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1970~80년대 부유층들의 집만 골라 털고, 일부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는 등
당시 사회적 불만이 팽패해 있던 시점이라 그를 영웅,의적 이라고 미화하는 풍조가 퍼지기도 함
출소 후 방범경비시스템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기도 하고(월급도 많음),
교회 초청으로 신앙 간증도 나가기도 하고, 대학 강사로도 활동하기도 했으나
결국 2001년 도쿄 시부야에서 주택3곳을 다시 털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다시 도둑질에 손데게 됨
2005년 치과의사집에서 165만원의 손목시계를 훔치다 걸리고,2010년엔 장물 취급하다 걸림
그리고, 2013년 4월 3일 또 강남의 고급빌라를 털다가 걸림.
대도의 비참한 몰락.
인간의 갱생이란 참 힘든 것인듯....
<김희로 >
1928.11.20~2010.3.26
재일 조선인. 빛독촉을 하던 야쿠자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다이나마이트와 소총을 들고 여관을 후지미야 여관에서 투숙객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4일(88시간) 만인 24일 검거됨.
이 인질극은 당시 TV 등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었고, 그는 "경찰관의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TV를 통해 경찰의 사과를 받아내 파문을 일으켰다. 체포된 후 8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마모토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유인촌 주연으로 하여 해당 사건이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공중파에서 방송했던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고 반일감정이 많이 남아있던 시대라, 일본인 쏴죽인 김희로의 이야기는 영웅처럼 비춰졌고
그가 무기형 징역을 받는 동안 옆에서 옥중 후원을 도와준 박삼중 스님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음.
1999년 9월 7일 31년 만에 석방되어, 7년 이상 복역한 외국인 장기수는 법적으로 국외 추방토록 되어 있는 일본 법규에 따라 박삼중 스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으로 돌아온후 중앙일보의 대접이 극진했다고 전해짐)
여기까지라면 훈훈한 이야기가 되었을 뻔 했으나.....
옥중결혼을 했던 돈 모 여인과 2000년 2월부터 4월까지 부부로 함께 살았으나,
2달뒤 돈 모 여인은 권희로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했다면서 그의 돈을 가지고 달아났으며 인터뷰에서 자신이 권희로의 돈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정신적 피해보상"이라고 주장함. (사실 돈 모 여인은 내연관계의 일본인의 본처를 살해한 죄로 수감되어서 권희로와 옥중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번이나 김희로 돈을 가지고 튀었다. 한번은 받아줬지만...)
이후 권희로는 박모 여인과 내연의 관계가 되었고 2000년, 71세의 나이의 권희로는 내연의 관계에 있던 박모씨(42)의 남편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됨.
공주치료감호소의 최상섭 소장은 체포되었을 당시 검찰의 의뢰를 받아 그가 비정상적인 가정 환경과 오랜 수형 생활 때문에 인격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 후에는 치료감호 되었다고... 중앙일보에서는 나중에 후원을 철회했으며, 권희로를 후원한 박삼중 스님은,그가 자꾸 범죄를 저지르자 후회스럽다고 지지를 철회함.
2010년 3월 26일 오전 6시50분께 전립선암으로 투병중이던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에서 별세. 향년 82세.
첫댓글 김의 전쟁을 어린시절에 봤었을 때 이사람을 멋지게만 보았는데 영화와 실제현실은 많이 다른 듯 합니다..장군의 아들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