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저 년을 집에 들여놔!!!!"
"누나...."
바락바락 써 대는 악이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긴 머리의 여자가 부드럽지 않은 손길로 대충 머리를 쓸어넘기고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악받친 괴성은 잠시 넣어두고 사나운 눈길로 흘끗. 위를 보았다.
그러더니 또 한번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놈....."
"나 안불쌍해.하하.."
미친놈.뭐가 안불쌍해 뭐가.... 쓰린 손길로 남자의 광대뼈 주위에 난 생채기를 슥 훑었다.
그러고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윗 입술로 꾹 물어보였다.
바보같은 놈... 바보같아.... 몇 번이고 되내이더니 손을 떨군다.
"나는 네가 좀 더 이기주의적이었으면 좋겠어."
"민정이 비 맞고 들어왔어...."
"............"
"덜덜 떨길래... 침대 시트 가져다가 꽁꽁 싸매줬어....."
"바보새끼야!!!!!!"
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매섭게 치켜든 손이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 처럼 떨궈져 내렸다. 때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내 동생. 여자는 또 한 번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남자는 애써 웃어보였다.
자신의 누나가 얼만큼 속상해 하는 줄 안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보이는 남동생의 옛 연인이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쪽팔린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날.
또 저 따뜻한 품에서 배로 운 날을 잘 알고있는 누나라서.
"잘 할꺼야......"
-
"민정아."
"........응...."
"감기는 안걸렸어?..."
"현아 언니 말대로 넌 바보야."
옛 연인의 목소리를 기억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에 축축히 젖은 채로 미안하단 말 없이 춥다만 중얼거리는 몹쓸 말에서도
방긋방긋 웃어대던 예전 목소리와 웃음을 다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필히 특출난 천재따위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달싹여 바보라고 쏘아오는데도
실실 삐져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는지 선우가 웃어보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매직으로 써놓은 듯 해말간 웃음을 보자
민정이 조용히 시선을 떨궜다.
보고싶지 않다. 저런 웃음 따위는.
어떻게 왔느냐. 뭘 하고 왔느냐 하는 어색한 질문들도 하지않고
그저 예전에 자주 누워보던 그 침대의 시트를 들고 와 꽁꽁 싸매 주는 그 손길은.
신기하게도 미미하게 나는 그 냄새와 섞여드는 제 체온냄새에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삼아 울고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괜찮아 나는."
"뭐가 괜찮아.대체 뭐가."
"그냥 너 이렇게 있으니까 ....."
"......."
어색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방 안을 휘휘 돌아다녔다.
죽 쒀가지고 올께. 침대가 풀썩 들려지는 느낌에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렸다.
분명 넓다란 등인데 자꾸 좁아보인다.
그리고 휘어보인다.
보이지 않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짐들이 위태롭게 높이 쌓아올려진 것처럼.
조용히 민정이 눈을 감았다. 보고싶지 않다.
깔끔한 새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저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헌신적인가.
아무 생각이 없다.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도 모르고 민정은 눈을 감았다.
선우가 하얗고 말간 죽을 쑤어 올때쯤이면 잠들어있길 바라며.
조용조용히 새근대는 숨을 들으며 선우가 침대 옆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 손길이 작은 소리라도 내면 깰세라 조심스러워서.
몇 달 전보다 더 길어진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려보고
그 손을 들어 눈 앞에 대고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볼가에 내려온 옆머리를 귀 뒤로 조심스레 넘겨주고선 씩 웃어보이는게
반짝이는 보석을 캐낸 광부의 그것보다는 조금 슬퍼보여서.
"잘 자."
옷장을 열어 꿉꿉한 시트 하나를 더 꺼낸 선우가 조용히 말했다.
소곤소곤 귓속말 정도로 말하는 것이 자는 사람에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꿈 속에서라도 들리길 바라며 들고 있는 시트를 다시 한번 고쳐 쥐었다.
방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똑딱이며 시계 초침가는 소리만 흘렀다.
머리 맡에 난 큰 창에서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렸다.
"병신새끼........"
그렇게 큰 짐을 지고서도 힘들다 말 못하고
못된 짐이 머금은 습기만큼 눈물을 뚝뚝 흘려내면서도 웃는 꼴은
병신새끼라고 열댓번이라도 소리쳐 주고싶을만큼 안타깝다.
-
숟가락 긁는 소리만 울리는 부엌은 언제나 그렇듯 어색한 분위기가 빙빙 돌았다.
웃기게도 우직한 등을 가진 남자가 빨간 앞치마를 매고 파를 통통 썰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민정은 웃지 않았다. 그저 맨 밥만 입에 집어넣었다.
계란 말이 부터 제가 전에 좋아했던 반찬들은 가득한데도
울음이 나올새라 틀어막는 것처럼 꾸역꾸역.
뚝배기에 계란을 풀어넣고 파를 썰어넣는 하얗고 선이 예쁜 손을 볼 새도 없이
민정은 답답한 속을 그저 두어번 퍽퍽 때린 채 일어섰다.
벌써 일어나? 웃으며 빙글 돌아보는 얼굴에 멈칫. 했지만
낮게 어.. 하고 대답하고 어쩔줄 몰라했다.
"거실에..가있을래? 아님 더 잘래?"
"저기......"
이것 저것 챙겨오는 물음을 넘겨버리고 물어도
얼굴 가득하게 말간 웃음을 머금고 응? 하고 물어온다.
그렇게 웃어봤자 하나도 안 기뻐보여.
말하고 싶었지만 민정은 선우의 누나가 했던 것처럼 입술을 꾹 물었다.
"아니야...."
너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가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온건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니?......
-
어색한 자리였다.
시계 초침 가는 소리가 째깍째깍 들리는 거실에 우두커니 둘이 맞대고 앉아
아무 말도 못한 채 우물쭈물대는 꼴이란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다리에 올린 검지 손가락을 툭툭 두어번 쳐보였다.
그리 뜻이 있던 행동은 아니었는데 흠칫거리는 민정을 보고 웃지도 못했다.
"궁금하잖아."
"뭐가?"
"내가 뭘 하고 왔는지."
"............"
"지난 겨울에 너 내팽겨치고 가버렸던 년 얘기는 듣지도 않겠지....."
"그러지마"
픽 웃어보이는 민정이 선우의 웃음과 미묘하게 닮아있어서.
자꾸 덜덜 떨리는 손을 어떻게 가누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쳐냈다.
부들거리는 손 처럼 떨리는 입술을 이빨로 마구 짓이기고 있을 때
시계 초침 소리를 묻어버리고 민정이 말했다.
"술집에 있었어."
".........."
"너랑 만나기 훨씬 전에도 있었어."
"........."
"네가 실망할까봐 첫 눈 내리는 날 그렇게 말했어."
나는 니가 어떻든 괜찮은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입 속으로 꿀꺽 삼켜버린 말.
이 말은 나중에 분위기 잡고 멋지게 해주어야겠다.
선우가 손을 꼭 쥐며 스스로 마음을 툭툭 두드렸다.
내뱉던 실소에 섞인 슬픔만큼 아픈 표정을 지어보인 민정이 말을 이었다.
"잡 일만 하면 됐는데.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날 방에 넣겠다는거야."
나는 많이 아팠어. 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째깍대는 시계 소리에 묻어버리기로 했다.
제 앞에 있는 남자는 이기적이지 못하니까. 나 혼자 이기적일수는 없어서.
등 뒤에 눅눅한 짐 만큼 아플테고 많이 울고. .......
미워했니?.....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낮에 뛰쳐나왔어. 용케 깍두기 하나가 날 붙잡았는데 살려고.
나 살고싶어서 뛰어왔어."
"............"
"여기로."
그 뒤로 둘 다 아무말이 없었다.
나는 네가 여기로 와줘서 고마워. 한 번 말을 삼키고
내가 살곳이 여긴가봐. 또 두 번 말을 삼키고.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뚝뚝 떨어지는 눈물 방울들에
황당할 새도 없이 엉엉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할 법한 서럽고 슬픈 목소리로 흐느끼는 목소리에.
텅 비고 쓸쓸한 거실에 두 개의 슬픈 목소리가 미묘하게 얽혀들어갔다.
"나는...."
차갑던 계절에 바람만 맴돌던 나뭇가지에 구름이 걸리고 제법 모양새를 갖추어갔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다. 새 살이 돋아나고 푸릇한 싹이 나고,
"니가 어떻든 괜찮아."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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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친구랑 하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에 올렸던 단편이었어요.
좀 수정할까 했지만 너무 귀찮아서어 ....
부족하지만 읽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TT 처음 올려보는 소설에
인소닷에는 처음 올려보는 글인것 같아요.
※제목은 아시는 분 있을지 모르는데 사.호 Roman 앨범 노래 마지막에 하나씩 있는 글귀에요!으항항.
첫댓글 우어...ㅠ.ㅠ제가 머리가 나쁜걸까요 내용이 정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ㅠ.ㅠ
이해 가지 않으시는게 당연해요 저도 써놓고 이해가 안가는 글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