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21:12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개역개정판)
대동맥은 심장으로부터 온몸의 장기로 혈액을 내보내는
우리 몸에서 가장 굵으면서도 중요한 혈관 가운데 하나이다.
대동맥이 찢어지면서 발생하는 대동맥박리는
현대 의학의 기술로서도 절반 이상이 현장에서 바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정도로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동맥박리는
급사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행 대동맥 박리와 대동맥 파열로 인한 급사의 위험이 커 후유증의 위험이 있는 하행 대동맥 박리로 나뉘는데,
문제는 이 하행 대동맥 박리도 내과적 치료를 시행하다가 주요 장기 손상이나 파열로 이어져서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에서는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겠지...
예방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여, 우리의 심혈관과 모든 장기를 강건하게 하옵소서.)
올해 7월 11일 미국 공화당의 거물급 인사였던 린지 그레이엄 (Lindsey Graham, 1955~2026) 상원의원이 우크라이나 방문 직후 세상을 떠났는데, 이 또한 후일 대동맥 파열이 사인으로 알려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일중독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과로와 스트레스는 언제나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적인 요소이다.
대동맥박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몸 속 폭탄 같은 존재이다.
쉽게 말해 ‘터지면’ 즉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초응급 질환으로 골든아워도 따로 없을 정도다.
그리고 지난 달의 마지막 날…
44세에 불과한, 어느 집사님 부부의 따님 수술 소식을 들었다.
뭐, 수술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염증 수치가 높아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늘 접하는 기도 제목들이 카카오톡에 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잠시 기도하고, 그저 내 삶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폐도 약해지고,
모든 건강상태가 나빠졌다는 이후 소식들…
수술은 잘 마쳤다고 하던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간절히 기도했다.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작년 10월에 김영신 집사님을 보내고
동일한 나이의 그 자매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믿지 않는 남편과 초등학생 딸, 남동생이 있었던
그리고
조용히 교회일을 감당하시면서
묵묵히 예배의 자리를 지키셨던 부부의 딸이었던
공무원이었던 그녀는, 수술 후에도 일을 해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에서 접한 부고 소식…
작년 말…
다시는 이런 슬픈 소식은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슬픔에 잠이 오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대답은커녕, 힌트도 구하기 어려운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에돔 사람들은
조상 에서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유다나 북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에 있었지만
다윗 왕의 정복 시기 외에는 전면적인 전쟁을 크게 벌인 적은 드물었고
유다가 강성할 때는 협조 관계, 또는 종속 관계에 있었으며
비실비실거릴 때는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왕하 8:22)
그런 그들이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 21: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개역개정판)
새번역성경을 보니 조금 더 이해가 쉬웠다.
사 21:11 이것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세일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 (새번역성경)
밤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
슬픔의 시간이 지나면 해방의 아침이 온다는 기대를 가진 물음이다.
그러나 파수꾼의 대답은 희망과 절망이 섞인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대답이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그러나 그 아침 뒤에는 또 밤이 온다.
앗수르 때문에 벌벌 떨었던
이사야 시절 주전 8세기의 바벨론은
무슨 연합 전선 펼치면서 앗수르에 대항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앗수르의 사르곤과 산헤립 같은 왕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그만큼 앗수르는 강했다.
그러나 그 앗수르는 다시 바벨론에 멸망당한다.
그리고 그 바벨론이 주전 539년 다시 바사(페르시아)에 멸망당한다.
그 바벨론의 멸망이 담긴 이중적 선포가 담긴 예언이고
그 제국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겪을 고통의 시간은 별도로 이어진다.
상황의 변화만으로 진정한 안식이 오진 않는다.
한 세력이 물러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지만,
생애도 생활도 역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파수꾼은 다시 와서 물으라고 말한다.
희망을 품으면서 정세만 살필 것이 아니라,
낙관적인 기대만 갖고 살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 앞으로 돌이켜 묻고 또 물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에 의해 일희일비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가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왜냐하면
최종 승리는
여호와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의 시간이 지나면 밤이 오지만
그 밤도 지나가고 새 아침을 맞는다.
그건
바벨론이나
에돔이나
저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아마도 이스마엘의 자손들로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형태가 아니라
느슨한 무역상의 연합 형태로 존재했던 것 같다.
유목민처럼 다소 불행한 처지라기보다는
이른바 거상(巨商)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요셉을 애굽에 팔았을 정도로, 인신매매의 오랜 전통도 선도적으로 세운 이들도 이들이 아니었나?
드단, 데마, 게달
오늘날 사우디 근처의 그 상인들은
무역로를 장악하고 군사력을 행사하는
오늘날의 그 동네 사람들과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
이사야 21:14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목마른 인생이
전쟁과 같은 재난을 만나면
도피하는 곳이 어디인들 편안하고 평안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물을 주고 영접할 처소가 되어주는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다. .
그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것이 그 사람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다. 혼란의 때에 나만 살겠다고 하면 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
큰 심판의 장면을 묘사하는 한복판에서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성경은 눈앞의 도망자 한 사람을 잊지 않는다.
지금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 건네는 일은
어쩌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 맞다.
어찌할 수 없는 정세와 환경을 생각하며 일희일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저
최종 승리가 여호와께 있음을 잠잠히 믿으며
슬픔을 당한 이를 위해 기도하고 물을 건네줄 수 밖에 없다.
모든 슬픔은 아픔을 동반한다.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어찌해보려고 하는 것처럼
무익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슬픔의 공감은
내가 조용히 기도하며
물 한 잔 건네줄 수 있는
최초의 순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
다시금 밤이 올 것이고
또 다시 새아침이 올 것이다.
영원한 아침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전투 행위
냉수 한 그릇 전달하는 일을
절대 쉬지 않으려 한다.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개역개정판)