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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고 교사 재직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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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환 전 춘천교육장 | 춘천시 서면은 춘천분지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면 사람들이 사는 집들은 크건 작건 모두 동쪽으로 대문과 출입문이 나있다. 굴뚝은 하나같이 서쪽에 있으며 텃밭은 집앞 동쪽에 있다. 초가집이나 큰 기와집이나 단독주택이라기보다는 집합동처럼 큰 덩어리의 집 집단으로 뭉쳐 있다. 모든 서면 사람들은 아침에 대룡산 위로 해가 뜨면 춘천시내를 향하여 일하러 떠난다. 밭도 논도 다 동쪽에 있으며 중학교도 대학교도 시장도 직장도 모두 동쪽에 있다. 거기는 삶의 터전이며 생존경쟁의 장이다. 즉 동쪽에 가야 배우고 일하며 삶을 누린다.
그 곳은 희망이며 성공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서면인의 지향하는 목표다. 그 곳에서 해가 뜬다. 저녁에는 해가 지는 삼악산과 그 줄기가 뻗어 있는 서쪽으로 되돌아간다. 그곳에는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다.
서면 사람들은 큰 강을 두 개, 작은 군개를 한개씩 매일 건너 다녔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큰 강이고 성뚝 앞은 작은 여울이 또 하나 있었다. 큰 강에는 나룻배가 있고 사공도 있다. 그러나 작은 군개에는 배도 다리도 사공도 없다. 그저 발벗고 건너거나 가물때는 징검다리를 놓아가며 건널 뿐이다. 그런데 그 배에는 몇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는 빨리 오지 않으면 배를 놓치고 만다. 그러면 그날은 모든 생활이 끝이다. 모두가 평등하다. 남녀노소를 가릴것 없다. 늦으면 뛰어야 하고 처지면 그만이다.
둘째는 배안에서는 아무리 빨리 가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배를 벗어나야 뛰거나 빨리 걸으면 그 결과가 자기 것이다. 그래서 또 뛴다. 서면 사람들은 뛰면서 산다. 동네 어르신이나 면서기도 뛰어야 하고 학교 선생님도 뛰지 않으면 배를 못타고 지각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서면 사람들은 ‘우리’라고 해야 산다. 우리라는 무리에서 벗어나면 못 살거나 도태된다. 개인행동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공동체다. 나룻배는 서면 사람들을 묶어주는 터전이다. 서면학생이면 누구나 이 나룻배를 함께 타야 한다. 춘천사범학교 춘천중고 춘천농고 춘천여고 등 학생 약 150여명이 다 이 나룻배 하나로 통학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공부를 안하면 서면인이 아니다. 누구는 이번학기 성적이 어떤지 그 학교에서 몇등을 했는지 다 안다. 배안에 들어서면 누가 이번 수학시험에 몇개가 틀렸는지도 알게 된다. 그말은 서로의 부모님에게 그날로 보고된다.
부모님의 얼굴이 눈에 선한데 어찌 공부를 안할 수 있나. 경쟁심도 있고 가문까지 쪼들리는 판에 어찌 편안히 놀고만 있겠나.
공부 잘하는 선배나 후배를 보면 자연스럽게 존경하고 싶어지고 또 닮아지려는 욕망이 자연 자기를 추스르게 한다. 저녁에 빌린 노트나 책을 밤새 읽고 베끼고 다음날 아침 배에서 되돌려 주어야 한다. 밤새 공부하다 이해못한 부분은 다음날 배에서 선배에게 배우면 된다. 토론도 많이 했다. 지금보면 유치할 수도 있고 또 궤변일 수도 있지만 8㎞를 함께 걸으며 배에서 함께 서서 열변을 토하던 그것은 나로 하여금 사색의 장을 넓혀주었다. 그날의 토론에서 내가 조금 밀렸다고 생각하면 밤잠을 못잤다. 또 하나 공부 안할 수 없는 이유는 부모님들의 교육열과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흔히 서면으로 시집 보내려면 광주리 하나만 해주면 된다는 현대판 전설이 있다. 서면의 어머니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광주리를 이고 다니신다. 아버지가 밭에다 작물을 재배하면 어머니는 밤새 이것을 잘 다듬고 상품화하여 머리에 이고 새벽 8㎞를 걸어서 시내 노점에서 팔아 그 돈으로 자녀를 공부시킨다. 그것은 서면 여인의 생활이며 철학이다. 한해 여름방학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춘천역에 두시경 도착하여 소양강 모래톱을 터벅터벅 걸어 서면으로 가는데 멀리 앞쪽에 허기가 진듯한 여인이 광주리를 이고 걸어가고 있다. 불현듯 어머니일거라는 느낌이 들어 부지런히 쫓아가 보니 어머니였다. 그런데 그 뜨거운 모래 자갈길을 맨발로 걸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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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마을 선양탑. | 나를 보고 반가워 하시며 내 짐을 광주리에 얹으시고 신나게 걸으시는데 왜 신을 안신냐고 여쭈었더니 시내에서나 신지 멀 괜찮다고 하신다. 다해진 검정고무신은 광주리에 얹혀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 어머니는 점심전이셨다.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안하겠나. 서면을 박사마을이라고 한다. 하긴 주민이 5000명도 안되는 시골 한면에서 박사가 110명이 배출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박사뿐 아니라 초·중등학교 교장이나 장학관 이상이 65명이 배출됐다.
현직 교육공무원이 120여명이며 고위공직자, 판검사, 군장성, 국회의원, 금융계의 거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가 서면에서 낳고 자랐다. 현재 한승수 국무총리도 한장수 교육감도 다 서면사람이다. 서면은 토인비(Toynbee)의 역사 발전설에 아마 가장 근접한 모델인지 모른다. 그렇게 악조건만이 눈앞에 전개되어 있는데 좌절하지 않고 뚫고 나갔으니 가히 도전과 응전의 원리대로 발전한 곳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이 어려서부터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사방모자’였다. 우리 옆집 큰 아재는 방학때가 되면 사방모자를 쓰고 까만 망토를 입고 빨간 가방에 가죽구두를 신고 인력거에 비스듬히 기대고 돌아온다. 동네 사람들이 배터까지 마중을 나가 맞이한다. 그분은 우리의 우상이었다. 아마 어른들은 “내아들도 저렇게 키워야지”했을 것이고, 우리 꼬마들은 ”나도 반드시 저렇게 될거야”하며 다짐했다. 부모님들은 당신의 점심을 건너 뛰더라도 “우리아들은 공부를 시켜야지”했고 아들은 “반드시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려야지”했다. 그래서 해냈다. 강물이 부르면 강변에 앉아 책을 읽었고 엄동설한에 맨발로 강을 건너 저밝은 시내를 향해 뛰었다.
지금은 전깃불도 있고 춥지도 덥지도 배고프지도 않고 뛰지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나른하다. 한두시간 책을 읽다보면 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옆에 있는 친구가 “책좀 그만봐요”하면 그게 고맙게 들리기도 한다. 지난 여름 내가 읽던 책을 모두 집앞 마당에 내놓고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다. 누구도 안읽은 책은 폐지로 차에 실려 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도 또 서점에 들러 책을 사가지고 오면서 70년 박힌 버릇 개 못준다더니 하며 허허 웃는다.
◇ 프로필 - 34년생 춘천시 서면 현암리 출생 - 금산초·춘천고·중앙대 정치외교학과 - 고성중고·춘천중·춘천고 교사 - 홍천중·춘천고 교감 - 강원도교육청 장학사 연구사 - 양양중고·춘천고 교장 - 춘천교육청 교육장(98~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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