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육아 쉽게” vs “수요 의문”
‘저출산 해결책’ 하반기 시범사업
“맞벌이 부부 출산율 늘것” 기대속
“언어문제 등 실효성 부족” 반론도
고용노동부가 올해 하반기 ‘외국인 가사 도우미’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외국인이 국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전문취업(E-9) 비자가 허용되는 업종에 가사·돌봄 서비스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열린 국무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을 언급하면서 시범사업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동계와 여성계에서 내국인 근로자와의 제도 및 임금 형평성 문제, 실효성, 인권 유린 우려 등을 들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
● 맞벌이 늘고 가사 근로자는 줄고
25일 서울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 근로자 관련 공개 토론회’에서 고용부는 가사·돌봄 서비스 근로자에게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주는 방안과 일정 시간의 취업 교육을 하는 등의 추진 방향을 공개했다. 현재는 중국·구소련 지역 동포(H-2)나 거주(F-2), 영주(F-5), 결혼이민(F-6)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만 가사 서비스에 종사할 수 있다. 앞으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인력이 가사 근로자로 취업하기 위해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올 수 있게 된다.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에 대해 “저출산 대응 및 여성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해 가사·돌봄 분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내국인 종사자 규모가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사 서비스 종사자 규모는 2016년 18만6000명에서 2022년 11만4000명으로 38.7% 줄었다.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종사자의 33.2%는 50대, 59.0%는 60대로 50대 이상이 전체 근로자의 92.2%에 달한다.
반면 맞벌이 가정 증가로 가사 서비스 수요는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아이돌봄 인력의 부족과 부담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외국 인력 활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외국인 가사 근로자를 도입했다. 2017년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도쿄, 오사카 등 6개 특구 지역에 한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자의 출신국이나 서비스 이용자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 조건이 없다. 반면 홍콩과 싱가포르는 근로자의 출신 국가에 제한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이용자에게도 ‘특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 “한국 돌봄 기대 수준 높아…수요조사 해야”
노동계와 여성계는 외국 인력 도입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국내 근로자들의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국내 가사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양질의 내국인 중·장년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과연 정부가 (외국 인력에 대한) 수요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단체에 있다는 한 참석자는 “아이 돌봄 인력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수요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홍콩 등에서 외국인 가사 근로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 정부가 깊은 고민 없이 졸속 도입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고용부는 가급적 근로자들의 출신국을 ‘의사소통이 용이한 국가’로 제한하고 ‘관련 경력 및 지식 보유 여부, 연령, 언어 능력과 범죄 이력’ 같은 자격 요건을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고용부와 함께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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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 중 으뜸이라는 ‘이모님 복’…동남아 가사도우미는?
좋은 ‘이모님’ 만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다. 워킹맘에겐 ‘이모님 복이 오복 중 으뜸’이라고 한다. 가사도우미 얘기다. 미덥기는 친정엄마 같은 한국인 이모님이 최고지만 조선족 도움을 받는 집이 많다. 싸고, 입맛 비슷하고, 중국어 조기교육이 가능하며, 육아와 살림에 이것저것 ‘조언’을 삼가기 때문에 편하다. 올 하반기에는 서울에서 동남아 출신 이모님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방문취업(H2) 비자로 들어온 중국동포만 가사도우미 일을 할 수 있다.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해 알음알음 필리핀 도우미를 고용하는 집도 있는데 불법이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의사소통이 쉽거나’ ‘정서적 거부감이 적은’ 나라 출신을 가사도우미로 시범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월 100만 원 이하” “싱가포르에선 월 38만∼76만 원” 등의 주장이 있지만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면 급여는 월 210만 원 수준이 된다. 한국인의 경우 주5일 출퇴근 도우미가 250만∼300만 원, 입주는 350만∼400만 원이다.
▷조선족 이모님에겐 익숙해도 동남아 이모님에 대해선 걱정들이 많다. 말도 문화도 달라 서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근무 여건이 좋은 다른 일자리로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될 우려도 있다. 정부가 참고하는 나라가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인데, 제도 시행의 역사가 긴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도우미 인권침해 사건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4개국 모두 제도 도입 후 출산율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해외 이모님 모시기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돌봄 공백은 심각하다. 워킹맘들은 육아휴직이 끝나면 첫 번째 퇴사 위기를 맞는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줄을 타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 두 번째 위기다. 등하교 시간에 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를 쓸 수 있지만 역시 대기 줄이 길고 맞벌이 부부는 소득 기준에 걸려 신청도 못 한다. 등하교 이모님을 쓰면 월 120만∼150만 원이다. 이렇게 육아와 가사 고비를 못 넘기고 집에 들어앉은 여성이 698만 명이다.
▷돌봄 공백은 정책 한두 개로 메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존 돌봄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선택지도 넓혀야 한다. 조선족 이모님을 더 모셔오거나, 국내 건강한 고령층을 돌봄 인구로 흡수하는 방법도 있다. 필리핀은 해외에 나가 가사도우미 하려면 국가자격증을 따야 한단다. 신뢰할 만한 인력송출제도를 갖춘 나라를 대상으로 가사도우미 도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이 남다른 복을 타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 됐으면 좋겠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