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라우어 정원의 풍경
어제저녁 해가 기울 무렵 정원으로 나갔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자 온몸이 시원해졌다. 친구와 함께 정자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나누니,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어느새 한 걸음 물러난 듯했다.
정자에 앉아 있으니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정원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지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문득 새소리가 잠잠해졌다. 소리가 멈춘 곳을 바라보니 나무 위에 제법 큰 그림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배가 고파 새를 노리고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도 저마다 살아가는 지혜와 질서가 있음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정원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다. 키 높이까지 자란 풀들은 바람을 따라 물결치듯 흔들리고, 어떤 꽃들은 땅에 몸을 낮춘 채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작은 퍼팅 연습장이 있어 여성 몇 분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한적한 풍경이 마치 시골 들녘의 여유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정원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작은 연못이다. 연못에는 수초가 무성하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간다. 물고기 수를 세어 보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보는 순간마다 달라진다.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연못에 연꽃 한 송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수초인 줄 알았던 잎 사이에서 피어난 연꽃은 더욱 청초하게 보였다. 여러 송이가 피어 있는 것보다 홀로 피어난 한 송이가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내일은 또 한 송이가 피어날까 하는 기대를 품고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분수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바람을 타고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고요한 연못에 생기를 더해 주었다.
저녁이 되면 정원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여성들의 퍼팅 대회가 열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응원하며 여름밤의 더위를 잊는다. 이날 대회에는 네 명씩 세 팀이 참가하여 18홀 경기를 펼쳤다. 이미진 씨가 우승을 차지했고, 정나리 씨와 김해숙 씨가 공동 준우승을 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단장께서는 앞으로도 매월 한 차례 정기 대회를 열어 친목을 다지자고 말씀하셨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소배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모두 시원한 맥주잔을 들어 오늘의 만남과 우정을 축하하며 건배했다. 웃음꽃이 피어나고 이야기꽃도 활짝 피었다. 시니어타운 회장께서 안주를 마련해 오셔서 더욱 푸짐하고 정겨운 자리가 되었다. 서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마무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자연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 한 줄기, 풀벌레 소리, 연꽃 한 송이만으로도 우리에게 쉼과 위로를 건넨다. 사람들과 함께 나눈 웃음과 정겨운 대화 또한 자연이 주는 선물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라우어 정원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들려주는 조용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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