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갯가
봄방학 끝자락 월요일 아침나절이었다. 구산 바닷가 낮은 산자락을 오르려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어시장으로 나가 원전으로 가는 62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었다. 수정을 지나 안녕과 옥계 갯가를 둘러 반동삼거리에서 난포로 갔다. 심리를 지난 장수암 입구에서 내렸다. 그보다 해안선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낚시터로 널리 알려진 원전 종점이었다.
장수암으로 가는 길은 원전마을로 가는 옛길이었다.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펜션이 두 채 들어서 있었다. 합포만 바깥 진해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점점이 뜬 하얀 부표는 홍합양식장이었다. 기도 도량이라는 장수암 역시 바다를 한 눈에 조망했다. 그 암자는 수 년 전 아내를 일찍 여읜 한 친구가 한 달 보름여 주말마다 사십구재를 지냈던 터라 익히 알았다.
장수암을 지난 산마루에서 벌바위 둘레길로 올랐다. 나는 벌바위 둘레길을 두 차례 찾았다. 두 번 다 원전 종점에서 골목을 지나 고개로 올랐다. 이번엔 방향을 달리해 장수암 입구에서 올랐다.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니 금방 땀이 흘러 잠바를 벗어 안고 걸었다. 벌바위는 천둥산 정상 못 미친 지점에 있었다. 산등선에 벌 형상으로 두 바위가 잘록하게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었지 싶다.
벌바위에서 진해만을 조망하고는 산등선을 따라 올라 쉼터에 앉았다. 몇 지인에게 바닷가 사진을 보내주고 산등선 따라 나아가니 천둥산 정상이었다. 해안가 낮은 산자락이라 해발고도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갈림길 이정표에는 원전마을로 가는 단축 코스가 있고 장거리 코스가 있었다. 나는 장거리 코스를 따라 산비탈을 내려섰다. 소나무 숲 사이 거제만은 고성 통영으로 헤아려졌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엔 묵정밭이 나타났다. 볕이 바른 자리에 파릇한 쑥이 더러 보였으나 나는 그냥 스쳐 지났다. 마을로 내려서니 방파제 가까이 수산물 가공공장이 있었다. 아마도 홍합을 까는 공장인 듯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노동자들이 공장 바깥으로 나왔다. 우리와 다른 피부색의 외국인들이었다. 수산물 가공공장 인근엔 외국인 노동자들의 합숙소도 딸려 있는 듯했다.
주인으로 짐작되는 아낙이 외국인 노동자를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공장에 딸린 합숙소에서 지내는 그들이 배출한 쓰레기가 분리가 되지 않은 채 마구 섞여 있는 듯했다. 더군다나 음식쓰레기까지 비닐봉투에 그대로 버려 냄새가 진동한다고 했다. 필리핀인으로 짐작되는 노동자는 뭐라 뭐라 주인 아낙에게 대꾸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가 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방파제가 끝난 곳은 덜 닳은 몽돌자갈이 이어진 해변이었다. 묵정밭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백매도 있었지만 선홍색 홍매는 더 눈길을 끌었다. 저만치 바다 위는 선상 낚시 콘도가 떠 있었다. 묵정밭에는 외지에서 찾아온 두 할머니 쑥을 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산비탈을 내려설 때 보이던 쑥을 내가 캐지 않고 남겨둠은 잘 했지 싶다. 할머니들이 캘 기회가 주었다.
묵정밭이 이어진 갯가에서 원전마을로 되돌아 나왔다. 따뜻한 봄 햇살은 갯마을에 먼저 내려 비치었다. 바다 바로 앞은 실리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포구엔 임자를 만나지 못한 낚싯배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일부 낚시꾼은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던져 놓고 세월을 낚고 있었다. 원전마을 종점에서는 마산역까지 오가는 농어촌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다녀 자주 있는 편이었다.
공원처럼 조경이 잘 된 원전 종점 정류소에서 시내로 들어갈 버스를 기다렸다. 방파제를 바라보며 서성였더니 나를 태워갈 버스가 닿았다. 시내로부터 들어온 손님이 제법 되었다. 낚시 장비를 든 사내들에 이어 아낙들도 따라 내렸다. 그 아낙들은 차림새로 보아 쑥을 캐러 나선 듯했다. 나는 반나절 산행 나들이 일정을 마감하고 홀가분히 버스에 올라 해안선 따라 굽이굽이 돌아갔다. 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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