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왜 하는가!
리투아니아 선원에서 법문이 끝나고, 한 제자가 숭산 큰스님께 질문을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모기가 팔에 앉으면 쳐서 죽이게 됩니다.
계획했거나 생각하지 않았어도 그냥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이런 행동으로 인해 생명을 죽이게 되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숭산 큰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래 아주 중요한 문제야, 행동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어.
하나는 생각이 일어난 행동, 그러니까 유념의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 이전의 행동, 즉 무념의 행동인데 반사적 행동이라고도 해.
지금 운전하고 있다고 쳐보자고, 누군가가 네 차 바로 앞으로 갑자기 튀어나왔어.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이런! 치면 안 되는데! 혹은 멍청한 놈, 왜 이런 식으로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거야?’
하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차에 치이게 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차에 치여 죽게 된다고. 이걸 생각이 일어난 행동이라고 해.
이런 행동은 흔적이나 결과를 남겨. 일종의 잔존(殘存)하는 업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누군가가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을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겠지.
지각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나. 마치 거울과 같아.
거울 앞에 빨간 공을 갖다 대면 빨간 공을 비추고 흰 공을 대면 흰 공을 비추지.
거기에는 공간도 생각도 집착도 없어.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이야.
이런 행동을 반사적 행동, 다시 말해 비추는 행동이라고 해.
오직 할 뿐이라고. 비추는 행동에는 내 생각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선 거야.
그러나 비추는 행동에도 타인을 돕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어.
…
거울에 물건을 갖다 대면 거울은 그대로 비춰.
거울 앞에 있는 물건을 치우면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아.
거울은 아무것도 붙들지 않아.
이걸 ‘비추는 마음’이라고 해. 생각을 따르지 않으니까 업을 만들지 않지.
‘하늘은 푸르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지.
‘물은 흐른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이 역시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야.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름일 뿐이야.
착한 행동을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쁜 행동을 하면 지옥에 가.
그러나 찰라 찰나 맑음 마음을 지니면
올바른 행동만이 나타나서 천당과 지옥에 걸리지 않게 돼.
이것은 생사를 초월하고 일체중생만을 위하는 보살행이야.
제일 중요한 점은 ‘왜 하는가’야.
자신을 위해서인가, 일체중생을 위해서인가?
그 답을 알면 어떤 행동도 문제 되지 않아.
아주 중요한 문제야. 이것이 바로 ‘선 수행’이고 ‘선의 방향’이야.
- 숭산 행원 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