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짧지만 굵은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 두 편을 읽었단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책으로
<체스 이야기>와 <낯선 여인의 편지> 두 편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그가 쓴 책들을 하나 둘 모았는데 그 중에 하나란다.
이야기꾼 슈테판 츠바이크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두 작품이었단다.
1. 체스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는 <체스 이야기>란다.
체스는 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루는 단골 소재란다.
아빠도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드라마 <퀸즈 갬빗>이 생각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체스이야기>를 읽을 때 그 드라마가 간혹 생각이 나더구나.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그러듯이 이 작품에는 천재 체스 기사가 나온단다.
남슬라브의 작은 도시에 뱃사공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미르코 첸토비치라는 소년이 있었어.
어떤 신부님이 첸토비치를 양자로 거둬들여 보살펴 주었지.
그 소년이 말을 어눌하게 하고 좀 모자라 보였단다.
그런데 신부님이 다른 사람과 체스를 두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배웠는데
그 실력이 정말 뛰어났어. 당시 첸토비치는 열다섯이었어.
신부님은 첸토비치의 체스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바로 알아보고
그에세 체스를 가르쳐주었는데
곧바로 남슬라브 지역의 모든 체스 고수들을 꺾으면서 유명해졌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되었단다.
뉴욕에서 경기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 위에 배를 탔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초반이라서 비행기가 아니고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시절이란다.
이 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도 같이 타게 되었단다.
‘나’는 호기심에 많은 사람으로 그가 탄 배에
체스 세계 챔피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체스를 두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그와 체스를 두려면 큰 돈이 필요했어.
탑승객 중에 매코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어.
‘나’는 매코너에게 첸토비치 이야기를 하자,
돈 많은 매코너는 바로 첸토비치를 찾아가 체스 경기를 성사시켰단다.
아무래도 첸토비치는 세계챔피언이니, 매코너는 혼자가 아닌 팀을 이루어 하기로 했어.
물론 ‘나’도 참가를 했지.
그렇게 첸토비치 vs 매코너 팀의 체스 경기가 열렸는데,
1차전은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에서 역시 매코너 팀이 불리하게 흘러갔는데,
구경을 하던 B박사라는 사람이 훈수를 두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단다.
갑자기 나타난 B박사라는 사람에 관심이 쏠렸어.
B박사는 지난 30년간 체스를 둔 적도 없다고 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계챔피언을 상대로 무승부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B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B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어.
B박사는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에 1년간 갇혀 있었다고 했어.
그 고립된 생활은 B박사에는 큰 고통이었어.
미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어.
감금생활은 그를 미치게 하기 일보직전이었지.
어느날 간수의 대기실에 있게 되었는데,
간수의 외투 주머니에 있는 책을 한 권 훔쳤어.
그 책은 체스 게임을 기록한 책이었단다.
체스에 관심이 없던 B박사는 그 책이 체스에 관한 책이란 걸 알고 크게 낙심했어.
B박사는 그 책이라도 봐야겠다며,
그 책에 나와 있는 체스 게임들을 모두 통달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는 혼자 상상으로 체스를 둔 거야.
그렇게 감금해있으면 머릿속에 온통 체스 생각만 해서 체스중독증에 걸린 것 같았어.
신경과민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까지 갔단다.
그런 연유로 B박사가 지난 30년간 체스를 두지 않았는데도,
체스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 다시 첸토비치와 B박사와 일대일 체스 경기가 펼쳤는데
그 경기에서 B박사가 이겼단다.
B박사는 흥분하기 시작했어.
첸토비치와 B박사가 다시 체스 경기를 했는데,
B박사의 증상을 유심히 보던 ‘나’가 B박사를 설득하여 게임을 포기하게 했단다.
왜냐하면 체스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B박사를 말리지 않으면 신경 과민 증상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 같았어.
그렇게 B박사의 포기로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체스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B박사의 이야기가 체스 기술을 터득하는 방법이
오늘날 인공지능이 기술을 터득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구나.
그리고 B박사의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나서 다소 아쉬웠단다.
이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B박사의 뒷이야기도 없겠구나.
아빠의 헛된 바람이겠지만,
이제 와서 뒤늦게 그의 유고 중에 B박사의 뒷이야기가 발견되었으면 좋겠구나.^^
2. 낯선 여인의 편지
두 번째 작품 <낯선 여인의 편지>는
어떤 여인이 유명 소설가 R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시작부분은 그 소설가의 열렬 팬의 팬심 담긴 편지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소설가를 욕하게 되더구나.
유명 소설가 R은 마흔한 살이란다.
마흔한 살 생일날 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단다.
무려 스물네 장이나 되었어.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에게”로 시작했지.
편지 쓴 여인은 최근에 자신의 아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어.
여인이 13살 때 빈에서 처음으로 소설가 R을 알게 되었대.
여인이 살고 있는 건물로 소설가 R이 이사를 왔던 거야.
13살이던 여인은 한 눈에 소설가 R에 사랑에 빠졌지만 속으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R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그의 발자국 소리도 사랑했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의 재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인은 심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어.
소설가 R과 멀리 떨어져 인스부르크로 가야 했거든.
18살이 되었을 때 여인은 독립하겠다면서 빈으로 돌아왔어.
빈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은 핑계였고, 소설가 R을 보기 위해서 빈에 온 것이었어.
매일 그의 집 앞에서 창문으로 바라보았어.
우연히 그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몇 번을 마주치고서야 소설가 R은 여인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단다.
여인은 흔쾌히 저녁을 함께 하고,
그 이후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단다.
여인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거야.
‘매일’ 만났다고 했지만, 3 일이 전부였어.
3일 뒤, 소설가 R은 여행을 간다면서 당분가 연락하지 못한다고 했어.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연락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단다.
그런데 그 3일간의 사랑으로 인해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었단다.
소설가 R을 다시 찾아가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버림받고 아이를 지우라고 할까 봐 여인은 혼자 아이를 낳았단다.
돈도 없어서 보호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어.
편지 첫 부분에서 여인의 죽은 아이가 이 아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편지를 읽는 소설가 R도 그렇게 느꼈겠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까?
여인은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잘 지냈단다.
여인의 외모가 뛰어나서 여러 번 청혼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단다.
혹시나 소설가 R에게 연락이 올까 봐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단다.
어느날 오랜 만에 친구와 클럽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소설가 R을 다시 만났단다.
그런데 소설가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여인을 꼬셨단다.
그렇게 여인과 소설가 R은 다시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전히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단다.
소설가 R이 얼마나 많은 여인과 이런 짓을 했는지 알겠구나.
그러니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지.
이번에도 소설가 R은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어.
거기에 여인에게 돈까지 주어 모욕을 안겨 주었단다.
이런 못된 놈.
여인은 가난하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11살이던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제 여인의 삶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어.
소설가 R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도 죽고 말았지.
여인은 이제 자신도 죽을 거라고 했어.
매년 소설가 R에게 생일마다 보낸 하얀 장미를 보낸 것도 자신이라고 밝히고,
이젠 못 보내니 스스로 장미를 사라고 했단다.
그렇게 편지는 마무리되었단다.
…
이 소설은 독자가 소설가 R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이 편지를 받은 것처럼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더구나.
그렇게 감정이입되어 읽다가 죄책감과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 들었다면,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소설가 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할 거야.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합리화를 하겠지.
아마 이 편지도 다 읽기도 전에 불 속에 던졌을 수도 있어.
소설가 R은 그런 사람이야.
…
자, 오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 남긴
<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책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은 늘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 확인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자정 무렵,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항 예정인 대형 여객선 위는 출발 직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여인을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생각하듯 육체 없이도 정열적으로 생각했다.
책제목 :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지은이 : 슈테판 츠바이크
옮긴이 : 김연수
펴낸곳 : 문학동네
페이지 : 168 page
책무게 : 218 g
펴낸날 : 2010년 03월 15일
책정가 : 10,000원
읽은날 : 2024.03.21~2024.03.22
글쓴날 : 202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