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기아 이종범이 지난 8월 국내 무대에 컴백했다. 그리고 '바람'이란 별명처럼, 프로야구에 바람을 일으켰다. 올 관중이 300만명에 육박한 것도 이종범의 영향이 컸다. '프로야구 르네상스'의 일등공신이었다. 성적도 훌륭했다. 45경기에 출전해 188타수 64안타(0.340), 11홈런, 37타점을 기록했다. '역시 이종범'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종범의 '성공'은 역설적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의 '실패'가 원인이었다. 만일 이종범이 일본에서 성공했다면, 국내 컴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종범은 일본에서 '야구천재'가 아니었다. 호시노 감독과의 불화, 텃세, 한국과 일본의 수준 차이 등이 겹쳐 '보통선수'로 전락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탈모증까지 생겨났다. 이런 고생 끝에 '귀향'을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주먹에게 감사하라(?)'
삼성 이승엽은 연말 시상식의 '단골'이었다. MVP, 골든글러브상, 각 언론사가 주최한 상을 휩쓸었다. 2년만에 홈런왕을 탈환한 열매였다. 그런데 이런 영광 뒤에는 '주먹'이 있었다. 롯데 용병 호세의 '배영수 폭행사건'이다.
호세는 유력한 MVP 후보였다. 한때 타격 5관왕에 오른 적도 있었고, 4사구와 연속게임출루 부문에서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9월 18일 모든 것이 무너졌다. 호세는 이날 마산 삼성전에서 빈볼에 흥분, 배영수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 한 방으로 호세는 8게임 출전정지를 당했다. MVP 꿈은 산산조각났다. 이후는 이승엽이 독주였다. 39홈런으로 홈런킹이 됐다.
이승엽이 만약 홈런왕에 오르지 못했다면?
MVP는 물론 골든글러브상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칫 '구경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호세의 도중하차 덕분에 무사히(?) 홈런왕에 등극했고, 각종 상을 휩쓸었다. 홈런왕 타이틀이 '효자'였다. 이승엽은 호세에게 '감사패'라도 줘야할 지 모른다.
♣'양날의 칼 3.5게임차'
올 프로야구는 4위싸움으로 뜨거웠다. 시즌 마지막 2연전 첫날인 10월 1일 한화-기아전에서 4위가 결정됐을 정도였다. 4위 한화와 3위 두산과는 4.5게임차였다. 그러나 이것도 두산이 페이스 조절을 했기 때문에 좁혀진 승차. 한화와 1위 삼성과는 무려 18게임차였다. '3.5게임차 이내일 때만 준플레이오프를 한다'는 규정이 없어진 탓에 4위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고, 관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프로야구 붐이 일었다. 그러나 상위팀들은 '억울하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만약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면, 도마에 오를 뻔 했다.
♣'후진국병 투수 3관왕'
LG 신윤호는 투수 3관왕(다승-승률-구원)에 올랐다. 구대성(96년), 김현욱(97년)에 이어 사상 3번째였다. 데뷔 8년만의 경사였다. 그러나 뒷맛은 씁쓸했다.
현대 야구에서는 선발-미들맨-마무리의 투수 분업화가 철저하다. 그런데 신윤호는 선발과 마무리를 다 뛰었다. 역할분담은 '휴지'가 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꿈도 못꿀 일이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윤호는 '전천후 등판' 끝에 3관왕을 차지했다. '야구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 임정식 기자 d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