속으로 돌아가는 자연 생명의 일부이다. 물을 가볍게 여기는 인간 문명은 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서로를 거스르지 않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