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iat, 1960∼1988)는 브루클린 태생의 아이티섬의 스페인계 화가이다. 그는 17세기에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을 하였지만, 현재 낙서화가로 같이 활동하는 모든 인재들 중에 가장 혜성같은 스타이다.
1980년 여름에 '타임즈 광장 전람회'의 전시 참가로 비평가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 전시 직후에 바스키아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방법을 개척해 나갔다. 그래서 곧 그의 드로잉은 거리의 산뜻한 그래픽 이상의 어떤 것-실제로 그것은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에게 한정된 것 같아 보였다-을 드러내 보였다.
색채를 먹인 바스키아의 미술은 거대하고 평면화된 아프리카의 가면같은 얼굴을 가진 도식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그러한 인물들은 단어와 문구, 화살표와 눈금, 왕관과 활기차게 살아 숨쉬고 있는 배경과 대비된다.
폴케와 살르의 해체주의적인 미술과 마찬가지로 통일성이 다양한 기호, 상징들간의 어떤 논리적인 관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약 그러한 통일성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매우 많은 상충된 요소들이 방출되는 보편화되어 있는 떨림속에, 그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가진 설득력 있는 거칠음 속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드로잉과 색채, 구도를 운용하는 그의 개성적인 양식을 차치하고라도 바스키아의 뛰어난 재능은 원시주의와 세련됨, 즉흥성과 제어력, 기지와 야만성 같은 상충된 힘들의 균형을 잡아내는 어떤 선천적이며 배워서 터득할 수 없는 그런 감각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바스키아는 기존의 회화개념을 초월한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표현성을 확장하고 화가의 관심을 내면적인 측면에서 더욱더 자서전적이며 나아가 자신의 부분인 환경과 사회, 정치로까지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의 업적은 회화의 권위와 그로 인한 무거운 짐을 벗겨주었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수하고 고귀한 순결함의 솔직한 아름다움은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고 자신의 환경에 대해 받아들이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희망이 엿보인다.
1985년 검은 피카소 뉴욕타임즈 표지 선정 1983년 휘트니비엔날레 최연소 미술가
낙서화(Graffitti)란 가장 소외된 곳에서 파괴적인 그리고 사회제도의 규제에 대한 영웅적인 도전행위로서 단순히 문화 파괴행위(Vandalism)으로만 간주 되었었다. 즉, 낙서를 통한 자기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는 절박한 자기표현과 자아증명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1971년 처음 등장한 'Taki 183'이 지하철 내부에 수없이 쓰여지자 시민들은 그 낙서에 익숙해지고 '뉴욕'지에서 조롱하듯한 취지에서이었지만 어쨌든 'Spin'이란 낙서를 최고 디자인으로 선정 발표하고 이어 낙서 그룹들간의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1975 년도 거리의 낙서화를 모은 최초의 전시회가 '아티스트 스페이스'에서 열렸다. 그후 1981년 '뉴욕/뉴 웨이브' 전시부터 확고한 위치를 갖게되며 언더그라운드 영화배우들이 이스트 빌리지에 'Fun'갤러리를 열어 마침내, 1983년 뉴욕 시드니 제니스 갤러리에서 후기 낙서화라는 전시회로써 고급예술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Writer’, ‘Burner’로 칭하고 사이 톰블리, 프랭크 스텔라, 장 뒤뷔페, 잭슨폴록, 그리고 멀리 피카소와 뒤샹에 이어 그들이 실험하지 못한 '대 사회적인 시도'를 성공하게 된 것이다.
첫댓글 요절했지만 소수의 자존을ㅈ 영원히 남긴 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