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매일 새벽3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150인분 식사를 준비하고 사도직 수행으로 쉴 틈없이 바쁜 평소 일상도 기쁘고 즐겁지만, 여기 고요하고 한적한 외딴 곳에서 조용하게 대침묵 기도만하는 연피정 이 시간도 너무 행복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성경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 보여주면서 동시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거룩하고 존엄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와 엄청난 탈란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날 최첨단 스마트 IT 기술에 이어 AI 기술에 이르기까지 엄청납니다. 여기서 인간이 '황제의 것'만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신 주 하느님과 '하느님의 것'을 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 혼란에 빠집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창세 3-7장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죄악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어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맡겨진 풍요롭고 아름다운 포도밭이요, 그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포도밭을 가꾸는 소작인임을 상기식켜 주었습니다.
욥기를 보면,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탤런트요 선물임을 깨닫게 합니다.
욥기는 인간 이성에 따른 질서인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원칙이 현실에서 들어맞지 않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인간 이성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영역이 있음을 욥기는 보여줍니다. 인간은 계시를 통해서 이 하느님의 영역, 신비를 알고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는 숨겨진 이 하느님의 영역을 하느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계시의 원천이 하느님의 말씀, 곧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 계시의 절정,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마르타처럼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르타처럼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합니다.(루카 10,38-42 참조) 하지만 그 분주함 속에서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활동 안에서의 관상'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공부하고 봉사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신구약 성경 한 장씩 읽고 암기하고 묵상하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였습니다. 사제서품 후에는 바로 4년간 로마에서 집중적으로 성경, 하느님 말씀을 공부하며 봉사하는 마르타의 바쁜 삶 가운데서도 마리아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나에게 마르타와 마리아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활동 안에서의 관상'(contemplation in action)의 삶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갖가지 시중드는 일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활동 안에서의 관상'은 '쉬지않고 일하는 사도'라는 별칭을 부여받은 우리 수도회의 창설자, 글라렛 성인의 삶이었습니다. 나는 글라렛 한국 공동체 고마운 첫 선교사들을 통해 이것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