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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희] 내시의 딸 - 내시의 딸 12
나는 엄마와 함께 온천장에 들어가 수영을 하자고 했지만 여간해서 엄마는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집을 궁금해 했고 자꾸 전화를 하려고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기껏 여기까지 와서 집에 자꾸 전화하면 받는 사람이 더 불안해 엄마."
엄마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그 이틀째 점심 후 전화를 한 엄마가 사색이 되었다.
"그게 정말이냐?
어떻게 그럴 수가?"
"엄마 왜 그래요?"
엄마가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가 뺏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승태였다.
"승태야 무슨 소리야?"
그때 내 귓가로 다급한 승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아버지께서 경찰서에 잡혀가셨어."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왜 경찰서를 잡혀가셔?"
"초안산에 골프장을 짓는다잖아.
거기 가셔서 사람들과 시위하시다가 그만."
"아버지가 시위를 하셔?"
"그래 누나. 아버지가 도저히 안 된다고 앞에서 말리시다가 그만 경찰서로 잡혀가셨어."
"정말이야? 그 것 뿐이야?"
"사실 거기 전경을 때리셨나봐. 지팡이로 힘껏 내리치셨대."
"초안산에 무슨 골프장을 지어?"
"거기 지주가 그러기로 했대.
그런데 마을에서도 반대하고 시민단체에서도 반대를 하지.
그래서 아버지가 아시고 가신 거였어."
엄마가 사색이 되어 주섬주섬 가방을 싸고 있었다.
"세상에 경찰서에 잡히시다니. 이런 일이 어떻게…."
"엄마."
나는 엄마를 말릴 경황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문숙이 엄마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따 아짐니도 한가하게 온천할 팔자는 아예 못되는 갑소"
하고는 엄마가 꾸려놓은 가방을 얼른 들어주었다.
"엄마, 나도 가방을 싸야지."
"어서해라. 어서 해." 엄마는 허둥댔다.
"그래도… 수영복은 아직 욕실에 있는데…."
문숙엄마는 더 적극적이었다.
"가소. 그만 가소. 빼뜨린 것이 있어도 내가 다 챙겨갈 텐께."
오히려 우리를 더 밀어내는 것이었다.
"어서 가소. 어서 가."
밀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밖으로 나와서 허둥대었다.
나는 오늘 엄마를 데려갈 곳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같이 서울로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엄마 무조건 택시부터 타자고 하지 말고 우선 희수오빠한테 전화를 해봐요."
"그래. 그렇지."
허둥대던 엄마도 그것은 찬성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김해공항을 가야했던 것이다.
시간으로는 얼추 맞지만 엄마를 어떻게 김해공항으로 모시고 갈 것인가?
더군다나 아버지가 어떻게 시위에 참가한 것이며 전경을 때렸다는 말이 무엇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런 고민으로 희수오빠에게 전화를 하였다.
"오빠. 나 승화야."
"그래. 승화야, 승태가 말했다면서?"
"어, 그래.
도대체 아버지가 어떻게 시위에 참가하신 거야? 더군다나 경찰서에 잡혀가시다니?"
"괜찮아. 괜찮아. 지금 아버지는 벌써 집으로 오셨고 별 일 아니야.
걱정하지 말고. 응?
엄마한테 잘 말씀드려라.
어머니 놀라셨지? 아니 아니 거기 어머니 계시면 어머님 좀 바꿔줘."
"엄마 바꾸라고?"
그 말을 듣던 엄마가 냉큼 수화기를 뺏어갔다.
한참을 엄마는 희수오빠에게 정황을 듣더니 그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노인을 경찰서로 잡아가다니…"
엄마는 전화를 끊고도 허둥대었다.
"가자. 어서 가자."
"엄마, 아버지 집에 오셨다는데?"
"그래도. 가자."
그렇게 서있는 우리 곁으로 택시가 한 대 와 섰고 우리를 향하여 말하였다.
"혹시 김해공항 가시는 분 안계세요? 부산 차라 가실 때 싸게 해 드릴게요."
젊은 운전기사의 말에 나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엄마도 나도 망설임 없이 얼른 그 택시에 올라탔다.
엄마는 서울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항공편인 것을 확신한 것 같았고 나도 김해로 가는 차편이 생긴 것을 안도하였다.
"서울서 오셨는갑죠?"
되도록이면 표준말을 쓰려고 하는 운전기사의 억양이 아주 어색한 사투리가 억양과 섞여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는 차 안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김해공항에 닿았고 나는 엄마를 앉혀두고 수속을 시작하였다.
나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하였고 엄마는 이미 준비된 항공권의 수속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이제 파리 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었다. 난 엄마와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수속을 하고 돌아온 내게 엄마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 딸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비행기를 다 타보는 구나."
"엄마. 이거 엄마가 갖고 있어요."
"이게 뭐냐?"
"이거 엄마 여권이라는 거야."
"여권?"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응.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여권이 있어야 한대."
"그럴 테지. 아 그렇구나."
엄마가 석연치 않은 얼굴로 여권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이런 사진을 다 구하였니?"
여권사진에 있는 모습이 화사한 표정의 웃는 얼굴의 한복차림이었던 것이었다.
"아버지랑 최근에 사진 찍으셨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그 사진이 여기 어떻게 있는 게냐?"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엄마."
엄마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 엄마의 아이가 아니래."
"뭐? 그게 무슨 말이니?"
"난 작은아버지의 아이래. 엄마가 낳은 그 아이가 내가 아니래."
"승화야."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아기를 잃으면 엄마는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아버지가 작은아버지가 낳은 아기를 대신 데려다 놓았고 그 아기가 나래.
엄마, 나는 작은아버지의 딸인 거래."
"승화야."
엄마가 왈칵 울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안았다.
"승화야. 아니야.
네가 그것은 잘못 알은 게야.
우리 승화, 우리 승화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인걸."
엄마가 울면서 나를 옭죄며 안아왔다.
"엄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엄마. 이 세상에서 승화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
엄마, 제발 이제는 그분하고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정말 행복하게 그렇게 한 번 살아보세요."
"뭐? 그게 무슨 말이니?"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구겨진 듯한 양복에 흰 머리칼이 바람머리로 휘날리는 채 거기 멍청하게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이 엄마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경직된 듯 우뚝 서서 그를 보고 있었다.
이성훈씨, 그가 다가왔다. 엄마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내가 그 곁에서 어쩔 줄 모르는데 누군가가 와서 내 어깨를 잡았다.
스치는 냄새, 어디선가 낯익은 그런 냄새.
그는 노진이 오빠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노진오빠가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거기 엄마를 둔 채 황황히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엄마와 이성훈씨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는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진실로 그리워하였던 그 분을 한 번 만나고 그와 더불어 같이 남은 생을 살아주기를 바랐다.
아,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에 탑승하여 있었다.
내 곁에는 노진이 오빠가 앉아있고 나는 거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스튜어디스가 나눠준 한 잔의 주스를 앞에 두고
이상한 아픔이 내게로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과연 행복할까?
나는 어떤 연유로 엄마를 그 분에게 보냈던 것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다르게 반평생을 남의 남자에게서 살았던 한 여인을 진실로 그 여인이 사랑하였던
그 사람에게 되돌린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가늠이 서지 않았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면서 내가 말씀을 드렸어. 나머지는 선생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야.
나는 두 분이 진실로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으셨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엄마를 팔아먹은 것 같은 착각에 시달리는 것일까?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엄마를 보내드린 것이 아니라 마치 엄마와의 연을 끊고 싶어 어디론가 떼어낸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임다정.
엄마의 이름은 임다정이었다.
평생 어떤 업보를 업고 살아가는 듯이 큰소리 한 번 못 내고 누구에게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언제나 우울하게 언제나 슬프게 나직나직한 음성으로만 살아왔던 우리 엄마.
젊은 날의 어머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참으로 따스하였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참으로 가련하였다.
나는 그런 되뇜을 수없이 하면서 내가 우리엄마를 보냈는가 하는 자책감이 비로소 들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엄마를 보낼 마음의 준비도, 그 어떤 것도 없었으면서 왜 엄마를 거기 두고 온 거지?”
나의 두서없는 주절거림에 노진오빠가 나의 손을 잡았다.
“승화야.”
“오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승화야.”
나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얼마나 그 분을 그리워하였을까?
엄마가 얼마나 얼마나 슬퍼하면서 평생을 살았을까?
나 그건 다 아는데, 다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왜 이렇게 후회스러운 걸까? 나는 엄마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아직 살아있지도 못할 줄 모르는데.
엄마는 나 하나만을 보고 살아왔는데…”
내 주절거림에 주위의 눈길이 힐긋거렸고 노진오빠는 잡은 손에 더욱 힘껏 힘을 주었다.
“승화야.”
그렇게 오빠가 내 이름을 여러 번 부르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내 이름을 다 알아 들을 만큼
내 이름을 부르고 더는 말을 못하였다.
“나는 부럽다.”
노진오빠의 짧은 한마디에 나는 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진실로 부러운 것이 평생 한 여인만을 가슴에 담고 살면서 그 여인과 머리칼이 희고 더는 퇴로가 없을 때
그 여인과 마지막 남은 그 곳에서 같이 죽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빠.”
“나는 부럽다.
이성훈 선생님이 부럽다.”
나는 더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나를 잡은 뜨거운 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막연하게 멀리서 들리는 듯한 음성.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것도 다 잊고 그 짧은 시간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잠에 빠져들었고 공항을 나와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공항 찻집에 앉아있었다.
“설탕 넣을래?”
나는 왠지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엄마를 우리엄마가 진실로 사랑하는 그 분께 가시게 하였고
더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는데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까짓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어떻고 크림을 넣으면 어떤가. 나는 맛도 모르는 커피를 그냥 마시고 있었다.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 좋은 찻집이었다.
더구나 나는 오랜만에 노진이 오빠와 같이 거기 그렇게 앉아있지 않은가?
나는 아주 잘생긴 노진오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준수한 용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 잘생긴 용모로 하여 누구에게든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 호감을 갖게 하는 그런 뛰어난 용모였다.
하지만 그는 그 용모로 하여 너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고 또 여인들의 호감도 받았으리라.
그리하여 누구 못지않은 아름다운 신부를 만났고 그 신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는 가방을 열고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노진오빠가 나를 보았다.
“이게 뭐야?”
“한 번 봐.”
“이걸?”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봉투를 개봉하는 것을 보고 나는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이것은”
“응. 오빠 여행권이야. 영윤이가 그간 너무 힘들어했어.
두 사람 제주도라도 다녀오면 좋겠어.
내가 맘먹고 마련한 것이니까.
꼭 두 사람이 다녀왔으면 좋겠다.”
“승화야.”
“영윤이가 너무 힘들 것 같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신혼의 기간에 오빠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많은 식구들과 동거하게 하였지.
대부분의 신부가 그렇겠지만 영윤이도 오빠를 온통 독차지하고 오빠에게만 애정을 보내고 싶을 때가 종종 있을 거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얻은 후 개인에 대한 사랑을 성취하겠다는 오빠의 평소 말. 기억나?”
언젠가 우리들이 오빠하고 과외를 할 때 오빠가 하였던 말 같았다.
그 당시는 우리들 모두가 그 뜻을 몰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하였던 말은 당시의 그의 품성 속에서 족히 내옴직한 말이었지만
한 개인을 사랑하는 그의 연인이 듣기에는 다소 거북한 말일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 민중이나 민족이나 자유, 민주 이런 말들이 성황을 누리던 시절.
한 젊은이가 비장하게 내뱉었던 말을 나는 지금 비장하게 다시 되뇐 것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지.”
노진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오빠가 그런 사랑을 성취하였으면 좋겠어.
영윤이는 정말 헌신적이잖아.
사실 그렇게 하기 쉬운 거 아니란 거 오빠도 잘 알고 있지 않아?”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는 그렇게 커피를 한 모금씩 더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 나는 이런 생각을 다 할 줄 정말 몰랐다.”
오빠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그냥 가는 거야.
오빠도 영윤이랑 며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편안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랑하고 그렇게 좀 보내.
아, 나는 정말 큰 맘 먹은 건데. 전혀 기뻐하지 않으니 좀 서운하네.”
내 말에 노진오빠가 빙긋 웃었다.
“고맙다. 고맙다.”
노진오빠의 말은 별로 감정이 깊게 개입되지 않은 그런 말들이었다.
나는 좀 개운하지가 못한데 오빠가 “영윤이가 아무 말 않니?”
“무슨 말?”
나는 영윤이가 나를 찾아왔던 생각을 하면서 시침을 떼었다.
“우리 사실 별로 안 좋다.”
“왜? 영윤이가 너무 힘들어 해?”
“힘들기야 하겠지. 본인도.”
나는 그런 말의 뜻을 영윤이 살아가기 힘겹다는 그런 말로 들었기 때문에 그저 노진오빠의 말뜻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 가끔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다.”
“이상한 착각?”
“누군가 우리 집에 전화를 하는데 그 전화가 자꾸 끊어지는 거야.
나는 처음에 경찰이나 뭐 그런 데서 도청을 하는 줄 알았다.”
장기수가 석방이 되고도 보호관찰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끔 전화를 하다가 화들짝 끊고는 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람에게 어떤 남자가 있는 모양이야.”
나는 노진오빠의 말을 들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돼.
오빠 영윤이는 지금 임신 중이야. 몰라서 그래?”
“그래.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는 거야.”
“나는 오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영윤이가 집을 나가서 늦게 들어오고 때로는 전화기를 들고 끊고 하는 것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는 재 발신을 한 번 눌러보았어.”
“재 발신이라니?”
“그 사람이 오랫동안 은밀하게 전화를 하고 있었지.
나는 그게 좀 걸려서 그 전화로 재 발신을 눌렀는데 어떤 남자가 받는 거야.”
“그럴 수도 있잖아. 그게 뭐?”
“그게 그런데 핸드폰인 것 같았어.”
“그래?”
“사실 우리 집에 전화요금이 꽤 나오는 편이야.
그리고 통신 요금도 좀 많이 나온다.”
“그래? 거기는 식구가 많잖아?”
“그런데 우리야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일은 별로 없지.”
노진오빠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너 채팅이란 것 알고 있니?”
“알지. 컴퓨터로 대화하는 것 말이지?”
“그래. 그 사람이 아마 채팅을 하는가봐.”
“하하, 채팅?
영윤이가 그렇게 컴퓨터를 잘 다룬 단 말이야?”
“사실 그거 컴퓨터 잘 다루는 것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어.
그냥 이야기 같은 통신 프로그램으로 접속만 하는 건데 뭐.”
“아, 그렇구나. 오빠가 근데 그 걸 어떻게 알았어?”
“그 사람이 회사에 다닐 때부터 아마 채팅을 좀 한 모양이야.
얼마 전부터 우리 집 전화가 자주 통화중이 되잖아.
그래서 나는 전화기가 잘못 놓여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고 또 우리 집에 텔 요금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어.”
“그래?”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나도 궁금해. 내가 잘못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오빠의 말을 들으면서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신을 하는 것과 영윤의 전화나 그런 것이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남자하고 무슨 상관이야?”
내 말에 오빠가 “아마 그 사람이 텔에서 남자를 만나는 가봐.”
“거기서 남자를 만나? 그래? 그게 뭐?”
나는 통신을 제대로 몰랐으므로 동문서답을 하였고 노진오빠가
“거기서 그 사람이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또 그 남자들 중 한사람과 전화도 하는가봐.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아주 꽤 친한지. 너무 자주 너무 많은 대화를 해.”
나는 노진오빠가 얼핏 의처증 증세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 옛날 용섭이네가 그랬다.
밖으로 내 놓는다고 해도 하나도 빼어난 인물이 아니고 어디로 보나 남자를 만나거나 바람하고는
거리가 먼 용섭이 엄마가 가까운 가게만 가도 의심을 하고 또 때리고 그랬던 그 시절...
결국 용섭이 엄마는 무지막지한 남편의 매를 견디다 못하여 정신을 놓아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굿을 하고 정신병원을 가고 온갖 노력을 하여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그들은 다시 그 악순환을 계속하였던 것이었다.
“그거 오빠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아니야?”
나는 오빠 앞에서 의처증 소리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야.
게다가 그 사람 메일도 자주 쓰고 나는 정말 그 사람이 왜 그러는 줄 모르겠다.”
“오빠, 나는 잘 모르지만 통신하는 거야 어때? 뭐 온라인상으로 대화하는 것 나쁜 것 아니지 않아?
근데 전화하는 것은 좀 그러네.”
“그게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고 또 그랬는지도 모르지.”
“말도 안돼. 영윤이는 지금 임신 중인데 누가 봐도 티가 나는데 어떻게 그런 추정을 하는 거야?”
나는 노진오빠의 그런 모습이 좀 짜증스러웠다.
적지 않은 기간. 감옥에 살던 그는 어떤 때 보면 그 당시의 그 순수한 모습이 그대로 일 때가 많았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대개는 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모습이 어느 때는 꽤 눈치 없는 사람이거나 어떤 때는
염치없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까?
나는 지금 노진오빠가 보이는 모습이 세상과 너무 오래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사람 돈만 있었으면 아마 벌써 내 곁을 떠나갔을 거야.”
갑작스러운 오빠의 말에 나는 얼마 전 영윤이가 내게 돈을 해달라고 하던 그 생각이 났다. 사실 내가 여행권을 마련한 것도 영윤이가 그렇게 말하였기 때문이 아니던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빠 아무런 증거도 정황도 모르면서 그렇게 영윤이를 말해도 되는 거야?”
나는 그러면서도 좀 짜증이 났다.
나하고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촌동생이지만 그래도 영윤이는 감옥에 갇혀 한치 앞을 내다 볼 상황도 아닌 때
정말 헌신적으로 오빠를 사랑하였고 또 옥바라지를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영윤이가 벌어 놓은 돈은 그간 오빠를 면회하면서 다 써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마련해 준 집에 지금 노진오빠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오빠의 말을 들으면서 슬그머니 화가 났다.
“아닐 거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오빠는 확인해 본거야?”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오빠가 주춤하였다.
“확인해. 직접 물어보란 말이야.
오빠 혼자 판단하고, 오빠 혼자 오해하고, 오빠 혼자 판단하는 거 너무 한거잖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야 해.”
노진오빠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집으로 들어서는데 거기 마당에서 아들아이를 안고 서성이는 남편이 있었다.
“왔어?”
아들아이가 와락 울면서 나에게 안겨왔다.
며칠을 아이를 놓고 어디를 다녀온 일은 내게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우는 아이를 안아 달래면서 한 번도 나를 외롭게 한 적이 없던 우리 엄마가 떠올라 목이 메였다.
“어떻게 됐어? 가신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어서 들어가자.”
남편이 허둥대며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안색이 안 좋아요. 너무 피곤하셨나봐.”
아줌마가 얼른 우유를 가져왔다.
“그간 혼자 너무 힘드셨지요?
아니예요.
그래 여행은 즐거우셨어요?”
아줌마가 무심히 묻는 것을 보고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애써 그런 것을 감추며 돌아서는데
“찰밥 할게요.”
팥을 많이 넣은 찰밥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아줌마의 배려였다.
상궁할머니들과 지내면서 불협화음도 많았지만 그런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식구들과는 오히려 많이 편해졌고
살림을 도맡아 준 덕분에 나는 이런 구옥에 사는 것이 거의 불편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장독대를 닦고 집안을 치우고 밥을 하고 또 다림질을 하고 덕분에 살림 한 번을 안 하고
자라온 내가 이 큰 집을 무리 없이 간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도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밖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가보아야 하는데…”
“나 갔다 왔어.”
남편이 말하였다.
“그래요?”
“응. 이제 괜찮아.
경찰서에 가셨지만 구속하거나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어.
다만 그곳에서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아.”
남편이 다시
“초안산에 골프연습장을 짓는다잖아.
거기 있는 묘들을 훼손하고, 거기 있는 나무며 숲을 밀어 몇 사람만을 위한 골프연습장을 짓는다는 건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에서는 초안산이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아주 중요하고
또 그 산에 살고 있는 동식물을 보호하려고 하는 의도인데 아버님은 좀 입장이 다르시지.”
“입장? 어떤 거?”
“거기를 밀어내면 거기 지맥이 잘린다는 것 같아.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한 부분이 훼손을 당하면 조부님 묘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니 그렇지.”
“그래서 나오신 거야?”
“응, 바로 나오셨지.
그런데 우리는 혈압 때문에 너무 걱정을 했거든. 근데 까딱없으시더라.”
“정말요?”
“그래.
이성훈 선생님이 정말 제대로 시료를 하셨는가봐.
지난번에도 형님이 바로 혈당을 재시고 혈압 체크하는데 모두 이상이 없으시더라 는데.
이번에도 그러셨대.
정말 그 분이 명의긴 하신 가봐.”
“그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