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항쟁, 75주년에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입도한다는 소식에 붙여
seo goontaek ・ 2023. 3. 30. 1:55
서북(서북 청년단 西北靑年團)
제주4.3항쟁, 75주년에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입도한다'는 소식에 붙여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제1권 29쪽 인용
남승지는 북적대는 인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짙은 갈색 점퍼 차림에 같은 색깔 사냥모자를 쓴 사내 둘을 발견했다. 두 사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치켜든 채 마치 굶주린 매와 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는 행색이 사뭇 달랐으며,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때면 키 차이가 컸던 탓일까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으음, '서북(西北)' 놈들이군. 걸음걸이와 풍채에서 어딘지 모르게 깡패 냄새가 배어 있었다. 게다가 엿장수처럼 촌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른바 이승만(李承晩) 왕통파(王統派)의 망나니 같은 존재였다. 이들 말고도 사람들 틈에 끼여 이야기를 나누며 서 있는 서북으로 보이는 감색 사냥모자를 발견하였으나 어느 쪽도 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짙은 갈색 점퍼를 입은 두 사내가 서행하는 버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기도 없이 허름한 옷을 입은 그들은 졸개들이었다. 행세깨나 하는 '서북' 패들은 경찰도 군인도 아닌 주제에 낮에도 당당히 M1소총을 메고 다녔다. 두 사내는 급히 대 여섯 걸음을 달려와 멈추더니 다가오는 버스를 훑듯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키 큰 쪽이 손가락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튕겨내자 두 사내는 사람들 사이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자, 어디 좀 보자..... 음 드디어 성내에 도착했군, 성내에..... 저건 뭐지? 엿장수 같은 녀석이 있네.....
어험, 자아 조심하세요. 아가씨들은 혼자 가면 안돼요. 우리하고 함께 가야지, 함께..... 라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짐을 짊어지며 내릴 준비로 시끌벅적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태평스러운 공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성내의 공기가 갑작스레 버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탓이었다. 그들도 성내가 시골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승지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그는 가벼운 근시에 난시였으나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사복경찰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잠복 중인지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형사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했다. 이럴 때마다 남승지는 자주 긴장 속에 오르는 기억, 일제 때의 관부연락선, 시모노세키 항과 부산항, 이곳 성내의 항구, 서울과 목포역 등지에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알 수 없는 사복경찰과 헌병을 두려워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 나라가 일제 때와 마찬가지 상황으로 돌아가는 데는 독립하고 나서 겨우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복경찰이 지키고 서 있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장날에 보릿자루를 짊어지고 노천시장에 팔러 가는 시골청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북'이란 원래 서도(西道, 북한의 황해도·평안남북도)와 북관(北關, 북한의 함경남북도) 지방, 즉 북한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지금 남한에서는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를 일컫는 말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후,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그들은 과거 지배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거나 그들과 봉건적 신분 관계를 맺고 있던 일족들이었고 새로운 사회체제에 반대하는 자들로, 철저한 반공 테러 단체인 '서북청년회'를 조직하여 이승만의 가장 충실한 앞잡이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서울을 거점으로 삼아 특히 반미·반이승만 세력이 강한 이 섬(제주)을 폭력과 테러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서북'이라면 울던 아이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일 정도였다.
[출처] 제주4.3항쟁, 75주년에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입도한다는 소식에 붙여|작성자 seo goonta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