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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남은 이야기 스크랩 봄 이야기와 소프트 타코
권종상 추천 0 조회 136 09.04.19 23:16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엔 흐리고, 오후부터 맑아지는 날씨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근길엔 재킷이라도 걸쳐야 하지만, 일단 낮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더워서 땀도 조금씩 송글송글 맺히곤 합니다. 저에겐 요즘이 그래도 제일 좋은 듯 합니다. 꽃그늘 아래를 걷는 재미가 참 좋기 때문입니다.

 

목련은 어느새 만개했고, 지금은 이미 낙화가 되어 땅을 덮기 시작합니다. 목련을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이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퇴색한 꽃이 너무나 안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목련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아닐 터입니다. 잎이 모두 살아나온 지금부터 그들에겐 진정한 새봄의 찬가가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어느 봄날 오후 시애틀 브로드웨이의 뒷길들을 걸어 일을 마친 우체부에게 집에 가는 길은 조금 심하다싶게 막혔습니다. 원래 금요일엔 이상하게 막히는데다 - 주말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 때문에 그러는지 - 브로드웨이에서 프리웨이로 진입하는 길도 공사중이어서 평소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배는 걸린 듯 합니다.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아내와 수다도 떨며, 우체부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금요일, 아이들이 한글학교 가는 날.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성당에 떨어뜨려 놓고 저는 다시 집으로 옵니다. 잠깐 앞마당에 나가 봅니다. 화단에 잡초들이 꽤 앉았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심어 놓은 튤립과 다른 화초들과 공생을 하면 그것도 괜찮을텐데, 문제는 이 잡풀들 때문에 화단이 망가지기 때문에 그것들을 쑥쑥 뽑았습니다. 솔직히 그들에게 조금 미안했습니다. 얘들도 어디선가 날아온 생명이고, 그 모진 생명력으로 인해 우리집 화단에까지 열심히 뿌리를 내렸을텐데, 그만 이렇게 쑥쑥 뽑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어쨌든, 튤립들은 그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기운에 색색깔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일 마치고 집에 왔다가, 다시 한글학교 마친 아이들을 데리러 나갑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프트 타코'를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부리토'라고 불리우는 멕시코 음식이 있습니다. 역시 멕시코 전병인 또띠야에 갖은 재료를 넣고 말아 낸 것인데, 우스운 것은 멕시코엔 '부리토'라고 불리우는 음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인들은 이를 그냥 '타코'라고 부르는데, 미국인들은 '타코'라고 할 때는 기름에 튀긴 옥수수 전병에 신선한 야채와 간 고기, 사워크림과 치즈를 넣은 음식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긴, 미국사람들만 가지고 뭐라고 할 것도 아닙니다. 저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생맥주집의 안주 중에서 먹을 만 한 것중에 '멕시칸 사라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멕시코'와는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요리입니다.  그리고 보니 '멕시칸 양념치킨'이란 것도 있었는데, 아무튼, 그때 우리나라에서 '멕시칸'이라는 이름 붙었던 것 치고 실제로 미국 와서 내가 접했던 멕시코 문화와 비슷하기라도 한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만들어주는 소프트 타코 역시 완전 멕시코식과는 거리가 멀군요. 원래는 여기에 잘게 썬 양상추와 갈은 멕시코 치즈, 그리고 과카몰리와 멕시코식 콩요리인 '리프라이드 빈'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멕시코 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내가 해 주시는데 어디에 토를 답니까. 일단 맛있게 먹는 것이... 음, 정말 맛있군요. 하하. 한 개 더 싸달라고 했다가 "어디 이 밤에 그렇게 많이 먹으려 하는 거예요!" 라는 소리를 듣고 깨갱 합니다. 내일 아침엔 네 개 싸 먹어야지... 하면서. (으윽. 실제로 오늘 아침, 네 개까지는 아니지만 세 개나 싸 먹었더니 배불러서... 허걱.)

 

아무리 야밤이라 하여도, 아내는 결국 내가 와인 한 병 따는 것을 못 말리고 맙니다. 아니면 이런 걸 만들지 말던가. 하하... 코스트코에서 요즘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인데, 이름은 틴 루프이니... 아마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같은 데서 영감을 받은 모양입니다. 레이블이 참 모던하군요. 가격도 나쁘지 않습니다. 병당 $7.99 이니, 편한 가격에 사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요즘 코스트코가 이정도 선에서 구할 수 있는 좋은 와인들을 다량 입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아졌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과거같으면 언제나 꽉꽉 차 있었을 수입와인, 최고급와인 코너의 한 구석이 살살 비워지고, 그 자리를 그다지 튀지 않는 평범한 와인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이들 안에 불었던 그 와인바람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비싼' 와인들을 소화시킬 만큼 저변이 튼튼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저렴한 와인이라도 '맛난 것'을 먹고자 하는, 그런 프래그마티즘이 섞인 것 같은 것도 보입니다.

 

어쨌든, 코스트코의 이 '저렴한 와인 찾아 선보이기' 작전은 나름 성공입니다. 이 와인도 그렇고, 지난번에 같은 가격에 출시됐던 또르마레스까도 그렇고, 엄청 어필했고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당연 저는 또르마레스까에 더 점수를 주고 싶군요. 이게 같은 가격이긴 해도 말이죠. 캘리포니아 특유의 화려함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깊이가 약간만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긴 8달러짜리 와인에서 너무 바라면 욕 먹지요. 편안하게 이런 음식과 맞추긴 괜찮다는 것만 해도 고마울 일입니다.

 

자, 우체부는 이제 하루 일을 다시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중입니다. 넘들 다 직장 없어진다고 고민들인데, 이 우체부는 미안하게도 어떻게 놀아야 잘 논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고민하고 있군요. 하긴 놀 시간도 없습니다. 집안에 밀린 일들 정리하다 보면 금방 아내와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아, 예. 다음 주말에 며칠간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올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요일 밤에 돌아와선 조금 헤맬 성 싶습니다.

 

당장 내일아침부터는 밀렸던 운동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밤엔 밀린 잠도 좀 푹 자고.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녀석이 도대체 커피는 왜 올려놓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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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20 02:29

    첫댓글 금방이라도 색이 묻어 날듯한 수채화 한 폭을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참 편한 글에서 나의 시간을 새삼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 09.04.20 09:31

    Igualmente... Muchas gracias, senoles. ^.^

  • 09.04.20 09:41

    잡초 형님, 어제 아사도 구워드실 때 제 생각 안 나시던가요? 전 적게 먹는다고 애를 쓰는데 자꾸 배가 불러... ㅜㅠ

  • 09.04.20 10:23

    고기 대신 삐스코 다 드시잖우...거대한 인격형성의 주범이 그 친구 아니였던가요?...영감 계셨으면 아마도 아이들이 맥주캔 건드리지 않았을 듯한데...아닌가요?~~~

  • 09.04.20 14:03

    잡초를 뽑아내면서도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사는 권형에게 다시금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요... ㅋㅋㅋ

  • 09.04.20 14:04

    아, 전 맥주랑 안 친하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주체 못하는 인격을 우야노...??? ㅜㅠ

  • 09.04.20 07:00

    능수 벗꽃이 정말 아름답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늘 좋은글에 감사..^^*

  • 09.04.20 09:32

    Buen dia, senora esse... Mucho gusto. ^^

  • 09.04.20 17:05

    부에노님은 거대한 태평양 바다를 배를 타고 누비시더니 이젠...거대한 육지를 그 어느 곳이든 거침없이 누비시는군요...저도 Mucho gusto.^^*

  • 09.04.20 09:35

    님의 글속에서 일에 대한 소중함과 삶의 여유로움이 보입니다...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 09.04.20 09:44

    아리아리 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저녁 무사히 광조우에 도착했습니다. 여긴 무척 후덥지근하네요. 아침에 호텔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나무가 울창하고 공기가 참 좋더군요. 근데 뭔 달팽이가 그리 크대... 나라가 크니까 별 희한한 게 다 있습니다. 주먹만하더라니까요... ㅎㅎㅎ

  • 09.04.20 10:54

    광주에 도착하셨스면 호텔 전화번호 알려 주세요...저녁에 시간날때 전화드릴께요...이달엔 부에노님 땜시 전화비가 좀 나오겠네요...일 잘보시구요...잘 아시겠지만 중국음식 맛있다고 이것저것 막 드시면 안돼요...물은 꼭 사드셔야합니다...물론 세미님이 보디가드를 잘 하시겠지만...건강하게 일 잘보시길...

  • 09.04.20 13:57

    제가 전화드릴게요. 공항에서 산 전화카드도 그대로 있는데... 저녁에 하면 되나요? ^^

  • 09.04.20 09:39

    히히히~ 이제 한글 쓰기가 되네... 여기선 조선어... ㅋ 반갑습니다, 친구들...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 멋지게 사시는 님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우리 회원님들 늘 기분 좋은 날 되세요. ^.^

  • 09.04.20 10:40

    사진 찍는 솜씨들이 모두다 프로급들이시네...참~...사라진 식욕도 다시 돌아올거라는...^0^

  • 09.04.20 16:59

    짱짱이님...혹시 아버님 성함이 짱구..?

  • 09.04.20 17:10

    허걱~우찌 저의 선친의 함자를...ㅜㅜ...독토르 짱구...맞습니다,맞고요...한때,인기짱~이었었죠...ㅋㅋㅋ

  • 09.04.20 11:54

    아름다운 봄날에 어울리는 상큼한 샐러드... 보는 것 만으로도 정겨움이 넘쳐 나네요~

  • 09.04.20 12:31

    댓글로 봐선 부에노님이 쓰신 글인줄 알았다는~~ㅋㅋ

  • 09.04.20 13:54

    푸하하~ 가끔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는 재미도 심심치 않죠. ^.^

  • 09.04.20 13:30

    함석지붕이라면 부에노님도 익숙한 지붕인데.... 술맛이 어땟을런지.... 빗물의 알싸한 맛이 남아있을 듯 합니다.

  • 09.04.20 13:53

    술맛이야 다 좋은 거 아닌가요. 풉~~~ ^.^

  • 09.04.21 01:14

    음식이....타코가 아니고...까마로네 부리또가 아닌지요? 잘 보았습니다.....

  • 09.04.22 01:10

    ㅎㅎㅎ어디 아내의 요리에 토를 답니까?에서 애처가 느낌이 풀풀 납니다.....맛난 음식과 그윽한 와인...그리고 봄내음..............가을을 맞는 저로선 그저 아름다운 풍경입니다......................컴 배경화면에 꽃사진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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