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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기암에서 동쪽 조망, 멀리 가운데가 배거리산(?)
山精成石石成山 산의 정기가 뭉친 돌 그 돌 속에 또 산 하나
萬壑千巖在此間 만학천봉이 그 가운데 자리 잡고 있구나
輸盡化工無限意 하늘의 조화 무궁한 뜻 모조리 드러나고
弄來纎巧幾多般 섬세하고 교묘한 솜씨 다채롭게 펼쳐졌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 산행일시 : 2022년 1월 15일(토), 흐림
▶ 산행인원 : 4명(자연, 하운, 메아리, 악수)
▶ 산행시간 : 8시간 22분
▶ 산행거리 : 도상 12.3km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제천으로 가서, 택시 타고 피재로 감
▶ 올 때 : 신림에서 시내버스(21번) 타고 원주 판부(판부농협)에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원주역으로
와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로 옴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따랐음)
06 : 50 - 청량리역, 제천 경유 부전 가는 무궁화호 열차 출발
08 : 24 ~ 08 : 49 - 제천역, 아침요기, 산행준비
09 : 10 - 피재, 산행시작
09 : 40 - 감악산 주릉, 피재점(784m)
10 : 45 - 석기암(石機巖, △902.9m)
11 : 30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요부골 2.1km, 직진은 감악산 1.3km
12 : 16 ~ 13 : 03 - 감악봉(883.6m), 점심
13 : 30 - 감악산(紺岳山, 956.4m)
13 : 54 - ╋자 갈림길 안부
14 : 18 - 848.4m봉
14 : 26 - 816.3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영춘기맥 치악산으로 감
15 : 20 - 천삼산(△817.5m)
16 : 10 - 676.6m봉
17 : 00 - 골안 마을, 도로
17 : 32 - 신림면 행정복지센터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17 : 50 - 장양리 가는 시내버스 탐
18 : 08 ~ 19 : 50 - 판부농협 버스승강장, 저녁, 원주역으로 가서 청량리 가는 열차 탐
20 : 56 - 청량리역
2-1. 산행지도(석기암, 감악산, 영진지도, 1/50,000)
2-2. 산행지도(감악산, 천삼산, 영진지도, 1/50,000)
2-3.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석기암(石機巖, △902.9m)
우리가 제천 가는 무궁화호 ‘기차는 7시 (10분 전)에 떠나네’이다. 소설가 신경숙 씨보다 10분이 빠르다. 1주일
전에 기차표를 예매하였기 다행이다 싶게 거의 만석이다. 승객들 절반은 등산객들이다. 마주 보고 앉거나 통로
에 주저앉아 시끌벅적했던 옛날의 기차여행이 새삼 그립다. 지금은 모두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말소리도 삼간
다. 조용하다. 차창 밖은 아직 캄캄하다. 밤으로 간다.
수시로 코로나 19 검사(PCR)를 받으면서도 그 검사결과를 통보받을 때까지는 늘 초조하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고 강변한들 무증상 감염도 있다며 양성반응으로 나왔다고 하면 나로서는 속수무책일 터이니까 말이다. 산에
가다 말고 즉시 집으로 뒤돌아가 일정기간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오후에 한 검사가 오늘은 그 결과를 여느 때에 비해 빠른 07시 16분에 통보를 받았다. 음성입니다. “항상 기뻐
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의 말씀이다.
제천역. 역사 휴게실에 들러 구석진 데로 가서 간단히 아침요기하고, 역사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 타려고 맨 앞
으로 가려니 그 줄이 상당한 거리다. 택시기사님에게 ‘장국수’가 제천이 자랑할 만한 먹거리냐고 물었더니 자기
로서는 별맛이 없더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작년 1월에 제천의 시랑산과 마두산을 갔다 오면서 제천역사 앞에
서 코로나 인원제한에 걸려 음식점을 분산하느라 장국수를 먹지 못했던 아쉬움을 던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피재 가는 길은 의림지(義林池)를 지난다. 의림지가 하얀 빙판이다. 어찌 보면 스케이트
장 크기의 넓이인데 옛 기록은 그렇지 않다. 의림지야말로 제천은 물론 충청도가 내놓을만한 연못이다. 의림지
는 조선 세종 때 만들었다. 귤산 이유원(橘山 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의하면,
의림지는 세종 때에 (충청도 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 1396~1478)에게 명해서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었는데
마치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삼대 연못으로 이 의림
지와 함창(咸昌)의 요거지(幺巨池), 연안(延安)의 남대지(南大池)를 꼽았다고 한다.
충청도를 호서(湖西)하고 한 것도 이 의림지를 기준해서였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기행(記行)에
의하면,
“가리파(伽利坡)는 원주(原州) 치악산(雉嶽山) 남쪽 기슭의 큰 재인데 단구역(丹丘驛)에서 산골짜기로 15리를 간
다. 재를 넘어 골짜기를 나와서 또 15리를 가면 신림역(新林驛)이다. 신림의 남쪽은 횡령(橫嶺)인데 호서 제천현
(堤川縣)의 경계이다. 횡령 너머는 가령(椵嶺)이고 그 남쪽이 의림지(義林池)이다. 본디 영서와 호서의 애초의
경계는 큰 못이었으니 제천 너머의 고을에 호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 못 때문이다.” (伽利坡。原州雉嶽
南麓大嶺。從舟丘驛。山谷行一十五里。踰嶺出谷。又一十五里。新林驛。新林南橫嶺。湖西堤川縣境。橫嶺外
椵嶺。其南義林池。自嶺西,湖西初境。大澤。堤川以外。有湖西之名。以此澤故也。)
ⓒ 한국고전번역원 | 허선휴 (역) | 2006
이 의림지를 두고 숱한 시인묵객들이 시를 읊었다.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은 제천(堤川)이란 지명을
「의림지(義林池)」라는 시에서 의림지의 둑방에 연유한다고 보았고,
提縣以堤名 제천 고을 이름은 제방이 있기 때문
提功自中古 어언 중고 시대부터 이 제방 덕을 보았다오
呀然千頃陂 끝없이 펼쳐진 십만 이랑 방죽이여
空洞開天宇 걸림없이 텅 빈 모습 하늘을 닮았도다
3. 피재점 오르는 도중에 바라본 배거리산(?)
4. 석기암 가는 도중에 뒤돌아본 등로
5. 금수산
6. 멀리 가운데가 금수산, 왼쪽 멀리는 도솔봉 연릉
7. 멀리 오른쪽은 월악산, 가운데는 백두대간 대미산 연릉
8. 멀리 오른쪽은 금수산
9. 멀리는 백두대간 대미산 연릉
10. 용두산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은 「백옥과 함께 의림지에서 놀다(同伯玉 游義林池)」라는 시에서 의림지
를 춘유의 명소로 꼽았다.
暄風氣已和 따스한 바람 불어 날씨 이미 온화한데
廣池夕湛湛 넓은 못에 저녁 되니 물결 더욱 맑아라
花光動淪漪 잔잔한 물결 속에 꽃빛이 일렁이니
可以蕩丹艦 신선의 배 띄워 한바탕 놀 만하구나
피재. 제천의 외곽도로다. 고갯마루는 2차선 도로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 의하면 “고개 마루에 피나
무가 많다 하여 피재 또는 직치라 한다.”라고 한다. 그런데 ‘직치’는 오해가 아닌가 한다. 종묘사직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사직(社稷)의 ‘사(社)’는 토지 곧 땅으로 나라를 뜻하고, ‘직(稷)’은 피 또는 기장으로 곡식을 뜻하는데, 낙
엽활엽인 피나무는 몰라도,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피’를 들먹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아니면 피나무가 잘못
이던지.
피재 고갯마루는 높은 절개지여서 고갯마루 약간 못 미쳐 여러 산행 표지기와 이정표가 소로의 등로를 안내한
다. 피재점 1.3km. 첫 발걸음부터 되게 가파른 오르막이다. 통나무계단을 놓았다. 땅에 코 박고 긴다. 푹한 날씨
라 금세 땀을 쏟는다. 긴 한 피치 헐떡이고 나면 부드러운 등로다.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아름드
리 소나무 숲길이다. 수렴 사이로 뒤돌아보는 제천은 운해에 잠겼다.
감악산 주릉. 이정표에 ‘피재점 해발 784m’이다. 오른쪽은 용두산 4km, 왼쪽은 감악산 6km다. 용두산 가는 길
에 눈길 한 번 주고 뒤돌아서 감악산을 향한다. 인적이 뜸하다. 발목 덮게 수북이 쌓인 낙엽이 내린 그대로다.
봉봉 오르고 내리고 낙엽을 지친다. 봉마다 우회로가 잘났지만 우리는 생사면 누비며 일로 직등한다. 755.1m봉
넘고 한 피치 내렸다가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등로 주변에는 즐비한 거목의 참나무가 볼만하다.
석기봉 0.5km 이정표는 석기봉을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르고, 직등하는 능선은 인적이 흐릿하다. 자연 님과
하운 님은 우회하고 메아리 님과 나는 당연히 직등한다. 얼마 안 가 암벽 암릉과 맞닥뜨리고 그 몇 미터 앞에
오른쪽 절벽을 내리는 밧줄이 달려 있다. 괜히 밧줄이 달려 있지는 않을 것. 섣불리 암릉에 덤비지 않고 밧줄 잡
아 레펠 흉내로 깊은 절벽을 내렸다가 선답의 발자국계단 따라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석기암. 충청북도 표준인 오석의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다. 제천 23, 2004 재설. 오늘 산행 최고의 전망이
다. 미세먼지가 옅게 끼였지만 가경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하늘금은 월악산 영봉에서 만수릿지를 지나고 백두
대간 대미산 장릉을 거쳐 묘적봉, 도솔봉까지 분명하게 이어진다. 뒤로는 응봉 너머로 치악산 연봉과 백덕산이
둘러있고, 앞의 만학천봉 한가운데 유난히 우뚝 치솟은 봉우리는 금수산이다. 반갑다.
11. 멀리 가운데가 배거리산(?)
12. 용두산, 멀리 가운데는 완택산(?)
13. 멀리 가운데는 금수산
14. 멀리 가운데는 월악산, 그 뒤 왼쪽은 포암산
15. 멀리는 백두대간 대미산 연릉
16. 멀리 오른쪽은 금수산
17. 감악산, 그 뒤 오른쪽 멀리는 치악산 비로봉
18. 수렴에 가린 감악산
▶ 감악산(紺岳山, 956.4m)
모처럼 보기 드문 첩첩 산 가경에 눈이 어질하여 석기암을 내린다. 야트막한 안부(석기암고개) 지나고 다시 봉
봉을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902.4m봉은 직등하려고 덤볐으나 껄끄러운 암릉을 만나고 그 뒤쪽이 블라인드 코
너일지도 몰라 포기하고 얌전하게 등로 따라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다 돌고 나서 혹시 누군가
902.4m봉 능선을 넘었을까 살폈으나 아무 인적이 보이지 않아 찝찝하던 기분이 풀린다.
815.4m봉 ┫자 갈림길. 이정표에 왼쪽은 문바위 2.0km다. 거기를 다녀오기에는 너무 멀다. 그 절반만 돼도 해
보겠는데. 넙데데한 사면을 한달음에 내려 바닥 친 안부는 재사골재다. ╋자 갈림길 왼쪽은 요부골로 가고 오른
쪽은 재사동(才士洞)으로 간다. 전에 부자가 살았다 하여 요부골이라고 한다는데 그 한자 쓰임이 어떠한지 모르
겠다. 재사동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공부를 하여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 재사골재가 지금은 황량하지만 봄
이면 기화이초가 만발하는 초원이다.
감악산 품에 든다. 길이 사납다. 바윗길 슬랩 덮은 데크계단을 길게 오른다. 암봉인 봉봉이 경점이다. 꼬박 들른
다. 암벽에 손바닥 밀착하여 슬랩을 올라 △883.6m봉이다. 지형도에는 감악봉이라 한다. 등로 옆 공터에 점심
자리 편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대기가 워낙 차서 조금만 가만히 있으면 한기가 온몸을 엄습한다. 비닐쉘터를
친다. 전에는 김이 가뜩 서리기에 이를 빼내려고 비닐자락을 들추곤 했는데, 이번에는 쉘터 천정에 공기통을 뚫
었다. 효과만점이다.
비닐쉘터 안은 훈훈한 봄날이다. 만두, 떡사리, 라면, 그리고 식후 커피가 느긋하다. 지나가는 일단의 등산객들
이 부러워하는 눈치다. △883.6m봉에서 바윗길 한 피치 내렸다가 길게 오른다. 오른쪽 사면은 깊은 절벽이고,
왼쪽 사면은 완만하다. 가급적 왼쪽 사면 가까이로 오른다. 감악산 정상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깊은 바위틈을
두 번 건너뛰고 암벽을 올라야 한다. 그 건너 암봉은 절벽을 내려다가 또 암벽을 올라야 하는데 위험지대라고
경고판이 있기도 했지만 살짝 덮인 눈이 미끄러워서 가다가 그만 두었다.
감악산은 조선시대에는 ‘감암산(紺巖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상은 일출봉이고 약간 떨어진 북쪽의 봉우리가
월출봉이다. 이 산 아래 명암리(明巖里)는 일출봉에서 일(日)자를, 월출봉에서 월(月)를 따서 밝을 명(明)을 취했
다고 한다. 고전에는 이 감악산보다 파주 적성에 있는 감악산이 더 자주 오르내린다. 파주의 감악산 아래에도
백련사라는 절이 있고, 이 감악산 아래에도 백련사라는 절이 있는 것은 기이하다.
19. 멀리 가운데는 백덕산
20. 앞 왼쪽이 석기암
21. 왼쪽 멀리가 천등산(?)
22. 앞 왼쪽이 석기암
23. 앞 오른쪽이 석기암, 왼쪽은 피재점
24. 감악산
25. 점심시간, 비닐쉘터 안은 훈훈한 봄날이다
26. 멀리 오른쪽은 용두산
▶ 천삼산(△817.5m)
일출봉을 내려 북사면을 밧줄 잡고 조심스럽게 돌아 주릉에 들고,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을 벌였다는 감악산성
터를 지나고 쭉쭉 내려 ╋자 갈림길 안부인 감악고개(감악현, 가막고개)다. 왼쪽은 임도와 바로 맞닿아 백련사
를 오가고 오른쪽 역시 잘난 길로 황둔으로 간다. 천삼산 가는 길은 인적 드문 한갓진 길이다. 고개 푹 숙이고
오르막 수북이 쌓인 낙엽을 헤집는다. 날 무딘 나이프 릿지를 지나 848.4m봉을 넘는다.
한 피치 내리다 주춤한 816.3m봉은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오른쪽은 영춘기맥의 연속으로 싸리재 지나 응봉을
넘어 치악산으로 간다. 우리는 옛적 거기를 간 기억을 잠시 반추하고 왼쪽으로 꺾는다. 길 좋다. 아니 등로 주변
의 분위가 썩 좋다.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천삼산이 ‘天蔘山’이 아닐까? 싸리 숲 사면을 들락날락한다. 자연 님
의 멀도록 밝은 눈은 사람 잡는다. 눈에 흙이 들어가는 불꽃 튀기는 조각의 각고 끝에 만리발청향 맡아 살아나
곤 한다.
824.1m봉. 천삼산 정상으로 잘못 알았다.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으니 그 남릉을 따라 내려 칠성암을 지나 선덕
동으로 가느니 신림이 가까운 서릉을 가자 하고 방향을 틀었다. 150m쯤 갔을까. 공터가 나오고 수많은 산행표
지기가 펄럭이고, 삼각점이 보이고, 나뭇가지에 표지판이 걸려 있다. 천삼산 818.6m. 삼각점은 ‘제천 303, 2004
복구’이다. 주변의 산행표지기는 21장이나 된다. 내로라하는 산꾼들의 표지기도 보인다. 이만하면 비록 조망은
무망이지만 명산의 반열이다.
하산이다. 맘 놓는다. 그런데 맘을 놓기는 너무 일렀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려는 참이다. 천삼산
내리는 도중에 암벽 암릉을 만난다. 직등보다는 오른쪽 사면을 돌아내리는 길이 더 뚜렷하기에 사면을 내렸는
데 중간에 가파른 능선을 오가는 밧줄이 매달려있는 게 보인다. 낙장불입이라 계속 돌아내리고 그 갈림길에서
뒤돌아보니 ‘천정바위’라는 방향표시와 흐릿한 등로가 나의 게으른 발걸음을 탓한다. 이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이다음 676.6m봉(김형수의 『韓國400山行記』에 의하면 ‘중봉’이다. 이하 같다.)이 오르기 퍽 고약하다. 등로가
불분명하다. 메아리 님은 남릉의 662.4m봉(상봉) 쪽을 살피고 나는 중봉을 더듬는다. 바윗길 살금살금 올라 그
정상에 오르니 여러 산행표지기가 반긴다. 소리쳐 일행 불러 오도록 한다. 676.6m봉이 조망 좋은 암봉인데 오
르내리는 긴장감 때문에 낙조 무렵의 가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676.6m봉 남쪽은 아득한 낭떠러지다. 북쪽의 인적 쫓는다, 이도 눈 살짝 덮인 가파른 슬랩이다. 사면을 길게 돌
아 하봉(645m)을 넘는다. 험로의 연속이다. 이런 능선이 맥을 놓을 때까지 붙들었다가는 오늘 중으로 서울 가
기가 어렵겠다. 탈출을 도모한다. 지도에는 오른쪽 사면이 부드럽고 마을이 가깝다. 그렇지만 실제는 그리 간단
하지 않다. 너덜지대 지나고 산자락에 이르러서는 복분자 덩굴이 선봉하여 가로막는 가시덤불 헤치고 개울을
건넌다.
골안 마을. 개들이 총궐기하여 이방인을 반긴다. 그만 하시라 손사래 치며 마을을 빠져 나가고 신림중학교 울타
리 돌아 대로에 다다르고, 건널목 건너고 신림교로 주포천(周浦川) 건너 신림면 행정복지센터 버스승강장이다.
산행종료. 하이파이브 나눈다.
27. 앞 능선을 지나왔다
28. 오른쪽은 구학산
29. 감악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30. 감악산 정상, 자연 님
31. 감악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겨울이라 암봉인 정상을 오르기가 약간 까다롭다
32. 서쪽에서 바라본 감악산, 또 다른 모습이다
33. 멀리 가운데는 백운산, 그 앞은 벼락바위봉
34. 천삼산 정상에서
35. 앞 능선을 내렸다. 오른쪽 끄트머리 능선 너머가 신림이다
첫댓글 천삼산지나 하산하는 코스가 그 날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역시 '악'자 들어갈만한 산이어군요...수고많으셨습니다^^
천삼산 지나서가 비로소 재미난 구간이었습니다.^^
제천의 산들은 보기보다 위험한 구간이 많은 것 같아요. 안전산행 다행입니다.
산들이 마치 수묵화 안에 들어 있는 몽환적인 느낌이에요. 보고 또 보고 했네요.
예전에 오지산행에서 석기봉을 올랐을 때는 더 멋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추억의 산길입니다. 박무에도 조망이 좋습니다.
아침에 날씨가 흐릿하여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좋은 경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