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니 붉은 전구등 밝게 비추는 포장마차 아래가 분주해진다.
PD가 되겠다고 스스로 굴을 파고 들어 앉아 나이만 먹어 가니
만나는 얼굴들도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부터는 같은 얼굴만 마주보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이 늘어간다.
이 아이는 처음 봤을 때 어찌나 생기있게 통통거리며 말을 하던지 신기하기만 했던 녀석인데,
지금은 내 앞에 앉아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에 놓인 반쯤 남은 소주잔만 물끄러미 내려 보고 있다.
그 옆에 놈은 쉴 새 없이 머리속의 기이한 생각의 모자이크들을 끄집어 내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녀석인데,
젓가락으로 우동 그릇만 멍하니 팅팅 거리다가 빈 내 잔을 보고 소주 병을 집어 든다.
온몸의 촉수를 뻗어 끊임없이 세상을 더듬어도 모자르건만
날씨가 쌀쌀해지면 벌써? 따땃해지면 올해는..
마치 일년에 서 너번 큰 햇살이 나는 날만 기다리는 기원없는 식물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옆 테이블에 젊은 또래들의 이야기가 조용한 이쪽으로 넘어 온다. 우리에겐 마치 신화같은 옛 이야기같았지만..
"요즘 면접보러 다니는게 일이 잖아. 면접비로 장사해도 되겠더라."
"형 잘 될거에요. 토익도 900넘고 학점도 좋잖아요. 전 1년 남았는데 벌써 걱정되요. 아 저기, 나 아는 선배 얼마 전에 공기업 합격했다고 하던데, 에이씨 그 형 만날 술먹고 놀기만 했는데..참.."
"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나 아는 형은 고시 준비하다가 심심해서 응응일보 기자 셤 봤는데 어이없게 붙었잖아."
"나 아는 언니도 스튜어디스 준비하다가 장난삼아 아나운서 셤 봤다 됐는데.."
"야 PD는 없냐? 그럼 나도 삼손 준비 때려치고 마봉춘 PD 시험 한 번 봐?"
낄낄낄...
낄낄낄...
맞다. 그런 설화들이 많았지.
왜 그렇게도 주위 사람들은 '운도 좋고 잘나가는' '아는'사람들이 많았던지.
차라리 나도 PD가 되리라 맘 먹기 보다 누군가의 '아는 사람'이 될 걸 그랬나.
그랬다면 벌써 어이없게도 그토록 원하고 빌었던 PD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앞에 앉아 있는 두 녀석은 적어도 그런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또 쌀쌀해지면 그냥 말 없이 소주 잔을 기울일 수 있으니까.
첫댓글 이런 경험으로 사람의 감동을 울리는 글을 쓰실 수 있으시니, 분명 기회가 올 것이고 멋진 작품을 만드는 PD가 되실겁니다.! 장난삼아 시험봐서 되는 PD가 되고 싶으시진 않으시죠?^^ 따끈한 우동국물만큼 따끈한 소식이 올 것입니다.! ^^
눈물이 핑 도네요 갑자기...왜그러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