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지내는 후배들 중에서 별명이 「안기부」란 후배가 있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냐 하면, 무슨 질문이든지 한번 물었다하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끊임없이 질문 꺼리를 만들어 내서
마치 뭔가 조사를 하듯이, 끝없이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그 녀석은 뭐든지 「완벽한」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떠한 반론이나 반증이 제기되더라도 불변하는 완벽한 뭔가를
갈구하는 것이다. 뭐든 한 번의 대답으론 만족할 수 없다.
당연히 학과도 그 녀석과 딱 어울리는 「철학과」다.
(역시 철학과는 「싸이코 집합소」다..^^)
그래서인지 사실 나 역시 그 녀석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받고 살아
왔다. 나 역시 그 녀석처럼 뭐든 자세히, 충분히, 알아보고 나서,
최종에 가서 결정을 짓는 그런 인간으로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런
영향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녀석과 알고 지낸지도 벌써 6년째다.
게다가 원래 나도 그런 경향이 좀 있었으니, 유유상종이라고 둘이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거리(로타리)에 편의점과 일반 수퍼 가게, 그리고 할인 마트,
이렇게 3개의 매점이 서로 마주보며 있었다. 맥주 한 캔 씩 서로 나누
어 마시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그 순간, 그 녀석은 밖으로 얼른
뛰쳐 나갔다. 그러면서 하는 나에게 하는 말....
『형은 여기서 이 맥주의 가격이 얼만지 알아봐요.
난 건너편 수퍼가게에서 얼마인지 알아볼테니....
휴대폰 문자로 알려줘요.』
헉~ 정말 대다한 녀석이다!!
그러니 왠만한 그 녀석의 질문에 완벽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하면,
항상 계속해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 기질이 좀 있다고 한다. 무슨 비싼 물건도 아닌, 과일
몇 개를 사려고 하더라도, 자동차를 몰고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며, 여기 저
기 상점에서 가격을 알아본 다음, 그 도시에서 제일 값싼 가게에 가서 산다
고 한다. 심지어 세탁소에 빨래를 맡겼다가 찾아갈 때는, 돋보기를 가져와서
세세하게 들여다 보고 제대로 세탁되었는지 세세하게 들여다 보며 확인을
한 뒤에 가져간다고 한다. 나도 좀 그런 경향이 있는 편인데, 아마 이 녀석
도 전생에 독일인이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 녀석과 함께 게임방에서 화상챗팅을 하다가, 나는
별로 소득(?)도 없고 해서, 심심한 마음에, 그 녀석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에, 그 녀석의 자리에 앉아서 잠시동안 모.사이트(명상관련)에 들어가 오쇼
사진이나 이것 저것 괜히 할 일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엔 오쇼의 피곤한(?)
모습이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 그리고 선그라스를 끼고 손을 번쩍 들고
흔드는 모습이나 손가락을 '브이(V)' 자로 해서 들고 있는 모습, 등등... 있었다.
그리고 게시판에는 누가 「산야신」이 어떻고 한참 논쟁조로 떠들어대는 장문
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또 잠시 후엔 크리슈나무르티 사진도 몇 장 둘러
보았다. 잠시후, 그 녀석이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나오는 걸 보고는, 나는 얼른
그 녀석이 아까부터 보던 게임 사이트로 돌려놓고, 재빨리 옆의 내 자리로 돌아
왔다. 그리곤 난 다시 화상챗팅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그 사이에,
이 문제의 사나이(?)가, 뭔가 눈치를 챘는지, 익스플로러를 뒤로(BACK) 해서,
내가 잠시 들어가 보았던 명상관련 사이트들을 쳐다 보고 있었다!!
흑...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야, 왜 이래? 너의 컴퓨터로 성인 사이트에 접속한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제발, 아무 말 좀 않했으면 좋겠다. 또 저걸로 무슨 질문을 하진 않겠지?」
난 자리에 앉아 다시 화상챗팅 사이트로 들어가 한참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후, 아니나 다를까, 《질문 넘버 원(No. 1)》이 그 녀석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형님!』
『엉? 왜?』
『산야산(∼山)이 뭡니까? 어디에 있는 산인데요?』 ^-^
홀~ 난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할지 갑자기 골치가 아팠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건 산야'산'이라 읽지 않고 산야'신'이라 읽으며
그것은 명상하는 사람, 구도자를 뜻한다느니... 그런 식의 얘길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에게 절대 그런 식의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끝도 없는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철학과
학생 특유의 온갖 관념적인 질문들 말이다... 생각만 해도 딱 머리가 아파온다.
마침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그 녀석이 실수로 산야'신'이라 읽지 않고 산야'산'
이라 읽어서 뭔가 도망갈 구멍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잠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아니 왜 갑자기 아무말도 못해요? 무슨 생각 하는거죠?』
난 순간적으로,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한번의 대답으로 더 이상
그 녀석에게서 어떤 질문도 튀어 나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그런 대답을 말이다!
『아... 그거...』
『옙...』
『그거... 산(山) 이름이다.』 ^-^
『아.. 그래요? 산 이름이 참 특이하군요. 어디에 있는 산인데요?』
『인도에 있는 산이다.』
ㅎㅎㅎㅎ 이렇게 해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한번의 대답으로 재수좋게(?)
지나갔다...
앗, 그런데, 이게 왠 일....그 녀석이 또 잠시후에 오쇼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더욱이 오쇼가 피곤한 모습이나 침대 위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사진이나 오쇼가 면도하는 모습, 그리고 손가락을 '브이(V)' 자로 해서
들고 서 있는 사진 등을 보고 있었다.
『형님!』
이제 그 녀석의 《질문 넘버 투(No. 2)》였다.
『아.. 또... 왜? 나 지금 한참 꼬시는중이야... 나중에 물어보면 안되?』
『아... 이것 한개만... 한개만...』
하여간 조금이라도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녀석이다...
『그래, 또 뭐얍?』
『여기...이 할배는... 누굽니까? 뭐 하는 사람인데요?』
『아... 그 사람....^^ (글쩍글쩍) 궁금하냐?』
『예... 어찌 보니, 꼭 무슨 사이비 종교 지도가 같기도 하고...
그런데 종교 지도자치곤 좀 이상하네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면도도 하고, 선그라스 끼고 손을 흔들기도 하고...』
난 또 순간적으로 한번의 대답으로 끝낼 뭔가를 얼른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번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 생각났다!
『아... 그 사람 말이냐?』
『옙...』
『영화배우다!』 *^^*
『예? 이렇게 팍 늙은 할아버지가요?』
『어... 그럼... 인도가 어떤 나라냐?
굉장히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냐?
인도에선 워낙 종교적인 영화를 많이 찍어...
그래서 그런 약간 종교 지도자 같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자주 나오지.』
『에이... 내가 보기엔 무슨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 같은데요?』
내 목에까지 「그래, 사실, 그 사람은 말이야... 알고 보면 오쇼 라즈니쉬라고
해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20세기의 노자로 불리우고...」 등등...
이런 얘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얘길 하게 되면, 난 한참 작업(?)중인 화상
쳇팅은 그만 두어야 되고, 그 녀석에게 밤새도록 질문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할수없이 헛소리(?)를 주절거려야만 할 수 밖에......
『야.. 야... 무슨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너의 말대로...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
는 사진을 다아 찍냐? 그리고 세상에 무슨 종교 지도자가 스타라도 되길래,
면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또 선그라스를 끼고 저렇게 무슨 팬들에게
답례라도 하듯이 손가락을 브이(V)자로 해서 흔들어대냐?
종교 지도자가 저렇게 가벼워서야... 원... 안그래???
넌 저런 유치한(?) 종교 지도자를 본 적이 있냐???
내 말을 믿으라니까... 저 할아버지는... 영화배우야! 영화배우...
단지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종교적인 나라라서, 저 사람이 주로 무슨 이상한
종교 지도자 배역을 자주 맡는다구...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제야, 그 녀석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아... 그렇군요... 역시 인도는 종교적인 나라...
그러니 영화도 그런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만드는 군여...^^
그리고 이 할배는 주로 그런 종교 지도자 역을 맡는군엽...^^
알겠습니다..』
『그럼, 그럼, 그렇구 말구...』
「휴~ 다행이다.」하고 맘 속으로 한 숨을 쉬고 이제 막 나의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그 녀석의 《질문 넘버 쓰리(No. 3)》가 튀어 나왔다.
아마도 그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었으리라.
『이 사람은 또 누군데요?』
보아하니...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진이었다.
『ㅎㅎㅎㅎ ^^ 그 사람?』
『옙...』
『그 사람은, 아까 앞에서 본 할배 영화배우가 찍는 영화에서... 주로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사람이지... ^^』
『아... 그렇군요...^^』
『아까 그 할배는 주로 무슨 종교의 교주 역을 맡고, 이 사람은 그 종교에서 총무 역이나
사무총창 역을 주로 하지.... 이제 이해하겠어? ^^ You Understand? ^^』
『잘 알겠습니다... 형님!』
그러곤 더 이상의 질문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고, 우린 아주 사이좋게(?) 게임방에서
놀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