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별세/ ‘고아·탈북민의 대모’
가르치고 나누는 삶 살아 온 주선애 명예교수
향년 98세의 일기로 별세 … 장례예식 22일 장로회신학대학교장과 영락교회장으로 진행
‘고아와 탈북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주선애(98)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 19일 별세했다. 한국 기독교 교육학 개척자이기도 했다.
1924년 평양 출신인 그는 미국 유학 후 숭실대와 장로회신학대에서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 평생을 보냈다. YWCA 전국연합회 회장, 예장통합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 등 여성 기독교 리더로 활동했다. 미국 유학 전 대구 신망고아원 원장으로 고아들을 돌봤고, 은퇴 후에는 자신의 집에서 탈북 청년들을 돌보며 대학 진학 등을 도왔다. 고(故) 황장엽씨와도 막역하게 지냈다. 생전에 재산은 장로회신학대와 은퇴 여선교사를 위한 새빛자매회 등에 기증했다. 장례예식은 22일 장로회신학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빈소 강동경희대병원, 발인 22일 8시.
후학 양성에 헌신… 주선애 교수 하나님 품에24년 평양서 출생 평양·남산신학교
모두 다닌 ‘한국 신학교육 역사’ 산증인 기독교교육학 개척·여성 운동에 기여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 19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주 교수는 우리나라 기독교 교육학을 개척한 인물이다. 서울여대와 숭실대 교수를 거쳐 장로회신학대에서 일생 후학을 길렀다. 대한YWCA전국연합회 회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 운동에도 기여했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의 집에서 탈북 청년들을 돌보며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줬으며 1997년 망명한 황장엽씨와도 오랜 친분을 나눴다.
1924년 평양에서 태어난 주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전신인 평양신학교와 남산신학교를 모두 다닌 한국 신학 교육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1989) 목련장(1994) 김마리아상(2010) 등을 수상했다.
일생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살았던 주 교수는 건강을 잃기 직전까지 후학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 것을 당부했다. 지난 4월 19일 장로회신학대 도서관·역사박물관 공동 주관으로 열린 ‘제7회 역사와의 대화’ 강사로 초청받은 자리에서 주 교수는 90분 동안 자신의 삶과 신앙, 학업을 소개했다. 이 강연은 주 교수가 대중 앞에서 긴 시간 동안 들려준 마지막 강의로 기록된다.
백수(白壽)를 앞둔 주 교수는 당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제가 앉아서 해도 될까요”라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는 신학의 길에 들어선 후배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들려 살라”고 강조했다.
주 교수가 이날 전한 메시지는 유언과도 같았다. 그는 “학자나 목사나 ‘행함과 가르침’이 나뉘어서는 안 되고 늘 나의 행동으로 상대를 가르치기 위해 애써야 한다”면서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데 이런 주님과 일생 동행하려면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 공부하고 기도할 때도 과연 나는 예수라는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인지 돌아보고 살피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경기도 포천 은성수도원을 비롯해 서울 강동구 소재 빌딩과 자택은 장로회신학대에 기증했다. 주 교수가 대학에 기증한 부동산은 통일 이후 ‘평양신학교’ 재건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이사장으로 있던 새빛자매회가 강원도 원주에 은퇴여선교사 안식관을 건립할 때도 사재 5억원을 전달했다. 3786㎡(약 1145평) 부지에 지은 안식관에는 23㎡(약 7평) 넓이의 숙소 26개가 마련돼 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은퇴 여성 선교사들의 보금자리는 주 교수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장례는 장로회신학대·영락교회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2일이며 장례예식은 장로회신학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영락동산이다.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생애
- 1924년 2월 평양 출생
- 1926년(3세) 7월 - 부친 주기남, 폐결핵으로 소천
- 부친은 폐결핵으로 요양하기 전 평안남도 대동군 추빈리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
- 부친의 유언 : "이 세상은 잠깐이라오. 내가 죽더라도 선애를 잘 키워 주오. 선애는 딸이지만 꼭 기독교 선생이 되도록 길러 주오.”
- 당시 모친(변정숙)은 21세였고, 이후 고무신 공장을 다니며 주선애 교수를 양육함.
1975년, 모친 고희(70세)를 맞아 기념 사진을 찍은 주선애 교수(52세)
- 1941년(18세) - 평양 정의여고 졸업
- 최기호 목사(당시 평양신학교 전도사 신분)와 결혼
- 최기호 목사, 평양 동광교회로 임직
- 주선애, 황해도 장연군에서 산파 자격증 따고 무료 의료 봉사
- 1946년(23세) - 평양신학교 여자신학부 입학
- 1948년(25세) - 월남 후 마포 동막교회에 거처 마련
- 경북 영덕 영해교회에서 최기호 목사 청빙
- 1949년(26세) 가을 - 최기호 목사 새벽기도 후 쓰러져 소천
- 평양 동광교회 임직 당시 무허가 집회를 이유로 옥고를 치른 후유증
- 1950년(27세) 5월 - 장로회신학교 졸업(3회)
- 부산 부전교회 사역
- 대구 신망원 고아원 원장
- 대구 고등성경학교(현 영남신학대) 여자기숙사 사감
- 1953년(30세) - 대구 영남대학교 졸업(영문과)
- 1956년(33세) - 미국 뉴욕성서대학교 유학(기독교교육학, 장학생)
뉴욕성서대학교 캠퍼스에서 장학생 담당인 베티 파킨슨 부부와 함께
- 1958년(35세) 8월 - 귀국 후 숭실대 기독교교육학 개설(국내 최초) 및 초대 학과장 취임
- 1959년(36세) -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 주최(국내 최초)
- 1963년(40세) - 장로회신학대 여전도사 교육과정 개설(국내 최초)
- 1966년(43세) - 김명식 장로(53세, 영락교회)와 재혼(슬하 1남 1녀)
- 1976년(53세) - 장신대 이상양 전도사 등과 함께 마포구 망원동 뚝방촌 빈민사역
빈민사역을 주도했던 이상양 전도사(왼쪽에서 세번째) 및 영락교회 백합회 회원들과 함께
- 1976년(53세) - 하용조 전도사(전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연예인 전도 사역 지원
- 1979년(56세) -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장
- 1976년(56세) - '장로교여성사' 저술
- 1983년(60세) - 운전면허 취득
- 1986년(63세) 4월 - 여교역자 안식관 준공
- 사역 계기 : "북한에서 넘어온 내 또래 여전도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서 교회 일을 못 하게 됐다. 갈 곳을 찾다가 기도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후 몸이 심하게 부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병문안 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며칠을 미루던 사이 그가 하나님 나라로 떠났다. 부모도 자식도 없을 텐데 혼자 앓다가 생을 마친 그 전도사를 생각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평생 고생하면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여전도사들에게 나는 빚을 지고 사는 것 같았다. 여교역자 ‘노후대책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 한경직 목사의 준공예배 축사 : "한국교회를 부흥, 성장시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수고한 사람들이 여교역자들인데 그동안 한국교회는 대접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축복하셔서 여교역자들과 여러 성도가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줘서 안식관 준공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 1989년(66세) - 장신대 정년 퇴임
- 2002년(79세) - 망명한 북한 황장엽 노동당 비서를 만나게 되어 전도하면서 친구가 됨
- 2004년(81세) - 탈북자를 위한 '자유북한방송국' 개국 지원
- 2005년(82세) - 탈북자종합회관 개관
- 2005년(82세) - 남편 김명식 장로 소천(향년 92세)
- 2007년(85세) - 주선애 교수의 장신대 제자였던 김동호 목사가 탈북자의 사회 적응을 돕는 사회적 기업 '열매나눔재단'에 200억 원 출연
- 2010년(87세) 7월 - 영락교회 내에 탈북자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남북평화신학연구소를 설립
- 2021년(98세) 11월 - 해외독신여선교사 은퇴 안식관 건립
- "여성선교사들은 복음전파를 위해 결혼 생각도 하지 않고 미지의 나라로 주님 의지해 많은 사람들을 선교했는데 평생 일하고 노쇠해져 고국에 오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집값은 비싸져 거주할 곳이 없어 마음이 아파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이곳에서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님들이 편히 쉬시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생명력 있는 선교사들의 훈련지, 복음 통일과 세계 선교를 위한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2019년 은퇴 여선교사 안식관 부지 마련 감사예배 당시 주선애 명예교수
- 2022년(99세) 6월 19일 소천(만 98세)
주선애 명예교수는 사재를 털어 경기도 포천의 은성수도원을 인수, 장신대에 경건훈련원으로 기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재산을 모두 학교(장신대)에 기증했습니다.
고아와 탈북민의 대모라 불리우는 주선애 교수. 그는 100년의 삶의 천 년처럼 살다 갔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라오. 내가 죽더라도 선애를 잘 키워 주오. 선애는 딸이지만 꼭 기독교 선생이 되도록 길러 주오.” 라는 유언을 통해 주선애 교수의 한 평생에 큰 영향을 준 아버지를 이제 천국에서 만나 기쁨과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