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소나무 엮어 오두막 짓고
김시습(金時習 : 1435~1493)
바위에 의지해 지은 작은 오두막
간신히 내 몸 하나 들어갈 만하네
낙엽으로 자리 삼고
마른 나뭇가지로 서까래 했네
소나무와 전나무로 지붕을 이으니
작은 방이지만 마음은 즐겁네
구름과 노을로 휘장 삼고
푸른 산은 병풍이 되었네
원숭이와 산새가 벗이 되어
내 마음돠 한마음이 되었네
나는 본래 방랑하는 사람
오히려 산수 간에 떠도른 걸 기뻐하네
만물의 성질에 길들여져
먹고 마시는 일은 마른 푸성귀에 依地하네
온갖 시련에도 변치 않은 맹세를 맺어
이러한 즐거움 다하지 않았으면
葺松檜以爲廬(즙송회이위려)
倚巖架小廬(의암가소려) 僅得容我軀(근득용아구)
落葉以爲氈(낙엽이위전) 枯査以爲櫨(고사이위로)
葺之兮松檜(즙지혜송회) 室小心愉愉(실소심유유)
雲霞爲帳幄(운하위장악) 碧山爲屛風(벽산위병풍)
猿鳥爲伴侶(원조위반려) 得我心所同(득아심소동)
我是放浪人(아시방랑인) 夷猶雲水中(이유운수중)
物性亦馴擾(물성역순요) 飮啄依枯叢(음탁의고총)
願結歲寒盟(원결세한맹) 行樂無終窮(행락무종궁)
[어휘풀이]
-葺(즙) : 깁다. (지붕)이다. 겹치다.
-愉愉(유유) : 좋아하는 모양
-帳幄(장악) : 한데에서 볕이나 비바람을 막도록 둘러친 막
-夷猶(이유) : 오히려 좋아하다.
-馴擾(순요) : 길들이다.
-枯叢(고총) : 마른 푸성귀. 叢(총) : 떨기(식물의 더부룩한 무더기)
[역사 이야기]
김시습(金時習 : 1435~1493)은 조선 세조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이름 시습(時習)은 논어의 첫 구 ‘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따온 듯하다. 저서로 『매월당집(梅月堂集)』과 우리나라 초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있으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등이 있다. 1782년(정조 6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영월의 육신사에 배향(配享)되었다.
그는 3세에 외조부에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다섯 살 때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아 오세동자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지녔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계유정란) 소식을 들은 후,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불사른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평생 전국을 방랑하면서 마음의 시름을 문학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밤, 온 장안이 세조의 포악성에 떨고 있을 때 그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담아다가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31세, 1465년(세조 11년) 봄 경주에 내려가 금오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칩거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쓰고 그 후 많은 한시를 남겼다. 그는 50대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1493년 5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는 심유천불(心儒踐佛)이니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고 인식되었듯이 그의 사상은 유불적인 근본 요소를 다 포용하였다. 그는 근본 사상을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시편만 2,200여 수가 된다. 역대시인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말한 시인은 김시습밖에 없었다고 한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
첫댓글 선생님 덕분에 한시의 매력에 조금씩 젖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