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신임투표 선교지에서 장기간 출석하던 교회는 중국산동성칭다오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신자들이 세운 한인교회이다. 기독교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국가이고 앞으로의 전망을 헤아리지 못했던 초창기의 교회는 장로들이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했다고 하였다.
신자들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면서 처음에는 선교사들을 설교자로 초청하다가 담임목사를 청빙하게 되었다. 교회는 담임목사 청빙을 앞두고 거창한 규칙(자칭 교회헌법)을 제정하였다. 그 규정중에는 담임목사에 대한 조항에서 청빙된 담임목사를 2년마다 세례교인 이상의 등록된 신자들로 부터 재신임의 절차를 거치게 하였다.
친형님처럼 친하게 지내던 집사님으로 부터 들은 뒷이야기에 장로들은 1년마다 신임투표를 제안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수집사인 지인분이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주장해 2년마다 투표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하였다.
3대목사로 부임한 분이 리더십이 강력하였는데, 이분의 주장으로 처음에만 2년만에 신임을 거치고 통과된 경우는 4년마다 신임을 묻기로 개정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규정이 마치 중국내 한인교회들에게 일종의 모범사례로 소개가 되면서 많은 한인교회들이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승승장구하며 목회를 이끌던 담임목사는 15년을 목전에 두고 원로목사 규정을 위한 규칙개정을 하면서 분란이 발생했고 그렇게 1년을 싸우다가 홀연히 교회를 떠나야 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부임한 4대5대6대 목사들이었다. 지역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신자들의 사업체도 하나둘 정리하게 되고 대기업 소속의 주재원들도 점차 줄어들게 되니 당연히 교인들의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그야말로 여호와의 부리신 악령에게 휘둘리는 일들이 빈발하게 되었다.
문제는 내리 세명의 후임목사들이 재신임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신임을 못받았다는 것은 엄밀히 목회자 자신의 수신제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납하지 못하는 교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교회는 퇴보를 거듭하게 되고 천명이 넘게 출석하던 교회는 사분오열을 거치며 쪼그라들고 말았다. 참으로 지역사회에 덕이되지 못하고 근심만 끼치는 곯치덩이로 전락한 초라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하나님은 나를 재신임 해주실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여 주실터이니 라는 찬송가 가사를 생각하며 은혜를 누리게 된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만 살아가는 목회자는 날마다의삶이 재신임받는 평가일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