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거리를 걸어서 내려와서 그가 살던 초가집을 만났다. 두 아들과 아내, 가족 4명이 기거했던 집이다. 방은 1.3평 정도의 아주 좁은 공간으로 초라하다. 겨우 한 사람씩 좁은 통로로 들어가서 방에 걸린 사진 속 화가와 마주하며 불운한 시대 천재화가의 삶 단면을 본다. 짧은 41년 생애만 엮고 떠났다. 그의 사후에서야 미술가치를 인정받고 명작이 된 것이다. 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는 지주의 아들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청년기에는 일본 동경에서 유학으로 기질을 펼쳤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고난의 시작이었다. 1951년 동란기에 예술의 자유를 찾아 제주 서귀포로 왔다. "서귀포가 더 좋소,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는 노래도 있지 않소. 임자는 그리 가오"라는 낭만이 그를 자극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1년도 못 살고 부산으로 돌아와 극심한 가난으로 가족과의 이별하고 정신이상 증세와 영양실조로 1956년 41세에 불우한 삶을 마감했다. 파란 게와 아이들 서귀포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의 작품은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경과 넉넉한 인심이 담겨있다. 서귀포에서 머문 1년은 두 아들과 자구리 해변에서 게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파란 게와 아이들을 그렸다. 잠시나마 가난이 서린 초가집에서 가난했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향수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