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과 멸시를 참으신 주님
베드로전서 2:18~21
요절:“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2:19~21)
찬송가 369장(죄짐 맡은 우리 구주)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그 당시 노예 출신 성도들이나 직장에서 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직업 윤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당시 누군가의 종이 되고 노예로 사는 것은 비인격적인 모욕과 멸시를 당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부당한 요구를 당하기도 하고 과중한 업무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까닭 없는 폭언과 모욕과 비방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인 종과 노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사도가 가르치는 말씀을 준 것입니다. 사도는 주인에게, 직장 상사에게 순종하고 불합리한 부당한 고단에 대하여 인내하라고 가르칩니다. 죄와 잘못으로 인한 처벌을 받을진대 마땅히 참아야 하지만 부당하고 말도 안되는 비방이나 멸시의 경우에도 잘 인내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습을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까닭없는 비방과 멸시와 참담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죄가 없으신데도 욕을 당하셨습니다. 가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욕을 당하여 욕으로 갚지 아니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묵묵히 견디셨습니다. 하나님께 아뢰고 문제를 맡겼으며 도리어 그 몸으로 다른 이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속의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본보기로 삼으라고 사도 베드로는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모욕과 멸시를 참으로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가 사역하면서 사람들을 고치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인간 말종으로 취급했습니다. 가장 변질된 혼혈인이라고 비천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예수님을 말한 것은 모욕적인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내쫓아주고 병을 고쳐주자 그를 향하여 귀신들렸다고 비방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면서 그를 믿으라고 권면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사역 말기에 대제사장 일파가 예수님을 체포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한 마리 짐승처럼 다루었습니다. 대제사장의 하인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예수님을 치면서 누가 때렸는가 맞춰보라고 선지자 놀음을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로마 군병들도 예수님에게 붉은 옷을 구해다가 입혀 왕복으로 입히고 머리에는 면류관 대신에 가시관을 씌우고 손에 금으로 만든 왕권의 상징인 금홀을 주는 대신에 갈대를 엮어서 그 손에 쥐어주고 그 앞에 엎드려서 절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하며 조롱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골고다 언덕에서까지 쫓아올라와서 예수님을 계속 조롱하였습니다. 그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자기들이 믿겠다고 놀려댔습니다. 지나가는 자들도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겠다고 말한 허풍장이라고 예수님을 놀려댔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완전히 벗겨져서 수치를 드러나게 하였고 십자가 형 자체가 최고로 악질인 죄수라는 표시였으니, 참으로 예수님은 온갖 모욕과 멸시를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모든 수욕을 견디셨습니다. 도리어 모욕과 비방과 멸시를 가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6:27,28 말씀에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 시대에 예수님의 예표로서 살았던 다윗 역시 모욕과 멸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다윗이 하나님의 징벌로 그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예루살렘 궁을 떠나 머리칼을 풀고 울면서 맨발로 요단강으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바후림이라는 성읍을 지날 때에 그 성읍에서 시므이라는 베냐민 사람이 나와서 다윗을 계속하여 저주하는 말을 퍼부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시므이는 지금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그토록 애를 썼으나 한번도 보복한 적 없고 그가 죽은 뒤에도 도리어 사울의 손자 미비보셋을 왕자처럼 자기 아들들과 함께 매일 밥을 먹게 했고 사울의 재산도 고스란히 므비보셋에게 넘겨주어 누리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윗에게 기가막힌 누명을 씌워 이렇게 모욕적인 말과 저주를 퍼부으니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지금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도 슬프고 괴로운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렇게 사실도 아닌 일로 일개 한 사람이 다윗을 모욕하며 저주하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에게 당장 보복하겠지만 다윗은 당장 건너가서 저 머리를 베겠다고 분노하여 나서는 아비새 장군을 뜯어 말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사무엘하 16:10~12)
그렇습니다. 까닭이 받게 된 저주와 멸시와 조롱 앞에서도 묵묵히 견디면서 도리어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저주와 멸시를 받고도 참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도리어 선한 것으로 갚아주시기를 바라는 다윗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다윗이 예수님의 예표라고 불릴 만한 대목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모습을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모든 백성 앞에서 머리를 들게 하시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날, 이전에 그를 저주하였던 시므이가 두려워져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장 먼저 다윗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잠언 12:16 말씀에 이르기를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부끄러움을 길이 참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처신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귀한 처신이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그의 삶 가운데 실천한 덕행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기억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부끄러움과 수욕과 멸시를 잘 참읍시다. 그러한 멸시와 비방을 겪을 때에 우리 주님께 조용히 기도합시다. 그 힘든 마음의 아픔을 주님과 함께 나눕시다. 주님께서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다독여 주실 것입니다. 잘 참게 해주실 것입니다. 도리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길 마음을 주시고 위하여 기도해줄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함으로써 우리 마음의 그릇이 더 넓혀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더 성숙한 그릇으로 빚어주셔서 삶의 가장 힘든 역경을 통하여 더 아름답고 복스러운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