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관순 >>
서대문 형무소
충남 천안(天安) 출생.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 ·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일제 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
천안 ·연기(燕岐) ·청주(淸州) ·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헌병대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이 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寬玉)을 만났다. 그 후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 서울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일본인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모독죄가 가산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갖은 악형에 시달려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1996년 5월 이화여고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
종로 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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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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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감사하며 살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이 땅에 살면서 당신들을 매도해 버리는 쓰레기 만큼은 반드시 몰아내겠습니다.
부끄럽네요. 이분들이 지켜내려고 했던 대한민국을 어찌 사랑하지않을수 있겠습니다.
이런분들에게 우리 후손들은 정말 아직도 머리를 못듭니다.친일청산 못한 거 이분들이 보고계실 거 같아서요...
어릴때 소문으로 돌던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정말 처참했는데...나중엔 사지를 토막토막.. 갖은 악행이 그야말로 갖은 악행....
늘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__)
그저 너무너무 감사드릴뿐...
그저 감사드릴뿐입니다.....ㅜ.ㅜ
정말 이런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친일청산도 아직 못한 와중에 또 다른 매국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유관순 열사 진정한 여성 혁명가 입니다.. 누가 저여성을 여자라 무시하겠습니까 저 어린 나이에 만세운동을 주도한것을 보십시오 남녀를 떠나서 존경합니다
형무소에서 얼마나 많은 고문을 받으셨을지....ㅠㅠ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정말 정말 정말 대단하시고 고마우신분들..
조국을 위한 희생 잊지 않겟습니다
나중에 제 자식들에게도 말해줄거에요..너희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이분들의 피와 희생이 뒷받침 되었기에 존재하는 거라고..꼭,반드시!!!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저분들의 희생을 우린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살지요...나부터..ㄲㄲ
m(__)m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에휴......
아.. 저 어렸을 때 유관순 열사 사진 처음보고 못생겼다고 말했다가 선생님이 너보단 예쁘다고 말해서 상처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어리석었죠-┌...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