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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제천 제1경 의림지의 사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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堤川(제천) 八경 중 第1景(제1경) 義林池(의림지)~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유랑자는 정확히 08년 10월 그러고
보니까 16년여 만에 제천 의림지를 다시 찾았다. 물론 당시와 지금은 많이 변해 있었다. 당시 유랑자의 정서에 딱
맞아 떨어졌던 낭만 어린 의림카페는 오간데 없고 그 자리에 파크 랜드와 역사 박물관등이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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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林池(의림지)는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
서’지방 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호서지방이라는 별칭은 충청북도 제천시의 관개용 저수지인 의림호의 서쪽
에 있는 지방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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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의림지 한쪽에는 인공폭포가 있고, 인공폭포 가까이에 실제 유리 전망대 와 용추폭포가 있다. 용추폭포는 항
상 물이 흐르지는 않고 비가 오거나, 물이 넘처날때만 흐르고 인공 폭포는 인공펌프로 물을 끌어 올릴 때만 볼 수
으며 인공 폭포는 하절기에만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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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와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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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의 겨울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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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충청도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에는 충청북도를 중원도, 충청남도를 하남도라 했고, 1106
년(예종1)에 중원도와 하청도를 통합하여 양광충청주도라고 했다. 1314년(충숙왕1)에 다시 양광도에 통합했다
가 1356년(공민왕 5)에 비로소 충청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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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頭山(용두산.873m) 아래에 자리 잡은 義林池(의림지)는 그만큼 오래된 역사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아울
러 제천의 근본이자 당시부터 유명한 저수지였음을 우리는 제천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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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저수지로 옛날 임금님의 수라상에만 올렸다는 순채가 자생 하
였고 겨울철에 잡히는 공어(빙어)가 명물로 알려져 있으며 호수와 어우러진 노송 4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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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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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의 원천이 된 용두산은 산세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 명명된 이름으로 제천의 鎭山(진산)이다. 산기슭에
서 흘러내린 물이 현존 最古(최고) 저수지 의림지를 이루고 용추폭포를 지나 청전 뜰에 도착해 벼들의 양분이 된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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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둘레 1.8km, 만수 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 수원지로 289.4 정보의 농지를 관
개한다. 당시 제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한시대 3대 수리시
설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의림지는 제천 10경 중 제1경이며 명승 2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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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의림지 벚꽃 스퀘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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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
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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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 산에서 흘러내리
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도 하며,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
하여 연못 주의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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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섬:의림지 안에 인공섬이 있다. 섬 주변에 순채라는 수생식물이 많이 자라 순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순채는
임금님께 진상이 되었던 특산물이었다. 조선 숙종 때 제천 현감 홍종우(1661-1726)가 의림지를 보축할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봉지(1649-1675)가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72년 대홍수로 인해 안타깝게도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자생하지 않아 복원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자라나지 않고. 현재 순주섬은 철새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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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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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조선 세조 때 鄭麟趾(정인지)가 體察使(체찰사)로 이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
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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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體察使(체찰사란)=조선 시대, 외적이 침입하거나 내란이 일어나는 등의 비상시에 임명되어 군대를 거느
려 지휘하던 벼슬).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
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
폭포 등이 어우러져 의림지만의 풍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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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정(于勒亭)과 우륵대: 2007년에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것을 기념하여 지은 정자다. 조선시
대 기록을 보면 심지어 우륵이 의림지를 축조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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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公魚(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 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했다. 오늘날에 와서 관심 있는 이야기는 52년 전인 1972년에 홍수 때, 제천 시가지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일부 구간의 둑을 터트린 적이 있었으나 이듬해 복구되었다. 이때 호수 지하에서 큰 샘이 발견
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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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림지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
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샘)"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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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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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위에 솥밭공원, 국궁장, 파크랜드, 의림지 위에 비룡담 저수지등이 조성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아기자기한 포토 존은 시민들과 의림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잔재미와 더불어 좋
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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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데크길로 이어지는 산책로 와 화려한 조명과 인공 폭포! 그리고 용추폭포의 현란함과 더불어 한여름 밤 밤
하늘을 품은 호수엔 수많은 별들로 반짝인다. 희미한 별빛은 화려한 조명으로 야경을 뽐내는 의림지의 훈훈한 바
람은 여느 뭍의 관광지와 차원이 남다를 뿐만 아니라 둑길을 걷다 보면 유랑자 보다 서너 발걸음 앞서서 길을 열
어 주는 달빛 과 별빛은 유난히도 반짝 거리며 夢幻的(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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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정 맞은편에 있는 우륵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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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계절의 바뀜 또한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밤이 더욱 깊어질수록 감칠맛 나는 감성과 낭만은 의림지만이
품어 낼 수 있는 자태이자 운치일 것이다. 특히 가을날 하늘의 뭉게구름이 피어오를 때면 잔잔한 호수의 화선지
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그림 한 장,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과 노송들이 어우러져 내려앉은 반영의 운치 있는 멋스
러움은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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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이랴 해질녘 무렵이면 우륵 정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호수 가운데 “순주섬”과 더불어 환상적이면서도 몽
환적인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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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의림지는 일 년 사계절을 돌아보면 만물이 소생하는 꽃들의 향연 봄, 녹음이 짙어지는 신록의 계절 여
름, 둑 아래 벼 익어가는 황금 들판과 금빛 가을, 찬바람 향연이 이어지는 겨울의 抒情詩(서정시)가 있는 제천 의
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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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의림지 한번 가보시라 百聞이 不如一見(백문 불여일견)이다, 감성어린 인
생 샷 한 장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의림지는 넉넉한 품을 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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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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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의림지와 제림을 방문하는 것은 충북 제천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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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둑길의 솔밭 제림길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듯, 이곳에서는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림지를 둘러싼 제림의 푸른 숲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을 선사하며,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평온함과 새로운 영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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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에 있는 이름없는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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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루(鏡湖樓)는 의림지 서쪽에 있으며 제천 초대군수 김득연과 서장 김경술의 발기로 창건하여 팔작집의 단
청이 되어있다. 의림지를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로 노송 사이에 있는 정자 누각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경호루란
이름은 누각에서 바라보는 잔잔한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는 의미를 가진 경호루(鏡湖樓) 그 당시, 김득련은누각을
짓고 다음과 같은 詩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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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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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제천 여행 시 의림지와 제림은 꼭 들러봐야 할 아름다운 명소 중 한곳으로, 자연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곳
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
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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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머리에 경호루를 높이 지어
온 천지의 풍경 세상시름 다 잊게 하네
바위는 제비가 앉은 듯 보이고
푸른 이끼는 오래되어 5월에도 서늘하네
폭포는 용(龍)울음소리 내며 白玉같이 흐르고
이곳 찾는 사람들은 울적한 마음 달래며
여흥에 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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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龍湫瀑布): 용추폭포는 신월동에서 올라온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가지 못하고 이 곳에서 터져 죽
었다는 전설과, 폭포소리가 용의 울음소리와 같다고 해서 용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 주변 모산동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용이 터져 죽은 곳이라 하여 ‘용터지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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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조선후기 문신인 金履萬(김이만, 1683~1758)은 고향 제천지역의 아름다운 풍광 여덟 곳을 설정하였는
데, 의림지에서 낚시하는 노인을 제1경, 의림지의 林湖烟樹(의림지의 안개 낀 나무)를 제2경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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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산수화가 李昉運(이방운)도 그가 그린 서화첩 四郡江山參僊水石(사군강산참선수석)에 나오는 명승지 8
곳 중의 하나로 의림지를 꼽아, 예로부터 4군(청풍, 영춘, 단양, 제천)지역의 대표적 명소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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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의 유리 전망대와 홍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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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문을 바라보고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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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17~18세기 전반에 남인 계열의 사대부들이 의림지 주변의 절경을 중심으로 글과 시를 지었다고 하니, 적
어도 350여 년 전부터 의림지가 치수시설을 넘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여가 명소로 거듭났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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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름다운 풍광과 운치 때문에 의림지 제방과 호안 주변에는 진섭헌, 臨沼亭(임소정), 湖月亭(호월정), 廳
瀑亭(청폭정), 于勒臺(우륵대), 候仙閣址(후선각), 등 수많은 정자와 누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映湖亭(영호
정)과 鏡湖樓(경호루)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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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더, 映湖亭(영호정)은 정미의병 창의 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문경출신 의병대장 雲岡 李康年(운강
이강년, 1858~1908)이 제천 천남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이곳에서 부하 장수들과 정치를 논하였
으며,都倡義大將(도창의대장:의병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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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정(暎湖亭)은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있으며 조선 시대 이집경이 세운 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 이범우가 1954년에 고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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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와 제림을 방문하는 것은 충북 제천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과거
로의 시간 여행을 하듯, 이곳에서는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의림
지를 둘러싼 제림의 푸른 숲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을 선사하며, 방문객들에게 평온함과 새로운 영감을 제공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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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 전설-
제천시에 북쪽으로 약 10리를 가면 관광지로 유명한 의림지가 나타난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
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
술도 또한 사나왔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
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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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 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
서 쌀을 한 바가지 퍼다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
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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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
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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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뒷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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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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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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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 속으로 꺼
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
던 제비바위(연자암)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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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정(紅流亭) 정자의 모습이 의림지 야경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네요
용이 힘차게 승천하기 위해서 협곡을 뚫고 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용터지기(龍沼= 용소)구리성분이 많아서 붉게 흐른다는 홍류동 그 옆에는 폭포수 줄기에 시원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지어 졌다는 홍류정(紅流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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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정(紅流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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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아홉 개의 서까래로 초가 누각을 새로 짓고
앉았노라니 푸른 하늘에 펼쳐지는 폭포수가 흩날리네,
무릉교 주변은 신선으로 화한 최치원(崔致遠)의 골짜기요
언덕 위의 꽃들은 객을 사절하는 원천이라,
한 움큼 잡아 움켜쥐니 바야흐로 현묘한 조화를 알겠고
고을 경영 건실함은 사군(使君)[현감]이 어질기 때문인지,
청컨대 문미에 내걸린 문미 사이에 내걸린 세 글자 현액을 바라보오.
호산(湖山)에 머물러 주기를 만고에 전하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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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정 옆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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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강낭콩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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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LKz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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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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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가는 방법?
제천 의림지는북쪽으 제천 시내로부터 로 약 4㎞ 떨어진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에 위치하
고 있다. 제천 IC에서 나와 박달재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약 1㎞ 이동하면 신동교차로가 있
으며, 여기에서 제천 순환로를 타고 영월 방면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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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지로 33.(모산동 241번지)
*주차장: 충북 제천시 모산동 181(장애인 주차장 있씀)
*휴무일:연중무휴 (용추폭포 및 분수는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보조견동반: 동반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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