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거미’라고 불러주세요.” 다음(http://daum.net)에 개설된 거리미술동호회, 일명 ‘거미동’(http://cafe.daum.net/streetart)의 운영자 이진우씨. 자신을 거리미술 동호회의 왕, ‘왕거미’라고 소개하는 데서 편안함이 물씬 묻어나온다.
거리미술 동호회는 말 그대로 거리를 아름답게 가꾸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네트워크상의 아마추어 모임이다. “거리미술이란 게 지금 아예 없는 건 아니죠.” 회색의 몰개성적인 거리도 ‘미술’이라며 이진우씨는 장난스럽게 대화를 시작하지만 좀 더 따뜻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언급에서 삭막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느낄 수 있다. 현재 벽화작업이 주를 이루는 ‘거미동’이지만 환경을 아우르는 모든 미술적 방법들을 모색하려 하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벽화를 포함한 거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한 색채기획도 동호회 목적에 포함돼요. 홍대 앞 시장거리 벽화작업을 할 때는 벽화를 그린다기보다 오히려 시장거리, 그러니까 서교동 구시장 전체 건물에 대한 색채기획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거든요. 시장블럭을 죄다 칠했으니까요. 마치 페인트공처럼.”
‘거미동’의 현재 회원수는 6백여명. 오프라인으로 벽화 그리기 모임이 있을 때는 열댓명 정도의 회원들이 참여한다. 회원들이 작품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와서 작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왕거미 아저씨’는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다들 힘들다는 소리 없이 열심히 작업해요” 라며 뿌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때 그는 인천미술인협회 산하단체였던 조형연구소 연구소장이란 이름을 달고 활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이었던 조형연구소에서는 그가 원했던 자원봉사로서의 벽화작업이 어려웠고, 결국 지난 2000년 말에 연구소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진우씨는 ‘거미동’의 활동에서 돈을 벌 생각은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거미동’의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1월에는 지체장애자 특수학교인 성봉학교에 벽화를 그렸고 오는 4월에는 가양동 기쁜우리복지관 벽화를 그릴 예정이다.
그는 왜 거리를 채색하는 ‘페인트공’이 된 것일까. 서울 시내 대부분의 미술 전시관이 몰려있는 인사동과 청담동의 화랑가. 이런 곳들이 사람들과는 먼 공간이기 때문에 이진우씨는 벽화를 그린단다. “미술을 그렇게 몇사람 찾지 않는 곳에, 그것도 답답하게 건물 안에 넣고서 ‘미술이다!’ 외친다니까요. 이런 것이 미술을 사람들과 떨어지게 만든 사회구조의 큰 부분인데…” 이런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그는 말을 쉽게 끊지 못한다. “옛날 알타미라 동굴벽에 그림을 그린 건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죠. 커다란 물소를 잡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 그림은 그리움이란 단어에서 나온 거예요. 그렇게 실생활과 하나였던 미술을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이 상아탑 속에 가두어 버린 거예요. ‘미술의 독재’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죠.”
이진우씨는 미술이 사람들 곁으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미술을 거리로 내놓아 모든 사람들이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배경에서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세상에는 벽화가 그려져야 할 벽이 더 많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훈훈해진 거리의 주인공이 될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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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11 호
이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