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
부활절은 그리스도인에게 기쁜 축제일이다.
부활절이 되면
그리스도인은 서로 기쁨의 인사를 나눈다.
부활절, 우리는 정말 기쁜가?
그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기쁘게 하는가?
우리가 신봉하는 교주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인가?
말하자면 교주와의 재회 때문인가?
그러나 그분께서는 다시 재림을 약속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셨는가?
무엇보다도 그 부활사건은 2000년 전의 일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괴로워하고 계신데 우리는 그분을 십자가에서 내려놓고 그분께서 부활하였다고 기뻐하는 것은 아닌가?
주님은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린 채 울고 계신데 우리만 기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전히 괴롭고 여전히 슬픈 주님 앞에서
우리만 흥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이 주님의 마음을 혹시나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성서를 보면 부활의 기쁨은 재회의 기쁨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마리아 막달라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고,
토마스가 예수님의 상처를 확인하는 장면들을 보면, 그것은 단순한 재회가 아니다.
그 만남은 "주님,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셨군요"라든지,
"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어"라는 대화가 전혀 불가능한 만남이었다.
부활이 주는 기쁨은 온갖 이원을 벗어나
삶의 원천을 건드리는 기쁨이다.
인생에서 펼쳐지는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미움 등의 일체 감정을 벗어나
원천을 건드리는 기쁨이다.
대부분의 우리 인생들은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그런 차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시간과 영원의 만남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여야 할 삶이 있다면
나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하는 이 이원의 세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 이원의 세계를 끝장낸 죽음이었다.
이 죽음을 산 자만이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 기쁨은 수난의 기쁨이다.
예수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라!
모든 것이 그분에게 행해졌다.
체포되었고, 매질 당하였고, 가시관이 씌어졌고, 신문 당하였고, 옷 벗김을 당하였고, 치욕을 당하였고, 못 박혔다.
그리고 "다 이루어졌다"는 말마디를
허공에 던지며 숨을 거두셨다.
그분의 삶은 당한 삶이었다.
순수한 수동태의 삶이었다.
그 수동태에서 그분의 사명이 완성되었고, 그 완성이 곧 부활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얼마나 맡기는 수동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이것저것 따지는 나의 잘난 능력을 죽이고 고통과 십자가에 나의 존재를 못박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가난이 되었고, 정의와 불의의 구분을 넘어 모두를 사랑하였으며, 그런 식으로 고통과 죽음을 포용하였는가?
나는 얼마나 낯선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그리고 또 물어야 한다.
나는 언제 한번 남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 본적이 있는가?
언제 한번 이웃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본적이 있는가?
언제 한번 원수를 위해 예수께서 당한 고통을 당하였고, 언제 한번 예수께서 죽은 죽음을 죽어 본적이 있는가?
언제 한번 예수께서 몸바치신 죄인을 위해 울어 보고, 언제 한번 죄인의 죄를 내 죄로 고백해 본적이 있는가?
남의 고통에 동참해 본 사람만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이론이 아님을 알 것이고,
십자가 위의 부활, 고통 속의 기쁨이
이론이 아님을 알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의 기쁨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부활의 기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자기 안에 죽음과 생명, 절망과 기쁨 등의 화해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 이 제민 신부님의 인생 낱말 사전중에서
첫댓글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주말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