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35)
예수님의 말씀의 초점이 당신 자신의 혈연적인 가족 관계를 부정하려는 데에 있지 않고, 영적 의미의
가족 관계를 강조하려는 데에 있었음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만일 예수님의 가르침의 초점이 혈연적 가족 관계의 부정에 있었다면, 가르침의 대상은 당신을 미쳤다고
생각하여 강제로라도 데리러 온(마르3,21) 가족들이 되었을 것이고, 가르침의 내용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 복음 3장 31~35절의 결론은 영적 의미의 가족이 누군가에 대한 정의에만 머물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혈연적 가족의 중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영적 의미의 가족에
대한 정의를 통해 당신 공동체의 내적 결속을 강화하신다.
당시 열 두 제자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자들은
보잘것없었다(마르3,32).
이러한 보잘것없는 공동체에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의 베엘제불 논쟁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예수님께서 마귀 들렸다는 그릇된 풍문과 더불어 이제 막 시작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예수님의 친척들이 가세하여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예수님의 공동체는 크나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바로 이런 위기에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이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도래하는 시대는 사회적 신분이나 가문, 지식에 상관없이 오직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세상적으로 낙오된 자들도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예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에, 이런 위기의 순간에 펼쳐진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상황을 반전
시키는 힘있는 메시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집에서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 계실 때 육신의 가족이 찾아왔다고 해서 가르침을
중단하고 가족들을 만나셨다면, 당신을 추종하던 제자들에게도 교육상 좋지 않은 예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 3장 32~33절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께서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인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고 말씀하셨을 때의 표정과 어투의 단호함과
엄격함은, 공사를 명백히 구분하고, 혈연과 육정을 초월해서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서만 자신들을
온전히 헌신해야 할 제자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본다.
출처: 피앗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