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 숙제좀 봐 주시고 나가세요."
1961년 5월15일 늦은밤.치밀하게 쿠데타를 준비해왔던 박정희 소장이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 부인 육영수 여사가 남편의
소매를 붙잡았다.쿠데타에 실패하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식들의 얼굴을 한번 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는 아이들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박 소장이
집을 나가자 육 여사는 남편과 교환했던 편지를 하나씩 불태웠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
했던 것.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육 여사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이희호 여사까지 8명
대통령 부인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가 출간됐다.
성장환경,결혼,자녀교육은 물론 최고 공직자인 남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전기형식으로 정리했다.
행정학 박사인 저자 조은희씨는 "시대마다 대통령
부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우리 여성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며
그들의 활동 역시 사회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강조
한다.무엇보다 최고 권력자의 아내 이전에 한사람의
여성인 8명의 인간적 면모가 눈길을 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부인 푸란체스카 여사는
절약정신이 대단했다.물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항상 손빨래를
했고,한번 쓴 비눗물은 모아 걸레를 빠는데 썼다.
특히 며느리 에게도 매일 가계부를 쓰게했고
보름마다 이를 검사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일본 유학파
출신의 재원이지만 내각제 하의 대통령인 남편의 위상을 고려해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했다.두 아이와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그는 청와대 안주인의 삶을 "조롱
(새장)안의 새"로 비유했다.지인들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유감으로 생각하는
일이 청와대 에서의 생활이었다고 털어놨을 정도.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유난히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인물이다.41세에 대통령 부인이 된 그는
취임식때 손을 흔들며 남편과 같이 식장에 들어섰다가 호된
비판에 시달렸다.대통령 몇발자국 뒤에서 내조했던 육
영수 여사모습에 익숙했던 국민이 정서적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성지와의 인터뷰에 명품시계를 차고나와
"명품족"으로낙인 찍혔고 해외순방때 고급의상을 싹슬이한다는
소문 때문에 투서도 받았다.본인도 이를 의식해 공식행사
때마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고민했으며 행사가
끝나면 비디오를 돌려보며 자신의
모습을 분석했다.
김옥숙 여사(노태우 대통령 부인)는 재임중 단
한건의 인터뷰도 하지 않으면서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기독교 신자인 손명순 여사(김영삼 대통령 부인)는
1987년 대선때 남편의 일요일 선거 유세를 막아 마찰을
빚었다.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였던 이희호 여사
(김대중 대통령 부인)는 퇴임 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최초의 대통령 부인이다.
첫댓글 아직도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디는 육영수여사 단연 으뜸이지유...아깝게 가셨지만...ㅠㅠ
정말 그렇지요? 공감.
견해와 이념의 차이겠지요.
장미두 전여사님들중육영수여사님꼐만 최고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