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고레띠(1890.10.16~1902.7.2)는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조차
못 다녔고 글도 몰랐다.
그 당시 첫 영성체는 보통 12살때 하는데,
11살때부터 그렇게 첫 영성체가
하고 싶어 자신에게 주어진 농장일과
집안일 다하고도, 농장(집)에서 많이 떨어진,
읍내보다 거리가 먼 '곤가'라는 곳에
글을 읽어 주고 교리를 가르쳐줄
아주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근 열달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주일마다
그곳을 다녔다.
그래서 결국 첫고백과 찰고때
'내 일찌기 글을 모르는 아이로서 이렇게
교리를 잘 아는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라는 Slgnori 신부님의 칭찬을 듣는다.
그때부터 첫 영성체 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단정히 갖기로 마음 먹고,
그전보다 더 많은 묵상과 기도,
그리고 집안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집안 식구들, 동네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희생, 봉사의 정신을 실천한다.
아버지가 죽고난 뒤에 늘 우울하고
침묵만 지켰던 마리아 고레띠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이웃 사람들도 마리아 고레띠의 희생과
봉사의 정신에 감동해서 마리아 고레띠의
첫영성체를 도와주기로 했다.
너무 가난해서 준비할 수 없었던
첫 영성체날 신을 신발, 미사수건 그리고
머리에 쓸 화관을 다 이웃들이 준비해 준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결혼 선물인,
단 하나 남은 귀걸이를
마리아 고레띠에게 걸어준다.
그날 12명이 첫영성체 하는데,
많은 이들이 축복해 주러 온다.
예수 고난회 Jerome 신부님은
첫 영성체 미사때 이런 강론을 하신다.
'오늘 첫 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가 오늘 여러 어린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의 소박한 영혼을
끝까지 보존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죄를 범하기 보다 오히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죄없으신 성모님께 매일 저녁 성모송을
세번씩 바칠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오늘 첫 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을
축하하러 나오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웃 어른들께도 이 어린이들이
훌륭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많은
기도 부탁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이 마리아 고레띠의 마음속에
불길같이 살아 움직이자 마리아 고레띠는
마음속으로 주님께 다짐했다.
'내 마음에 일이 있더라도 죄는 짓지
않겠습니다. 죄짓는 일이 있으면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겠습니다.'
첫영성체 하는 순간, 마리아 고레띠의
몸과 마음은 몹시 떨렸지만, 첫영성체 하는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온 마리아 고레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드디어 저는 당신을 모셨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게 하여 주소서.
하느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이제 저는
마리아가 아니라 당신의 딸 마리아입니다.
어떤 고통도 시련도 이제 다 참을 수 있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희생 정신으로
살겠습니다.'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은 첫 영성체를 한
마리아 고레띠를 꽃가마에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마리아 고레띠안에 모셔진 예수님이
자신들의 동네를 강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마리아 고레띠의 생애에 첫고백후
은총 지위에서의 첫영성체가 얼마나
중요하며, 영성체를 통해 주님과
일치하는 것이 바로 지상에서의 천국임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모신 마리아 고레띠는
또 하나의 감실이 되고, 또 하나의
성모님이 되고 계약의 궤가 된 것이다.
바오로딸에서 나오는
마리아 고레띠 DVD 흑백 영화를 보면
참으로 감동적이다.
올해 4월 19일에 내가 수녀님 세분과
함께 네뚜노의 성녀 마리아 고레띠
성당에 순례를 했는데,
이태리에서 새롭게 만든 칼라 영화가
새롭게 만들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이런 마리아 고레띠에게
드디어 시련과 마귀의 시기, 질투와
죽음이 점점 엄습해 온다.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죠반니의 아들,
17살의 알렉산더가 호시탐탐
마리아의 순결을 노렸다.
몇 차례 순결을 범하고자 시도했지만,
마리아의 기지로 실패하자
미리 위협하기 위해 준비해둔 단도로
마리아 고레띠를 14군데 찌른다.
배 4군데, 가슴 5군데, 또 다른 곳에 5군데,
14개의 십자가가 새겨진다.
로마에서 한시간 걸려 도착한 네뚜노 역(驛)
기차길 옆에는, 안에 까만 십자가가
새겨진 양귀비꽃을 심어 놓았다.
내장은 찢어지고 폐는 완전히 뚫어졌으며,
심장은 칼이 옆으로 빗나가 지나갔다.
마리아 고레띠는
혹시 잘못이 있을지 모르니까,
고해성사를 의식이 있을 때 본다.
마리아 고레디는
수술대 위에 조용히 눕혀지고,
병원 원목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용서를 묵상하며,
저 알렉산더를 용서해 주라.'
나는 수녀님들과 그 당시 병원에서
죽기 전에 용서의 기도를 바친 곳에 있는
경당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내 사제 생활 동안
용서해야할 모든 사람들을 떠올리며
용서의 기도를 바쳤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적 가치관에 대한
믿음과 추종으로써
내가 하면 되는 쉬운 기도이다.
자존심을 버리면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상 기도를 떠올리며
바치면 되고, 예수님께
그들을 다 의탁하고 맡기면 된다.
나는 마리아 고레띠처럼 그들도
나와 함께 천국에 있기를 기도했다.
본성을 본성으로, 악(惡)을 악(惡)으로
갚지 않고, 선(善)으로 사랑으로
악(惡)을 이기는 기도를 바치고,
모두를 주님께 바치며 부족한 부분을
주님께서 채워 달라고 의탁하니
마음 속에 큰 희열이 왔다.
그리고 이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특별한 중재와
전구를 청했다.
화해(reconciliation)는
둘이 만나서 따져야 하고 풀어야 하지만,
용서(forgiveness)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내가 예수님의 복음적
가르침을 따라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마리아 고레띠는
임종의 순간에 '신부님! 용서하겠어요.
알렉산더를 용서하겠어요.
그리고 이후에 그와 하늘나라에서
만나기를 바라겠어요.' 라고 말한다.
마리아 고레띠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친다.
'예수님! 저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을때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런 고통도 당신은 다 참으셨는데,
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잠시 후 마리아 고레띠는
병자성사와 성체성사를 모시고,
12살 꽃다운 나이에
1902년 7월 2일 운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47년 4월 27일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시복되고,
1950년 6월 24일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어머니와 자신을 살해한 알렉산더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성이 된다.
우리가 7월 6일 성녀의 축일을 보내지만,
성녀 마리아 고레띠가
장렬하게 자신의 정결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것은 누구 때문이며,
그 순교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첫영성체때에 들은 Jerome 신부님의 강론
말씀대로 예수님 때문이며,
첫영성체의 의미와 성체성사를 모신다는
뜻을 너무나 잘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교적 많이 전해진
이 시대는, 하느님 아닌 자연을
숭배하거나 잡신들을
숭배하는 지적 우상(知的 偶象)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반면에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靈的)인 분이시기 때문에,
이 시대는 하느님께 돌려야 할 마음과
정(情)을 온통 사람과 육(肉)의 쾌락에
쏟아 버리는 정적 우상(情的 偶象)을
섬기는 시대이다.
인간이 하느님이 되어 버렸고,
윤리 의식의 실종으로
인간들은 자신의 기분대로, 느낌대로,
감정대로 일을 저지르고, 책임을
도무지 지지 않는,
자기 감정 통제 무방비 시대를
지금 살고 있다.
하느님 말씀의 빛, 성령의 빛,
신앙의 빛을 받은 바른 이성(理性)으로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항상 주님께서
제시한 빛과 진리,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데,
지금 이 시대는 그렇지가 않다.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 자신을 올려 놓고 섬기며,
하느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 자신에게
돌리는 극도의 인본주의(人本主義)인
세속화(secularization)와 교리적,
성경적 무지 때문에, 이 시대 사람들은
양심이 둔화되고 소멸의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하느님도,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죄(罪)에 대한 무감각과 더불어
하느님을 의식하지도 않고 무시하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끊임없이
밖으로 제거하며, 자기 멋대로,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젊은이들에게
12살의 동정 순교자 성녀 마리아 고레띠는
죽어가면서 무엇을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고 있는 것일까?
교회는 왜 이 어린이를
20세기의 성인으로 선포했는가?
깊이 묵상해 볼 일이다.
오늘 그토록 오고 싶었던
성녀 마리아 고레띠 성지를 순례하면서
참 복된 은총의 순례, 영적 피정과 같은
순례를 해서 너무나 행복했다.
성녀 마리아 고레띠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던 날이
바로 한국에서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난 날이기에
나는 이 성녀를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