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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야기방 스크랩 산골 아낙의 푸념 소리 - My story(13)
산적 주정필(전남 화순) 추천 0 조회 27 18.02.23 01:1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My story(13)


(그때의 '실장' 직함이 나중에 영원한 실장으로 불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ㅎ~)


한편, 나는 미용실을 때려치웠다.
남편을 돕기 위해.
그때부터 무엇을 하건 나는 남편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우리는 인천에 살던 오빠의 도움을 받아 조그만 가게에
컴퓨터 개발실을 차렸다.
개발 용역을 따내기 위해선 서류가 우선이었다.
남편은 공무원 경력 5년인 사람이었다.
남편의 서류 작업은 너무나 깔끔했다.
어디에 제출해도 손색이 없는 서류는 하나,둘 일을 따내기 시작했다.


남편이 습득했던 electronic control, factory automation.
남편은 전자 분야의 프로그래밍에 탁월했다.
게다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루틴 서너줄을 짜기 위해 석달간이나 프로그램을 분석할 정도로 

몰입력도 대단했다.



( 사진 출처 : http://alfa.net.my/products/Firmware-Development-Console-Board/41 )


남편은 독학파였다.
영어와 일어도 독학했었다.
원서를 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었다.
그만큼 정보력도 빨랐다.
필요한 메뉴얼이 있으면 해외까지 찾아갈 열정과 패기도 있었다.
한번은 일본 도시바 본사까지 찾아가 메뉴얼을 얻어 왔다.


그때부터 남편은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곧 돈이었다.
(그 당시 아시아나 마일리지가 아직도 3만 마일이나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없는 controller를 직접 제작하여 납품했다.
요즘처럼 잘 만들어지고 고도화된 부품이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회로를 직접 설계 Board화 하여 컴퓨터에 장착, 원하는 기능을 구동케 했다.
(현재(2018년)는 그런 보드가 다양하게 모듈화 되어 있다.
부품 또한 소형화, 경량화, 기성화, 전문화 되어 어디서나 구하기 쉽다.
최신 기능까지 갖춘 센서며 칩 등 참으로 다양화되어 있다 )


남편은 서서히 컴퓨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차츰 국내의 굵직한 연구소들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금호 연구소, 대덕 연구단지의 자원 연구소, 등등.


연구 세미나에도 종종 초대받았다.
일거리가 늘어나며 직원들도 채용했다.


남편은 겉치레와 형식적인 것을 싫어했다.
특히 외모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냥 편한 평상복 차림으로 어디든 나다녔다.
박사급들이 모이는 곳에도 버젓이 재래시장표 싸구려 회색 마포 옷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나타나는가 하면 수염도 덥수룩히 기른 채
나타나곤 했다.
부장급 박사에게서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기도 하지만~)


자기 편한대로 남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오직 컴퓨터에만 집중했다.
골머리 아픈 프로그램을 짤 때면 자면서도 프로그램을 짜는지
자고나서 곧바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나는 나대로 운전 면허를 취득하여 남편의 운전기사로, 개발실 경리로,
필요시엔 납땜 보조자로, 1인 다역을 해냈다.
직원들의 밥까지 해 먹이며.


( 사진 출처 : http://www.wachterinsurance.com/blog/can-keep-car-insurance-costs-low-teen-driver/ )


그러다보니 잔병치레 많던 허약한 몸뚱이가 여기저기 고장났다.
자고 일어나면 목뼈가 삐긋해 병원행, 아기 낳고 고질병 됐던 허리디스크도
수시로 말썽을 부렸고 좌골 신경통은 왼쪽 다리를 극심한 통증으로 몰고 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기저귀에 똥 오줌을 싸 놓고도 참던 기질이자나~ ㅎ~)


하지만 그런 건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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