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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와 손녀 이야기
일주일에 한 번 며느리는 손녀를 이끌고 우리집을 내방한다.
대개 목요일 저녁 7시 반경에 우리집 아파트 현관의 초인종이 울리면 나는 부리나케 달려나가
급히 문을 열면 손녀가 방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서 있고 뒤에는 며느리가 할아버지께 인사하라고
아이를 부드럽게 다그친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손녀를 번쩍 안고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하며
거실로 급히 들어서면 아이는 할아비더러 먼저 제 신발을 벗겨야 한다고 넌즈시 귀띰한다.
그러면 부랴부랴 나는 손녀의 신발을 벗기기 위해 현관으로 나왔다가 손녀를 안은 채로
다시 거실로 들어서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들과 생후 6개월 때의 손녀
그때는 사내아이처럼 씩씩한 개구장이 모습 그대로이다
작년 만4세가 된 손녀와 함께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3년 반만에 몰라보게 자랐다
집안일에 게으른 나도 이날 만은 스스로 집안 대청소를 한다. 집안 곳곳을 빗자루로 쓸고
스팀 청소기로 밀고나면 등어리가 가볍게 땀에 젖는다. 언젠가 온 집안을 뛰놀던 손녀의 발바닥이
까마귀 새끼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새까맣게 되자 아내가 나에게 핀잔을 준 이후부터
목요일 청소는 무조건 내가 하게 된 일과가 되었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제 손에 닿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장난감으로 여기며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흐트려놓던 아이가 어느새 자랐는지 지금은 한결 덜 어지러놓는다.
아이는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생물이다. 무엇이든 상대를 해주어야 덜 심심해 한다.
한참 놀다가도 유선방송에 나오는 채널50번의 '스폰지밥'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인터넷 <동요방>에 들어가 손녀의 애창곡을 틀어주어야한다.
손녀가 작년까지 애창하던 동요곡의 하나가 '악어떼'였다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 나면은
악어떼가 나올라~
악어떼!~
이 노래가 나오면 인터넷의 에니메이션 화면 가득히 악어떼가 큰 아가리를 쩍 벌리며 끼룩~끼룩하는
효과음과 함께 전면에 접근해 오곤 한다. 이때 할아비더러 처음에는 자기와 같이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시늉을 하라 하다가도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할아비가 혹 악어떼에게 잡혀먹히기라도 하는 듯 자지러지며 악어떼를 피해
빨리 방바닥에 납작 업드려 가만 있으라한다. 아무리 손녀의 눈높이에 맞춘다해도
큰 고역임이 분명하다. 어찌 감히 그들 상상의 세계에 온전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으랴!...
2005년 4월 아들네가 먼저 파주시 교하지구로 이사한 뒤 곧이어 열흘 간격으로
우리도 바로 옆 단지로 이사하였다. 고양시 백석동에서 작은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은 출퇴근 때문에 서울 봉천동에 있는 아파트를 세주고 직장 가까이에 집을 얻은 것이다.
서울에서 살던 우리 내외는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자 일산 주엽동 강선마을에 이사했다가
6개월여만에 파주시 교하 아들네 바로 이웃으로 뒤따라 다시 이사한 것이다.
이때 손녀가 생후 15개월 무렵이었다. 이후 2년 가까이 손녀와 가깝게 살며 교감을 쌓게 된 것이다
.
손녀가 옹알이 하는 때를 약간 지나 온갖 어휘를 동원해가며 자기 의사를 웬만하게
막힘없이 표현하기까지의 경이로운 성장의 시기를 같이 한 것이다.
"하부지, 저게 뭐야?"
"응?.. 개구리 울음소리야"
"개구리 울음소리?..."
논에 물이 그득 들어 차고 개구리가 온 사방에서 개골개골 합창하듯 울어대던 3,4년 전 여름인가
논길을 따라 손녀를 등에 업고 밤에 제 집까지 바래다 줄 때 인듯 싶다. 온갖 단어를 또렷하게
발음하던 아이가 유독 '할아버지'만은 '하부지'라고 말하곤 하였다.
제 어미가 그때마다 "할아버지!"라고 교정해주어도 언제나 "하부지!"라고 되받곤 하였다.
보통 밤 열한 시가 지나 기다리던 제 아비가 퇴근이 늦어지면 밤길을 염려한 나는
며느리와 손녀를 제 집까지 매번 바래다 주었다. 우리 집과 아들네는 큰 논으로 서로 떨어져있다.
우리 아파트단지 정문에서 큰 찻길을 건너 아들네 아파트단지 후문으로 연결되는
이 논둑길은 좁은 논배미 길이었던 것을 폭을 넓혀 직선의 논둑길로 만들고 포장하여
양쪽 입구에 가로등도 설치하여 밤에도 환하도록 밝혀놓았다.
아들의 퇴근 시간이 늦다보니 그들의 생활 리듬까지 여기에 맞추워져
오후 늦게 손녀를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재운 후 다시 깨면 거의 자정 넘어까지
자지않기 일수였다. 지금은 낮잠도 없어졌다.
우리집 방문하는 날 중에 아들의 퇴근이 이른 날은 같이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고나면
밤 열한 시 반 무렵까지 놀다가 제 식구를 차에 태우고 큰 찻길을
한 바퀴 삥 돌아 저들 아파트정문을 통해 귀가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시사철 두 모녀를 밤 늦게 제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논둑길을 가로지르다가 손녀가 조금 자란 다음에는
내가 손녀를 등에 업고 앞서 가면 며느리는 뒤따른다. 아이가 어느새 더욱 자라
낮은 비탈길만 업은채로 내려가 평지인 논둑길 입구에 이르면 제 힘으로 걷겠다고
할아비더러 빨리 내려놓으라 독촉하여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곧장 종종걸음으로 논둑길을 뒤뚱뒤뚱 앞서 달려가곤 하였다.
처음 한 동안 손녀를 업을라치면 말타기 하듯 상체를 잔뜩 뒤로 빼 업기가 어려워,
"엎드려요~ 찰싹, 할아버지 등에..."
라고하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윽고 할아비 등에 찰싹 엎드리며
제 머리를 옆으로 고이고는 양팔은 할아비의 겨드랑이를 안고는하였다.
한 마리 작은 새처럼 몸의 온기와 가슴의 콩닥거림이 따뜻하게 등으로 전해온다.
손녀를 업고 천천히 논둑길을 가로지르면 하늘에 떠 있는 많은 별들과
무성한 풀잎에서 나는 듯한 바스락거림이 서늘한 밤의 미풍에 어울려 삼라만상이
순간 그 따뜻함에 내려앉아 바로 우주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하였다.
우리집에서 손녀가 가지고 노는 물건들은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장난감으로 변한다.
병뚜껑, 프라스틱 약병, 작은 돌맹이, 고무줄, 자, 지우개, 연필, 화장품 빈병, 머플러 등등
집안 구석구석 손길이 닿는 것은 거의 전부이다. 이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을 아예
작은 통에 담아 놓았다가 손녀가 올 때마다 어김없이 대령하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장남감의 온전함이나 양의 많고 적음이 별 문제가 되지않는다.
무엇이든 아이 손에 닿으면 장난감으로 둔갑하고 온 집중력으로 몰두하여 가지고 논다.
잡동사니를 담아둔 통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면 온 거실에 펼쳐놓고 소꿉장난이 시작된다.
혼자 중얼중얼 놀다가도 할아비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마루바닥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고
그 안으로 들어오라하여 신랑각시 놀이의 상대가 될때도 있다.
신랑이 된 할아비는 손녀각시가 시키는대로 밥을 먹고 반찬도 먹는 시늉을 해야만한다.
병원놀이 할 때면 할아비를 침대에 눕히고는 프라스틱 같은 것으로 주사를 준답시고
엉덩이를 쿡쿡 찔러대기도하고 제 차례가 되면
팔뚝이나 엉덩이를 디밀며 주사놓으라고 다그친다.
크레용과 스케치북을 내려놓으면 그림그리기가 시작된다.
한 가운데 자기 모습부터 먼저 그리고 그 옆에 엄마, 아빠와 간혹가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조그맣게 그려넣는다. 처음에 올챙이처럼 큰 머리통과 작은 사지를 그리다가
점차 제대로 된 형태의 뎃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치 수묵으로 문인화를 그리듯 순식간에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놀다가 갑자기 "오줌!..."하고 소리치면 얼른 바지를 벗기고 화장실로 데려가야 하는데
재작년까지만해도 아이의 배가 볼록한대다 아이가 금방 자랐는지 옷이 그새 작아지고
몸에 착 달라붙어 지퍼나 단추가 어디에 있는지 손에 금방 잡히지 않아 돋
보기를 찾아 급히 집안을 뒤진다. 아이가 놀다가 엉덩이를 꼬며
몸 신호를 하기전에 미리 미리 화장실로 데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갑자기 "똥 마려!..." 하는 날이면 할아비는 혼비백산, 아이의 겨드랑이를
급히 안기는하지만 단추나 지퍼를 당장 찾지못하고 돋보기를 찾아
거실이나 서재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음이 다급해지고 그만 당황하여,
"얘!~, 어미야!..."하고 주방에 있는 며느리를 고함쳐 부른다.
며느리는 별 일 아닌듯 유유히 익숙한 손으로 아이의 옷을 벗기고
화장실 변기에 앉히는 것이다.
[달님 안녕], [사과가 쿵!],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엄마가 사라졌어요],
[구름빵] 따위의 그림책을 미리 사 놓았다가 손녀가 올때마다 한 권씩 쥐어주었다.
아이에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감지할 수 있는 그림책을 처음에는 골라 샀다.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 줄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그림책을 기준으로 하였다.
지문이 짧고 문장은 단순하여야하고 그림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책을 고른다.
작년 설날 (2008.02.07) 세뱃돈 타러온 손주녀석들 - 왼쪽 외손주 쌍둥이 남매와 오른쪽 친손녀
(할아버지의 서재는 전용 아지트로 이들이 점령하는 동안은 어른들의 출입을 금한다!..)
나에게는 외손주도 둘 있다. 쌍둥이 남매들로 올해 열 한살들인데
친손녀보다 다섯살 위다. 이제 곧 4학년이 된다. 외손주들에게도 지난 육칠년 동안
그림책이나 아동용 비디오, 동화책들을 꾸준히 사다주었다. 큰 딸네집에 가면 아이들 방의
양 쪽 벽면 책꽂이에 책들로 가득하다. 거의 대부분을 이 할아비가
긴 세월 한권 한권 정성드레 골라 사다주었던 책들이다.
이제는 외손주들이 책읽기가 몸에 밴 습관이 되어있어 무엇보다도 뿌듯하다.
시내 대형서점에 수시로 나가 사회과학 코너에서는 내가 읽을 책을,
아동도서 코너에서는 외손주들과 손녀를 위한 책을
선별하여 고르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 되었다.
[핑구]라는 비디오물을 손녀는 한 때 너무 좋아하였다.
[배고픈 애벌레]나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였다.
티브이에서는 이른바 일본 '망가'가 넘쳐난다. 포켓몬류의 규격화된 그림체에
너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하여 아동비디오는 될수록 프랑스나 영국 또는 카나다에서
제작한 종류를 아이에게 골라 주려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하로의 행방불명]
그리고 [반딧불의 묘]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본 비디오물은 될수록 피한다
(예외도 있다. [아따맘마]는 이 할아비에게도 매우 재미있다!).
미국의 디즈니 만화에도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외손주들에게도 [잃어버린 장난감][나무를 심은 사람][피리부는 소년]따위의
비디오물을 골라 사주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전셋값이 폭등하게되자 주인이 갑자기 집을 내놓으라는 통에
아들네는 재작년 2월경인가 이사를 가게되었다. 2년을 채 채우지못하고
20여개월만에 이사한 것이다. 교하택지지구라는 곳인데 우리가 살았던
교하입구에서 버스로 서너 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사간 후에도 목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제 어미가 아이를 데려오건만
왠지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밤 귀갓길에 논둑길을 따라 손녀와 같이했던
시간도 끝나버렸다. 이사간 이후에는 버스정류장까지만 두 모녀를 전송하게되었다.
아들네가 이사하고 8개월여만인 재작년 11월 우리 내외도 새로 분양한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 일산2지구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제 애들이 우리집을 오고가려면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와야한다.
작년 다섯 살이 된 손녀는 3월 초 동네유치원에 입학하였고 이제 또 일년이 지났다.
이 얘기를 마치려니 재작년 봄무렵 때인가의 일이 생각난다.
아들네가 이사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며느리와 함께 시내 쪽에 볼 일이 있어
우리 아파트단지 앞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부리나케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어느새 두 모녀가 나란히 버스정류장
대기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멀리에서도 눈에 띄었다.
할아비가 다가가는 모습을 큰 길 건너편에서 어느 순간 보았는지
손녀가 앉아있던 정류장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양팔을 있는대로 한 껏 위로 뻗어 흔들며,
"할아버지 빨리 와! 할아버지 빨리!~"
라고 외치며 깡충깡충 뛰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아이가 이윽고 횡단 보도 쪽으로 급히 달려가자 제 어미가 놀라 황급히 제지한다.
녹색신호가 떨어진 후에야 할아비가 얼른 횡단보도를 건너 손녀를 번쩍 안는다.
(손녀가 만 4살 때인 작년에 쓴 글이라 시점(時點)이 글의 내용과 잘 맞지않아
현재 시점으로 일부 고쳤지만 그래도 어딘가 어색한 데가 있는 듯하다.)
이제 만5살이 된 손녀와 함께(2009.01.09)
첫댓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습니다. 무럭 무럭 자라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손주를 향한 사랑은 누구든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손자 손녀사랑이 대단하시네요. 아이들 느낌대로 좋아 하잔아요.사랑을 듬북받은 아이들은 정도많고 사랑을 줄수있는 어른으로 흉륭이 자랄거예요.건강하세요.
샤방샤방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더욱 감사하고요~~
눈에넣어도 아프지않겠어요 지금의행복 영원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할아버지십니다. 손자 손녀들이 커도 어릴때의 추억은 잊히지 않을겁니다.
손녀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손녀가 너무 이쁘구요 할아버지 사랑도 너무 넉넉하구요~~영화의 한 장면들 같습니다..
바다향님,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동향 분이시고 같은 용띠이시니 더욱 친밀감을 느낍니다.
멋지신 할아버지~ 아기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 나면은 악어떼가 나올라~ 악어떼!~
누구든 손주손녀 사랑은 똑 같으리라 봅니다~~ 후리지아님, 건재하시지요?
자기 자식 키울 땐 몰랐던 사랑은 손주가 태어나면 어디서 그런 사랑이 샘솟 듯 쏟아지는지요. 월전리자님의 손주 사랑도 대단하십니다. 저도 눈높이를 낮춰서 첫 손녀와 월드컵 축구 경기 때 "숫! 꼴인~" 하고 외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복하고 행복하신 님 건강하세요.
따오기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