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사 50,4-7; 필리 2,6-11; 마태 26,14-27,66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3.4.2.; 이기우 신부
1. 전례의 흐름
성주간을 시작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복음은 성삼일 전례의 흐름을 압축해서 들려주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보내신 마지막 일주일의 기록입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까지만 해도 파스카 축제에 모인 군중은 죽은 라자로까지 살려내신 그분의 능력에 비추어 무언가 자신들이 바라던 정치적 역할을 하시지나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성대하게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군중이 기대하던 그 어떠한 정치적 역할도 하실 생각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장악하던 성전을 정화시키시거나 바리사이들과 율법 논쟁을 하시거나 군중에게 정의의 실천으로 열매맺는 사랑과 이 사랑으로 이룩하는 평화에 대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마르 11,12-14)로 가르치셨을 뿐입니다. 이로써 독립을 위해 민중이 봉기하도록 앞장을 서주시지나 않을까 하고 내심 바랐던 군중의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도 그 실망한 무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 공생활 활동을 모두 마치신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셔서 하신 그 활동을 당신 제자들이 계승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나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서로 섬김을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것이 그분이 남기신 공생활 최후의 메시지였습니다.
-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셨는데, 제자들이 잠든 가운데 공포와 번뇌에 휩싸여 피땀을 흘려가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마음의 준비를 하는 처절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곳으로 배신자 유다를 앞세워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온 무리들이 한밤중에 들이닥쳐서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셨습니다. 이 무리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체포조였습니다. 예수님 최후의 메시지에 대한 사두가이와 유다의 반응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한밤중에 소집된 유다 최고의회에서 아무런 증거나 제대로 된 증인도 없이 졸속으로 조작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사형 판결을 정해 놓고 시작된 재판이었고 율법 규정도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된 협잡의 결과였습니다. 당시 정치범에 대한 사형집행권이 없던 유다 의회는 날이 밝자마자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로 그분을 끌고 가서는, 총독의 권세를 빌려 그분의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두 번째 요식 재판을 벌였습니다. 총독 관저 앞마당에는 사두가이파와의 비밀협상으로 동원된 혁명당원들이 우연히 모여든 구경꾼으로 위장한 채 집합해 있었습니다. 그들 혁명당원들은 이미 폭력행위로 사형판결이 내려져 있던 자신들의 동료 바랍바를 구출하기 위해서 바랍바와 예수를 맞바꾸자는 비밀협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짜고 나머지 군중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폭동이라도 벌일 것 같이 사나워진 군중의 위세에 겁이 덜컥 난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성난 외침을 핑계로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 악인들의 소행들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묵묵히 침묵을 지키시며 순순히 감당하셨습니다. 모진 매도 맞으신 후에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께서는 골고타 언덕 정상에서 다른 두 죄수와 함께 못 박혀 숨지셨고 그 순간에 하늘과 땅에서 커다란 표징들이 일어났습니다.
2. 공의회 이후의 한국교회
마치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맞이할 때와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메시아 백성임을 드러낸 대형 행사들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습니다. 우선, 1981년에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들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에서 신자들이 모여 치룬 대형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같은 자리에서 ‘천주교 선교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시성식’도 열렸습니다. 이 행사를 뜻깊게 준비하기 위하여 1981년 말부터 4년 동안 전국에서 사목회의가 평신도와 수도자와 성직자 대의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려서 한국판 공의회를 치루었고, 한국교회가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메시아 백성으로서 거듭 나겠다는 다짐을 12개 의안에 걸쳐 표명하였습니다. 또한 1989년에는 ‘제44차 서울 세계 성체 대회’가 열렸습니다.
3. 요한 바오로 교황의 메시지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을 바티칸 대성전에서 거행해온 오랜 관례를 깨고 파격적으로 서울 여의도 광장을 방문하여 한국의 103위 순교복자를 시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한국교회가 한민족을 복음화시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에 재차 방한하여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4)를 주제로 전 세계에서 주교들과 언론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한반도의 평화를 부각시킨 것입니다.
조선 왕조와 유림들이 천주교를 박해한 이래, 식민통치와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빼앗긴 한반도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빼앗아 간 주변 강대국들보다 더 정의로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한민족이 한반도 평화 회복의 주도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나서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사 32,17; 사목헌장, 78항)라는 명제가 그러한 요청의 근거였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원인이 되어 빼앗긴 한반도 평화를 피해자인 한국교회가 나서서 회복하라는 복음적인 훈수이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98년에는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를 열고, 민족 복음화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나서줄 것을 교황권고 문헌 ‘아시아 교회’를 통해 강력하고도 간절하게 요청하였습니다.
4.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2014년에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124위 순교자 시복식이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교황은 아시아 복음화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를 이어 받아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을 주문하였습니다. 한민족에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와 같이 정의로운 행보로 평화를 회복하고자 나설 것을 촉구하였으나,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여러 메시지들의 방점은 교회 쇄신에 찍혀 있었습니다. 즉, 주교단에게는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로서 교회를 쇄신할 것을 주문하였고, 평신도들에게는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에 순교정신으로 투신함으로써 역시 교회를 쇄신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도 참석했던 1984년 전국 사목회의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한국판으로 옮겨와서 교회 쇄신과 민족 복음화 그리고 신앙 토착화를 다짐하고 12개 사목의안을 결의했던 바가 지난 40년 동안 전혀 실천하지 않았던 데 대한 쓴 소리였습니다. 마치 제 때에 열매 맺지 못하던 무화과나무와도 같았던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던 바를 연상시킵니다.
요컨대, 두 교황의 메시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려면 보편 교회의 여망에 따라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봉헌으로서 한국교회를 복음적으로 쇄신하라는 것이었고, 그리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복음화는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리라는 사목적인 훈수였습니다. 그 전제에는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근거로 깔려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또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여기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인류의 복음화, 특히 말씀의 본 고장인 아시아의 복음화이고 곁들여 받게 될 선물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복음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사목의안이 발간된 1984년 이후 사목회의에서 제안된 교회 쇄신 제안은 통합 의안집이 재발간된 2022년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교구간 전례와 사목지침 통합 작업만 이루어졌을 뿐 지지부진합니다. 이로써 한국천주교 주교단에서는 사목회의에서 제안된 교회 쇄신을 추진할 의지가 박약함을 알 수 있어서, 평신도들에 의한 밑바닥 교회 쇄신이 요청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것이 공의회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시의 현세적 메시아니즘과는 또 다른, 고난을 회피하는 메시아니즘의 현실입니다. 교회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은 교회 쇄신이란 외부의 위협이 크게 닥치거나 내부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쇄신 요구가 생겨나기 전에는 한 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의 교회 쇄신 의지가 생겨나야 하고, 대대적인 각성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 메시아 백성이 되도록 부름받은 한국 교회
메시아와 메시아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시켜 전하신 메시지를 옛 이스라엘 백성은 저버렸습니다. 새 이스라엘로 세워진 가톨릭교회도 지난 2천 년 역사를 통해 세상을 내려다보는 개선주의(凱旋主義)적 교회관과 유럽식 교회 모델을 옮겨 심으려던 부식(扶植)적 선교관을 추진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 못지않은 선교적 시행착오를 많이 저질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반성하면서 예언자들의 메시아 백성 예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천명하였습니다. 즉 고난받고 부활하는 메시아를 따르는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교회는 공의회가 폐막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렇다 할 메아리가 없는 가운데, 백년 박해를 이겨낸 한국 교회는 독보적인 활력을 보여주면서 보편교회의 여망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를 두 교황의 방한 메시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으로 부활하는 메시아와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을 따르는 메시아 백성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기껏 성대하게 환영해 놓고 불과 며칠 만에 배신한 옛 이스라엘의 죄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새 이스라엘로서 메시아 백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두 교황은 한국교회에 복음화와 이를 위한 교회쇄신이라는 메시지로 격려하면서 달리는 말에 채찍을 휘두른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부디 보편교회의 여망을 대변하는 두 교황의 메시지를 평신도들이 알아 듣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첫댓글 '호산나'란 뜻이 "지금 구원하소서" 라고 합니다.
자아의 노예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실 있는 유일한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기가 쉬운 것 같아도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가정, 교회, 사회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이 특히, 교회가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데 장벽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신부님께서 [평신도들의 교회 쇄신 의지가 생겨나야 하고, 대대적인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 같습니다.
관료화된 한국 교회 환경에서 자발적인 쇄신이 이루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는 그런 장애물을 상관치 않고 때가 되면 우리들 각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부활절을 앞둔 주님수난 성지주일에 조합원 회원 모두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메시지...’방에서 두 교황님의 메시지를 읽어 보시지요.
@이기우 2022년 6월 교황주일에 했던 강론을 이미 읽어 보아서 이 신부님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가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표현한 점이 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사제와 신자간의 의사소통면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시노달리타스(함께 걸어가는 여정)란 개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현장에서 사제의 의사대로 모든 일이 정해지다 보니 신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해서 교리적인 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만 조정해 주는 방식으로 신자들의 자율성을 더 보장하는 방식으로 사목회등의 사목활동을 운영하였으면 합니다.복음과 공동선 4강을 찾다가 3장 강의를 다시 들었는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신앙생활입문등의 귀중한 자료 정보를 놓치지 않아 기쁩니다. 이분이 평신도를 대상으로 책을 쓰셨더군요.
'복음화'와 '교회쇄신'. 대외적 활동 목표와 대내적 활동 목표. 아시아 복음화의 과정 속에서 민족의 복음화와 한반도 평화는 이뤄질 것이고 교회쇄신을 위한 평신도의 노력이 필요한 때. 주님수난성지 주일.. 예수님에 대한 환호와 수난의 역사 전과정을 돌이켜 볼때 다시금 묵상해야 할 지점. 오늘 날 우리는 환호 이후 예수님께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주난 수난 성지주일
강론
깊이있게 잘 들었습니다.
메시아를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리던 그들이 자신들의 뜻과 맞지않다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자태가 나의 행동이 아닌지 성찰해 봅니다.
2차공의회이후
1981년 조선교구 설정150년 기념신앙대회와
1984년 천주교200주년 기념신앙대회와 시성식
1989년 제44차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집전하신 기억의지킴이 희망의 지킴이란 주제로 124위 순교복자식도 뜻깊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4차례나 열린 한국에서의 미사는 아시아교회를 대표한 만한 위상을~~
주님께서 주시는 메세지를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야함을 느끼지만 물질화 된 교회의 안일한 모습도 안타까운 한부분입니다.
새롭게 쇄신 해 나가는 한반도의 교회가 다시 주님뜻에 맞갖은 아시아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도록 성주간에 깊이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분 찬미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입니다. 2백여 년 전의 상황에 비하면 현재의 평신도들은 훨씬 더 나은 여건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그 처신과 노선을 주목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