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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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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7월호와 흰어리연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79 15.07.07 04: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장마의 영향으로 밖이 어두운 아침

‘우리詩’ 7월호를 편다.

 

밤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지만

꼭 맞을 것 같지는 않다.

 

오늘 할 일은 특별한 것이 없어

차분히 시나 몇 편 읽고

밀린 원고나 뒤적이려 한다.

 

우선 블로그에 시 몇 편 옮겨

흰어리연과 함께 올린다.

   

 

♧ 오색딱따구리 - 나석중

 

오색딱따구리는 장하다

 

장하다는 말은 모든 찬사를 요약한 말

오색딱따구리 부리가 쳐대는 천둥소리에

굼벵이는 이미 기절했을 것이다

오색딱따구리는 죽은 나뭇가지에 숨은 먹잇감을

무슨 돋보기로 찾는지, 귀신이다

저 고된 삶도 아름답다

아래에서 저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올려다봐도

오색딱따구리는 오불관언

오색딱따구리는 내가 불편부당함을 알고 있다

오색딱따구리는 쿵쿵 산의 정적을 울리며

오색딱따구리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오색딱따구리는 부모다

 

 

♧ 사라진 것들을 위한 소곡 - 최윤경

 

길게 하늘로 손을 뻗은 나무가

땅을 보며 웃는다

흔적의 돌들이 여기저기서

하느적하느적

무덤처럼 꿈이 고여

사라진 시간을 읽어 주면

정지된 발길 어디 둘지 몰라

맴맴 주위를 돌다가

하얗고 노란 민들레

냉이꽃 제비꽃

헌화처럼 수놓은 자리

그만 온몸이 부동자세다

뉘라서 세월을 잡아놓을 수가 있을까

다만 지켜주지 못한 시간들이

그렇게 아픈 상처로 남아

깊이 박힌 못처럼

사는 일이 모두 사라지는 일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일

그래서 헛되고도 헛되다

의미 없는 웃음이 허공을 돌아

하늘 길 열어

천천히 따라오라며

줄 하나 그어 놓고 사라졌다

   

 

♧ 독립문 횡단보도에서 - 장수라

 

걸어가는 양이 10도쯤 기울어진

박스 손수레 할아버지

횡단보도도 아닌데 버스 택시를 비집고

길을 빠르게 건넌다

바퀴에 무게를 싣고 가벼워진 날갯죽지

속도를 낼수록 몸의 기울기는

도마 위 통통 잘려나가는 무편처럼 어슷어슷

몸의 관절은 끊어졌다 이어지는 무성영화처럼

석양빛도 슬픈 기울기로 어스름해지는 저녁

하늘을 나는 돌부처의 모가지처럼

건너는 발은 없고 굽은 등이 바퀴로 굴러간다

   

 

♧ 귤 - 이무원

     - 서하일기 80

 

“이것은 서하 먹고

이것은 할아버지 먹고”

냠 냠 냠

(먹다 보니까 귤이 한 개 남았다)

“서하야, 이 귤은 누가 먹을까?”

“이럴 땐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거야, 알겠지”

“그거 좋겠다”

“그런데 서하가 지면 다시 하는 거야.” 서하가 토를 단다

(서하는 가위, 할아버지는 바위)

“하버지가 이겼네”

“서하가 지면 다시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

(이번에는 서하가 제일 잘 내는 가위를 생각해 하버지는 보를 낸다)

“서하가 이겼지. 이것은 서하 꺼야”

(우쭐대며 귤을 집어든 서하)

“이거 두 개가 쌍 붙었네.

할아버지

우리 사이좋게 나누어 먹자”

“고마워”

   

 

♧ 초록을 동봉하다 - 임송자

 

나무의 맨몸에서 잎이 돋을 때

첫니가 돋을 때처럼

근질근질했는지 몰라

한 뼘씩 세상 밖으로 푸른빛을 밀어낼 때

아가의 첫 걸음마처럼

아슬아슬했는지 몰라

 

나는 오래도록 헛발을 디디며 살아왔다는 생각

어림짐작으로 세상을 살아왔다는 생각

잎사귀 하나의 초록을

진종일 재고 또 재는 자벌레만도 못한 거 같아

가만가만 불편을 견디다가

그래도 꿈이 달았던 거꾸로 아주 먼 나에게

오월의 찬란한 초록을 동봉하고 싶은 것이네

   

 

♧ 들꽃 - 김청광

 

들꽃을 보려면

몸을 낮추세요

 

들꽃의 향기를 맡으려면

몸을 굽히세요

 

몸을 더 낮추면

들꽃의 비밀도 들을 수 있답니다

 

들꽃 같은 아내가

들려 준 말입니다.

 

 

♧ 단풍나무 아래 잠든 그 남자 - 공계열

 

산책을 하려고 집 앞 공원에 갔다가

햇빛을 되쏘는 붉은 단풍잎이 반짝 눈에 매달리는 순간

단풍나무 아래 멈춘 눈길 뗄 수가 없다

벤치 밑으로 바짓가랑이 쭉 뻗어놓고

낙엽을 깔고 누워 푸근하게 잠든 남자

검은 파카는 땟물에 절어 반들거리고

풀려 내려온 회색빛 스웨터의 보푸라기 몇이

꼬불꼬불 손등을 덮었다

검은 바지 솔기마다 희끗희끗 비저 나온 솜 알갱이들

국숫발처럼 내리는 한낮의 햇살이 남자의

온몸에 붙어 광택을 만들고 있다

단풍나무는 몇 남지 않은 잎으로 그의 누추한 몸을 가리느라

그림자를 만들어 이리저리 기워 붙이고

얼굴은 벌겋게 녹이 일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는

차양이 위로 말린 카우보이 갈색 모자로 눈을 가리고 있다

공원은 조용하여 낮은 둔덕에 선 내 시선을 비키지 못 하는 그 남자뿐

겨울을 재촉하는 11월의 햇살은 구릉으로 모여 낙엽을 데우고

데운 낙엽은 쌓여 서걱거리며 바스라진다

바람이 손사래 칠 때마다 나뭇잎은 그의 잠 속으로 비처럼 쏟아져

늦가을 그 남자의 낮잠은 하도 깊어 몇 십 년 빗속에 누워있다

삶의 두꺼운 얼음판을 편자도 없이 걸었을 먹칠한 흰 운동화 그 남자

잠이 깨면 황야를 달려갈 쇠잔한 카우보이 그 남자

지금은 낙엽 속에 묻혀 이따금 불어오는 천상의 음계를 간절히 짚고 있는

단풍나무 아래 잠든 그 남자

   

 

♧ 폭풍이 지나간 자리 - 임미리

 

태초의 고요함을 쓸어버릴 듯

괴기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과수원

하늘 위로, 나무 위로 폭풍이 몰려온다.

나무들의 시선, 안절부절못하고 휘청거린다.

폭풍, 날개를 움직여 나무의 뿌리까지 흔든다.

나뭇잎 떨어지고 가지가 찢겨져 나간다.

어찌하지 못하는 절망의 시간을 뒤로 하고

꿈속을 거닐 듯 거짓말처럼 주위가 고요로 물든다.

햇살을 불러들인 나무는 과일을 익힌다.

찍어진 가지에 매달린 과일, 나무는 더 정성을 들인다.

아프고 못난 자식에게 애잔한 마음을 쏟듯

뼈로 묻혀도 자식을 잊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처럼

나무의 저 모습, 어디서 본 듯 아슴하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이제는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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